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36장: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3–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지 사 년째 되는 해(주전 605년)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를 구해다가 요시야 왕 때부터 주님이 주신 말씀을 모두 기록하라고 하신다(1-2절). 여러 시기에 주신 말씀들을 모아 기록해 놓으면, 그 말씀이 주는 충격이 더 클 것이고, 회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3절).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그동안 자신이 받은 주님의 말씀을 모두 불러 주어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했다(4절).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그 두루마리를 가지고 성전으로 가서(5절) “금식일에”(6절) 백성에게 낭독해 주라고 한다. 금식하기 위해 성전에 모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7절).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즉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 지 오 년째 되는 해, 왕은 유다 백성에게 금식일을 선포했다(9절). 바룩은 예레미야의 명령 대로 두루마리를 들고 성전으로 가서 그곳에 모인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다(8절, 10절).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주도했던 사반의 손자 미가야가 그 말씀을 듣고는 고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사실을 전한다(11-13절). 고관들은 바룩을 불러들여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읽게 한다(14-15절). 그 말씀을 듣고 크게 당황한 고관들은 바룩에게, 그것을 기록하게 된 경위를 묻는다(16절). 바룩이 예레미야가 받은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답하자, 얼른 가서 예레미야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으라고 지시한다(17-19절). 그런 다음 그들은 왕에게 찾아가서 그들이 들은 내용을 전한다(20절).

고관들의 말을 들은 여호야김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 두루마리를 가져와 읽게 한다(21절). 때는 겨울이어서 난로를 피우고 있었는데(22절), 왕은 읽은 부분을 차례로 오려내어 난로에 넣어 모두 불태워 버린다(23절). 왕과 고관들 중에 그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거나 슬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4절). 사반의 손자 그마랴와 몇몇 사람이 왕을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25절). 왕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그들이 발각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보호해 주신다(26절). 

주님은 숨어 있던 예레미야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두루마리를 구해다가 왕이 태워버린 두루마리에 썼던 말씀을 다시 기록하여 바룩에게 보내라고 하신다(27절-28절). 주님은 또한 여호야김 왕에게 전할 말씀도 주신다. 그 말씀에서 주님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그대로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신다(29-31절).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바룩에게 두루마리를 구해다가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다(32절).  

묵상:

예레미야는 사십 년 동안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의 설교자들처럼 지속적으로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마다 전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침묵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한 두 해 동안 아무 말씀도 내리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헐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임하다 보니, 듣는 사람들은 잠시 경각심을 가지지만 곧 무뎌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동안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한 두루마리에 모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것이 주전 627년이고, 이 명령을 받은 것이 605년이니, 지난 22년 동안 받은 말씀을 한 데 모아 기록해 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읽는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회개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서 여호야김 왕과 고관들이 보인 반응은 말 그대로 “돌처럼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저자는 “그런데 왕과 그의 신하들 모두가, 이 말씀을 다 듣고 나서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면서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않았다”(24절)고 적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두루마리를 차례로 잘라 난롯불에 던져 넣은 왕의 행동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그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와 받아 적은 바룩에 대한 체포 명령까지 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깨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을 말씀을 제거하려 했던 것입니다. 칼을 들이대야 할 것은 두루마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어느 정치인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닭을 모가지를 비틀어 새벽이 오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아니,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무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무시한다해도 혹은 부정한다 해도 새벽은 동터 옵니다. 새벽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할 일은 깨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여호야김과 그 신하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들려오는 경고의 소리에 귀 막고 모른체 함으로 인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예레미야서는 바룩이 기록한 두루마리보다 더 많은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사십 년 이상의 기간 동안 간헐적으로 들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매일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서를 읽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언의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여호야김 왕과 고관들의 악행을 따라 행하는 일이 됩니다. 부담스럽고 거북해도 매일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기도:

주님, 칼날같은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고발하는 말씀에 고개 숙이게 해주십시오. 양날칼 같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36장: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1. bull9707 Avatar

    말씀이 살아있고 생명이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올립니다.

    비록 불편한 말씀이지만 주님을 경외하고 말씀 순종하는 믿음의 식구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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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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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오늘도 영적 갈증을 해결 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양식이 없었다면 인류는 짐승보다 더 악하고 상상할 수 없는 세상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 날마다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고 건강한 영혼으로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어떤 환난과 고통이 덮치더라도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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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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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온도가 확 내려가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몇 분 안되는 시간이 꽤 길게
    여겨집니다. 화요일 아침.

    오늘은 예레미야 36장. 바벨론 1차 침공기 전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예레미야의 예언을 모두 기록해 유다 족속에게 보내시는 하나님. 그 이유는 “혹시라도”라는 마음 때문이었죠.

    지금이라도, 혹시라도 말씀을 듣고 돌아선다면. 만약 그러기만 한다면. 재앙을 돌이켜 축복으로 만드시려는 마음. 끝까지 기회의 문을 열어두고 싶어하시는 마음. 그것이 전능하신 아버지의 마음이세요. 그 긍휼의 편지를 난로불에 태워버리는 왕. “혹시나”를 “역시나”로 받은 백성은 기회의 창을 걷어차네요.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일터를 향하는 사람들의 추운 표정이 왠지 짠하게 느껴지는 아침. 아직 출근할 일터가 있어서 감사. 진심을 담아 하루를 감당하고 만나는 모든이들을 공감과 성실로 대했으면. 스스로 마음이 너무 높아지고 굳어져 기회의 편지를 스스로 태워버린 사람. 비슷한 교만과 강퍅한 고집이 세월과 함께 점점 늘고 있지는 않은지 정직히 돌아보고 말씀의 찔림 앞에 자기를 내어놓는 하루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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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읽는 36장은 특별합니다. 읽는 동안 머리속에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읽는 내용의 뜻을 묵상하기 전에 상황과 장면부터 떠오릅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36장이 보입니다. 특이하게도 36장에는 등장인물이 여러명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말씀을 불러주어 받아 적게 한 뒤에 그를 성전으로 보냅니다. 성전에서 금식을 하고 있던 사람들 앞에서 바룩은 두루마리를 읽어줍니다. 방에 모여 있던 신하들이 누구였는지 본문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 만이 아니라 누구의 손자며 아들인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오늘 사건의 역사성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보이고, 어떤 사건의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사건’이 된다는, 그래서 개인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룩의 두루마리가 여호와김 왕에게 전달되고 -예레미야와 바룩은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 이미 숨었습니다. 긴장감과 불안감이 점점 높아집니다- 왕의 신하 여후디는 왕과 고관들 앞에서 읽습니다. 이 때가 겨울이라 왕궁에 난로가 놓여 있다는 것까지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때론 영화에 나오는 어떤 소품이 배우 못지않게 한 역할을 해내는 것과 같이 느껴집니다. 왕은 여후디가 서너 단씩 읽고나면 서기관의 칼로 그 분량을 베어내어 난롯불에 던집니다. 그렇게 착착 도려내어 두루마리 전체를 불에 태웁니다. 왕과 신하들은 말씀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고 슬퍼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하나님은 반성과 회개를 기대했지만, 왕의 교만은 하늘을 찌를만큼 높아졌습니다. 바룩의 두루마리를 난롯불에 태우는 오늘 본문은 ‘책을 불태우는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왕은 완전히 포기 한 것일까, 아니면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굳게 믿은걸까, 어느쪽일까 생각하게도 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다시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명하십니다. 바룩이 받아 적은 기록은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까지 왔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는 칼로 착착 베어내어 불에 던지는 여호와김의 악행에 화가 났지만 묵상을 하면서는 그것이 얼마나 헛된 반항인지를 보게 됩니다. 성전을 부수고 태운다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부인하고 부정하고 달려들고 상처내도 어디로 가시지 않습니다. 침을 뱉고 빰을 때리고 옷을 찢고 쓰러질 때까지채찍질을 해도 주님은 어디로 가시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도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가슴에 새겨두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31:33)’는 말씀을 오늘 또다시 깨닫습니다. 난롯불로 사라질 말씀이 아닙니다. 칼로 도려낸다고 없어질 말씀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임마누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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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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