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지 사 년째 되는 해(주전 605년)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를 구해다가 요시야 왕 때부터 주님이 주신 말씀을 모두 기록하라고 하신다(1-2절). 여러 시기에 주신 말씀들을 모아 기록해 놓으면, 그 말씀이 주는 충격이 더 클 것이고, 회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3절).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러 그동안 자신이 받은 주님의 말씀을 모두 불러 주어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했다(4절).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그 두루마리를 가지고 성전으로 가서(5절) “금식일에”(6절) 백성에게 낭독해 주라고 한다. 금식하기 위해 성전에 모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7절).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즉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 지 오 년째 되는 해, 왕은 유다 백성에게 금식일을 선포했다(9절). 바룩은 예레미야의 명령 대로 두루마리를 들고 성전으로 가서 그곳에 모인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다(8절, 10절).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주도했던 사반의 손자 미가야가 그 말씀을 듣고는 고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사실을 전한다(11-13절). 고관들은 바룩을 불러들여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읽게 한다(14-15절). 그 말씀을 듣고 크게 당황한 고관들은 바룩에게, 그것을 기록하게 된 경위를 묻는다(16절). 바룩이 예레미야가 받은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답하자, 얼른 가서 예레미야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으라고 지시한다(17-19절). 그런 다음 그들은 왕에게 찾아가서 그들이 들은 내용을 전한다(20절).
고관들의 말을 들은 여호야김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 두루마리를 가져와 읽게 한다(21절). 때는 겨울이어서 난로를 피우고 있었는데(22절), 왕은 읽은 부분을 차례로 오려내어 난로에 넣어 모두 불태워 버린다(23절). 왕과 고관들 중에 그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거나 슬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4절). 사반의 손자 그마랴와 몇몇 사람이 왕을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25절). 왕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그들이 발각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보호해 주신다(26절).
주님은 숨어 있던 예레미야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두루마리를 구해다가 왕이 태워버린 두루마리에 썼던 말씀을 다시 기록하여 바룩에게 보내라고 하신다(27절-28절). 주님은 또한 여호야김 왕에게 전할 말씀도 주신다. 그 말씀에서 주님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그대로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신다(29-31절).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바룩에게 두루마리를 구해다가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다(32절).
묵상:
예레미야는 사십 년 동안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의 설교자들처럼 지속적으로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임할 때마다 전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침묵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한 두 해 동안 아무 말씀도 내리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헐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임하다 보니, 듣는 사람들은 잠시 경각심을 가지지만 곧 무뎌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동안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한 두루마리에 모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것이 주전 627년이고, 이 명령을 받은 것이 605년이니, 지난 22년 동안 받은 말씀을 한 데 모아 기록해 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읽는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회개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서 여호야김 왕과 고관들이 보인 반응은 말 그대로 “돌처럼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저자는 “그런데 왕과 그의 신하들 모두가, 이 말씀을 다 듣고 나서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면서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않았다”(24절)고 적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두루마리를 차례로 잘라 난롯불에 던져 넣은 왕의 행동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그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와 받아 적은 바룩에 대한 체포 명령까지 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깨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을 말씀을 제거하려 했던 것입니다. 칼을 들이대야 할 것은 두루마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어느 정치인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닭을 모가지를 비틀어 새벽이 오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아니,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무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무시한다해도 혹은 부정한다 해도 새벽은 동터 옵니다. 새벽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할 일은 깨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여호야김과 그 신하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들려오는 경고의 소리에 귀 막고 모른체 함으로 인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예레미야서는 바룩이 기록한 두루마리보다 더 많은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사십 년 이상의 기간 동안 간헐적으로 들은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매일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서를 읽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언의 말씀을 멀리하는 것은 여호야김 왕과 고관들의 악행을 따라 행하는 일이 됩니다. 부담스럽고 거북해도 매일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기도:
주님, 칼날같은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고발하는 말씀에 고개 숙이게 해주십시오. 양날칼 같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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