예레미야 애가 4장: 영적 지도자의 책임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3장에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에 대한 희망을 고백했던 시인은 4장에서 다시 처절한 절망을 토로한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당한 재앙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1-5절). 그는 예루살렘이 소돔 성과 같이 되었다고 탄식한다. 유다 백성의 죄가 그처럼 중했다는 뜻이고, 예루살렘이 그만큼 잔혹하게 심판을 받았다는 뜻이다(6절).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이 그렇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어머니들이 제 자식을 삶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7-12절). 그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악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모두의 혐오 대상이 되어 버렸다(13-16절).

이어서 시인은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유다 백성 전체를 대변하여 말한다. 유다 백성은 바빌로니아로부터 그들을 구해 줄 나라를 찾았으나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았다(17-19절). 뭇 민족 가운데서 그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고 의지했던 왕도 함정에 빠져 버렸다(20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에돔을 저주한다(21-22절).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 한 에돔도 머지 않아 같은 운명을 만날 것이며, 그 때 주님은 유다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묵상:

시인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당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책임이 거짓 예언자들과 악한 일을 일삼은 제사장들에게 있다고 고발합니다. “예언자들의 죄”(13절)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백성을 속인 죄를 말합니다. “제사장들의 악한 일”은 그들 자신의 부정과 불의 그리고 백성의 죄악에 눈 감고 축복을 베풀어 준 행실을 말합니다. 백성을 깨우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 안에서 의로운 사람들이 살해 되었다”(13절)고 시인은 말합니다. 영적으로 타락하면 의로운 사람들이 희생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죄악을 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이 소돔 성과 같이 되어 버린 이유입니다.

시인은 심판이 임할 때 거짓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판이 임하기 전에 그들에게 환호하던 백성들은 이제 그들을 전염병자처럼 대하며 “비켜라, 더럽다! 비켜라, 비켜! 물러서라!”(15절)고 외칩니다. 거짓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에게도 버림받고, 백성에게도 버림 받아,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그들에게 권위와 영예가 주어진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겼고, 그것에 취하여 분별력을 잃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 것이 더러워지면, 그 추함은 두배가 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 부정하게 살면 그 해가 더 커집니다. 영적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으면, 먼저 그 자리에 맞도록 거룩하게, 순결하게,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깊은 분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판이 임하기도 전에 “비켜라, 더럽다! 비켜라, 비켜! 물러서라”는 혐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도 재앙이지만, 그들이 인도해야 할 백성에게도 재앙입니다. 책임이 큰 만큼 그것에 대한 보응도 큽니다. 

기도: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얼마나 고귀하고 무거운지를 바로 알게 하셔서, 그 자리에 맞는 삶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별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 애가 4장: 영적 지도자의 책임”

  1. gachi049 Avatar
    gachi049

    무지와 가난과 타국의 폭정 속에 있는 조국을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교사들을 보내 주시고 그들의 희생으로 주님을 영접하므로 영적 분별력을 주시고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타국의 폭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신실한 영적 지도자들이 전하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실행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주님. 온 세상의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가감 없이 옳바로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도록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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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가고 교회와 성도들을 점점 더 무시하고 경멸하는 이유는 왕과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 택하심을 받은 성도라고 인정하신 주님의 뜻대로 살지못하고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된 자칭 성도라고 하는 이들의 책임입니다.

    섬김과 모든 인류를 구원 하시기 위해 대속물이 되신 십자가의 인자 그리스도를 항상 기억하고 지금부터라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섬기며 대속물이 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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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낮게 깔리고 승강장에칼바람이 봅니다. 목요일 아침이에요. 이제 2025 년도 정말 며칠 안남은 것 같습니다.

    애가서 4장. 에카(Ekah) 곧 어째서(how)로 시작하는 통한과 애곡의 노래. 이전(before)과 지금(after)의 대비가 비극적이고 좀 괴기(grotesque)하기까지 합니다. 시인은 멸망 이전의 예루살렘성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진 듯 해요.

    이전. 소돔과 같이 죄에 잠식되고 의인들이 죽임당하던 곳. 그렇지만 그곳은 귀공자들의 자태가 보석 같고 풍요와 번영이 거리에 흘러 넘치던 화려한 도성이었지요.

    지금. 모든 것은 잿더미로 변하고 살아남은 엘리트들은 피를 뒤집어쓴 부랑민의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칼보다 더 힘든 배고품의 고통이 모두를 미치게 해요.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형벌의 분량이 다 찰 때가 올 것을, 그 때가 되면 시온의 회복이 시작될 것을 믿는 그 믿음을 확인하고 또 선포하네요.

    오늘도 메트로로 출근합니다. 이렇게 추운날, 따뜻하게 앉아 출근할 수 있어 감사해요. 세계 최고의 나라 미국에 살며 자유, 평화와 번영의 혜택을 누림도. 그렇지만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살며 계속 찾아오는 고난의 파도를 맞겠지요?

    광야의 끝에는 저 거룩한 성 가나안이 있고 주님이 친히 시온으로 영접해 주시는 것 맞겠지요? 주홍 같은 죄를 흰눈 같이 씻겨주신 이. 그 보혈의 문을 지나 거룩한 분의 보좌 앞으로. 아버지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맞겠지요? 아빠 우리 아버지. 제가 믿습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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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묵상한 3장과 오늘 읽는 4장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4장은 앞의 1, 2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포위된 예루살렘 성안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전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굶주림에 대한 표현이 무섭습니다. ‘칼에 죽는 것이 굶주려 죽는 것보다 낫다 (9절)’고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음식이 되었다 (10절)’는 대목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상태를 보여 줍니다. 13절 부터는 화살이 지도자에게로 향합니다. 예언자들이 죄를 짓고 제사장들이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고발합니다.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이 원수 민족들의 덫에 걸렸다고 탄식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한 번 지도자는 영원한 지도자’여서 직업 뿐 아니라 사람 자체도 다르다고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 기름 부은 사람은 특별한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권력 만 아니라 책임도 특별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고 백성에게 공정해야 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은 한시적인 권력을 누립니다. 선출되어야 받을 수 있고, 직을 유지하는 동안에만 누리는 권세입니다.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권세를 ‘누리는’ 것으로 이해하는게 문제입니다. 자기 좋을대로 쓰는 것이 권세라고 이해하는 한 ‘악한 일’을 하는 지도자는 계속 나올 것입니다.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나는 조금 불편합니다. 담임 목회자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뜻으로 쓰는 칭호 같은데 그렇게 대접하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그러는 것도 싫고,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대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요즘 시끄러운 홀리 마더니, 독생녀 하는 소리는 오히려 영성이나 영적 영역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애가 4장이 화의 원인으로 여기는 왕과 제사장의 타락은 신약으로 넘어와 예수님의 경고에서도 드러납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누가 12:48)” 이 구절은 인기영화 ‘스파이더맨’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시민법에 적용하면, 소유권은 의무를 수반한다는 것과 같은 맥이겠습니다. 건물소유주는 ‘따박따박’ 임대료만 챙기는게 아니라 여기저기 고장난 데 수리하러 가는 핸디맨이라는 한국 드라마 대사가 떠오릅니다. 영적 지도자한테 영적으로 고장난 데를 수리하는 책임을 맡길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언서가 보여주는 세상은 무너지면 안 될 것이 무너지고,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오십니다. 회개하라고, 하늘 나라가 가까왔다고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시는 예수님. 세상을 보는 법을 처음부터 완전히 바꾸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강절은 우리도 아기가 되는 계절인지 모릅니다. 새로 태어나 다시 배우는 계절일까요. 감사합니다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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