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시드기야 왕에 의해 근위대 뜰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또 임한다(1-2절). 주님은, 그가 부르면 응답해 주실 것이며, “크고 놀라운 비밀”(3절)을 알려 주겠다고 하신다.
주님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점령 당한 유다를 두고 말씀하신다. 유다가 뭉쳐서 바빌로니아에 대항하여 싸웠지만,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4-5절). 하지만 주님은 장차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을 돌아오게 하고, 폐허가 된 유다와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6-7절). 그 때가 되면 주님은 그들의 모든 죄를 씻어 주고 주실 것이고(8절), 온 세상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보고 놀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9절). 지금은 비록 황폐 해졌지만,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회복될 것이다. 주님께서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0-11절). 지금은 짐승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때에는 유다의 모든 성읍에 양떼를 치는 목자들이 나타날 것이다(12-13절).
주님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14절)고 하신다. 그 때가 되면 다윗에게서 돋아날 “한 의로운 가지”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15절)를 실현할 것고, 사람들은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16절) 하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다윗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가고, 제사장들도 회복될 것이다(17-18절).
주님은 낮과 밤의 질서가 변함 없는 것처럼, 다윗에게 주신 언약과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에게 세운 언약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19-22절). 주님은, 유다까지 패망하자 사람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야곱 자손에 대한 선택은 깨지지 않을 것이며, 다윗에 대한 약속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신다(23-24절). 때가 되면 반드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기 떄문이다(25-26절).
묵상:
‘시드기야’라는 이름은 “야훼는 의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의로우심을 닮아 의로운 왕이 되라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의로운 왕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이어져 온 오백 년 왕조의 전통이 그에게서 끝이 납니다. 가지 무성한 나무의 밑둥이 잘리듯이 다윗 왕가의 흐름이 끊긴 것입니다. 그로써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의 나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로 인해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는 자신이 택하신 두 족속을 버리셨다”(24절)고 탄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의 실패이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인간이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15절)가 돋아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줄기가 잘려나가고 남은 밑둥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는 것처럼, 왕조가 끊긴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새로운 왕을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같은 일을 두고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사 11:1)라고 했습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나타날 그 왕은 이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16절)라고 고백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예언이 기록된 후, 후대 사람들은 다윗 가문에서 새로운 왕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재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언은 “실현되지 않은 말씀”이 되었습니다. 칠십 년 후에 포로들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다윗 왕권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교인들은 아직도 이 예언이 실현될 날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이 예언은 이 땅에 건설될 가시적인 나라와 왕권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메시아를 통해 오게 될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왕권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의로운 왕”을 통해 “새로운 언약”(31:31), “영원한 언약”(32:40)을 맺으셨고, 그분은 “공평과 정의”(15절)로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두고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16절)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마리아에게서 나올 아기의 이름을 “예수”(마 1:21)라고 지으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 이름 “예수” 즉 “여호수아”는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은 저희의 구원이십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만이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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