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51장: 비록 악이 강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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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빌로니아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계속 이어진다. 주님께서는 바빌로니아를 사용하여 뭇 민족을 심판하신 것처럼, 또 다른 민족을 일으켜 바빌로니아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들이 주님의 백성에게 행한 것과 똑 같은 재앙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1-14절). 그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바빌로니아 왕을 대적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고, 그 나라를 대적할 제국은 영영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시다. 그분이 정하시면 절대 왕국 바빌로니아도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15-19절).  

한 때 하나님은 바빌로니아를 도구로 삼아 수 많은 민족들을 심판하셨다(20-23절). 하지만 그들이 쌓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다른 민족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토록 대단했던 바빌로니아의 성읍들은 하나같이 폐허가 될 것이고, 잔인무도했던 군사들은 도륙 당할 것이다(24-33절). 

이것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하면서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올린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그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34-40절). 그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의 멸망에 대한 조가를 만들어 부를 것이다(41-49절). 머지 않아 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이 포로로 잡혀 온 유다 백성에게는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50-53절). 바빌로니아의 멸망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이기 때문이다(54-58절).  

이 예언은 시드기야 왕 제 4년(주전 593년)에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주님께서는 이 예언을 책에 기록하여 왕의 수석 보좌관 스라야에게 주어, 시드기야 왕이 조공을 드리러 갈 때 바빌론으로 가지고 가라고 하신다. 그곳에서 스라야는 그 예언을 모두 읽고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다음, 책을 돌에 매달아 유프라테스 강 물에 던지라고 하신다. 그 책이 물 속에 잠기는 것을 지켜 보면서 “바빌로니아도 이렇게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다”라고 말하라고 하신다(59-64절).

묵상:

주전 597년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공격하여, 여호야긴 왕을 사로잡아 가고, 그의 삼촌 맛다디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삼고, 그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꿉니다(왕하 24:8-17).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약탈 당하고, 유다는 주권을 잃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예레미야에게 이 예언이 내립니다. 느부갓네살이 거침 없이 제국을 확장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왕의 수석 보좌관 스라야는 예레미야의 지시대로 예언을 적은 책을 바빌론으로 가지고 가서 읽었을 것입니다. 봉신 국가의 보좌관의 신분으로 제국의 수도에 와서, 바빌로니아가 결국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읽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바빌로니아로 인해 받은 모욕과 수치심이 한 순간에 해소되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시킨대로 그 책을 돌에 매달아 유프라테스 강에 던져 놓고, 그 책이 물에 잠기는 것을 보면서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스라야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뭔가 달라진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언의 말씀을 읽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지상의 왕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는 분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장의 일로 인해 두려워하고 슬퍼해도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살전 4:13)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악한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부정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분투하고, 그들의 폭정 아래에서 힘 없는 국민들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라면, 저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너머에 주님이 계시고, 역사의 흐름을 주님께서 인도하고 계심을 알기에 희망을 추스릅니다. 저희 눈에는 악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 저희가 선 자리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를 다짐합니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51장: 비록 악이 강할지라도”

  1. gachi049 Avatar
    gachi049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고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백성일지라도 보살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그렇게도 강한 것 같은 권력자라도 한 순간에 없애 버리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강함을 다시한번 보는 것 같습니다. 주님. 아직도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권력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그들의 영안을 뜨게 해 주심을 통해 회개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모든 믿음의 공동체가 먼저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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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짙고 검은 구름 때문에 온세상이 캄캄할 때에도 구름위에 태양이 있는것을 알지만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의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우둔한 자입니다. 강대국의 권력자들 모두가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낙담하지 않고 오직 저희들의 소망을 살아계신 역사를 주관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 두고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내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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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고 창밖으로 함박눈이 내립니다. 금요일 아침입니다.

    예레미야 51장. 예레미야서가 다 끝난 걸로 착각했는데 알고보니 아직 두 장이 사족처럼 더 남아 있었네요. 어제에 이어 바벨론의 몰락에 대한 긴 예언입니다. 메데 (메디아)와 그 소속 산악부족 (아라랏, 민니, 아스그라스) 등 바벨론을 패망시키는 북쪽 군대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꼭 집어 굳이 언급한 것, 그리고 바벨론 예언글을 유프라테스 강에 던진다는 약간 전설 같은 이야기가 눈에 띄는 특징.

    Copilot에 따르면 51-52장의 상당 부분은 포로 귀환 후 서기관들에 의해 첨가되었다고 볼만한 근거가 있다고 하네요 (예: 70인역과 미소라 본문간의 큰 차이). 이미 역사로 실현된 예언을 사후에 편집했다면 좀 더 노골적으로 적중한 부분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 (바벨론의 황폐화, 대량 도륙)은 변형할 유인이 있었을 텐데 빗나간 예언들도 그대로 살리거나 오히려 더 강화한 것은 그 말씀들이 언젠가는 꼭 이뤄지길 원하는 강한 염원을 반영한 것? 또 전승된 본문을 가급적 그대로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서기관들의 강직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죠?

    이제 일과를 시작하려 합니다. 여러가지로 마음이 바쁜 하루. 오늘도 잠을 자고 눈을 뜨고 숨쉬고 꿈꾸게 하심을 감사. 일할 수 있어서, 가족이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오늘 묵상 말씀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비록 악이 성한 듯 보이나 결국 모든 것을 주가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닫고 확신하는 믿음 주시기를. 마라나타 주님. 여기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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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밤에도 한밤중에 깨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김근주 목사가 강의하는 ‘예레미야서 어떻게 읽고 적용할 것인가’의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예레미야서 묵상을 시작할 때 보다 중단하고 마치지 못했었는데 오늘 새벽에 찾아서 다 보았습니다. 나한테 새롭게 들렸더 부분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의 숫자는 적게 잡으면 5퍼센트, 크게 잡으면 20퍼센트로 다수는 유다 땅에 남았다는 해설입니다. 39장에는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 성벽을 헐어버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빌로니아의 느부사라단은 왕의 명령에 따라 유다 땅에 남은 백성에게 포도밭과 밭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인 그다랴에게 맡깁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남은 백성과 함께 유다 땅에 거합니다. 이디오피아의 환관 에벳멜렉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나옵니다. 김근주 목사는 강의에서 포로로 잡혀간 이들의 관점이 아닌 남은 백성의 시각을 상상합니다. 39장 10절에서 유다 땅에 남은 백성을 표현하는 말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백성’이며 이들에게 포도밭과 땅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이스라엘은 가문마다 받은 땅이 있어 저마다 밭을 일구며 사는 것이지만, 이 이상적인 체제는 세월 속에서 무너집니다. 왕가와 귀족, 상류층이 형성되고 가난한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은 사회가 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헐리고, 왕과 귀족은 포로로 끌려가면서 유다의 남은 백성은 경작지를 받아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항아리에 저장해놓고 (40:10)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화롭고 살만한 시절이 열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달랴의 죽음으로 남은 백성은 또다시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평생 자기 몸으로 받은 시련은 이스라엘이 겪은 심판의 축소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을 친 주변 나라들이 받는 심판의 장면을 읽습니다. 가장 길고 자세한 분량이 바빌로니아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린 금잔과 같았고 쇠몽둥이요 전쟁 무기였던 바빌로니아가 이제 쓰러집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바빌로니아는 멸망의 예언을 듣습니다. 글로 써서 책으로 (두루마리로) 만들고, 그 책을 유프라테스 강에 던집니다. 강물 속에 가라앉듯 바빌로니아도 가라앉습니다. 명확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역사적인 사건, 스토리, 예언, 상징, 교훈, 모든 면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은 세운 것을 허물고 심은 것은 뽑는 하나님 (45:4)이시지만, 세우고 심는 일을 철저히 하시는 (31: 28)이시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자녀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역사의 이어짐 속에 불연속성의 은총을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평생 고생만 하고 고통 속에서 살다 이집트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의 수고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 새벽을 깨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 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작은 믿음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내 삶을 설명합니다.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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