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26장: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26장은 7장 1절부터 8장 3절까지 나오는 성전 설교와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1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에서 전한 말씀을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그들이 듣고 회개하면 정해진 심판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하신다(2-6절).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7절)은 회개하기는 커녕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 한다(8절). 예레미야가 성전에 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치려고 몰려들자(9절), 고관들이 그를 정식 재판에 회부한다(10절). 재판이 시작되자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유다와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재앙을 예언했다는 죄로 예레미야를 고소한다(11절). 

예레미야는 재판 받는 자리를 빌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다는 고발이 맞다고 말하면서(12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분이 재앙을 거두실 수도 있다고 전한다(13절). 그는 자신을 죽여도 상관 없으나(14절), 그럴 경우 그들이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15절). 

그러자 고관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므로 사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다(16절). 예레미야의 엄중한 경고에 잠시 물러섰던 것 같다. 그 때 지방의 장로들 가운데 몇 사람이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자 미가(‘미가서’의 미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는데, 히스기야 왕과 백성이 회개하여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17-19절). 

20절부터 23절까지는 후대에 덧붙인 설명이다. 예레미야 당시에 우리야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그도 역시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언했다. 여호야김 왕이 그를 죽이려 하자, 우리야는 이집트로 도피한다. 왕은 밀정을 이집트로 보내어 그를 체포해 왔고, 그를 살해하여 평민의 공동묘지에 유기했다. 

이 이야기를 덧붙인 이유는 예레미야가 받았던 살해 위협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예레미야도 우리야와 같은 운명에 처할 뻔했으나,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24절). 사반은 요시야 왕의 서기관으로서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가능하게 해 준 인물이다. 아히감은 아버지 사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므로 예레미야를 보호해 주었다.

묵상: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처형하는 일에 앞장 섰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성전은 삶의 터전이었고, 성전 제사는 권력과 이권의 도구였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불길한 예언으로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성전이 폐허가 된다는 사실도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예레미야를 고소했던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문제없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 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 다른 예언자 우리야는 실제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고 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마 23:29-31)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과 동일하게 행동하면서도,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헛된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으로 그들의 허위와 위선을 지적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섰던 것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나 속으로 ‘나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내 마음에 거북하게 들리는 말씀에 귀를 막고 어떻게든 내 마음대로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나도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

저희가 유다 백성과 다를 바가 없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저희도 위로와 평안과 축복의 이야기만 듣고 싶어하고, 경고와 책망과 심판의 이야기는 듣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예언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들이 바로 저희 자신임을 인정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26장: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

  1. billkim9707 Avatar

    회개와 경고, 마음에 불편한 설교를 될수있는대로 피하고 기복 신앙과 성공 신앙의 설교를 듣기를 원 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으나 세상의 어떤것보다 비교 할수없는 축복 인것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불편한 설교를 감사히 받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회개와 경고를 하는 목회자들과 같이하며 말씀 순종하며 인생을 마감하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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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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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햇볕은 좋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 춥습니다. 목요일이에요. 기차를 기다리는 5-6분이 매우 길게 느껴지는 시즌이 시작되나 봅니다.

    에레미야 26장. 성전에 서서 임박한 재앙의 예고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 소셜미디아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 소문의 바람을 일으키기에는 제법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듯 해요.

    위협을 느낀 종교 기득권세력은 그를 재판에 회부. 다행히 무죄판결을 받지만 다시 대중 (백성들)의 손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요. 성전 설교 후 베드로가 체포되어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을 받은 사건과 평행을 이루는 듯한 에피소드.

    목요일이라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메트로 창밖에 풍광이 햇살에 빛나지만 차가워 보여요. 오늘을 주심에 감사. 일할 수 있게 하시고, 사랑할 수 있게 하셔서. 인생이라는 축복의 기회를 주셔서.

    자기의 내면을 정직히 들여다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주를 붙잡아 재판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군중들의 위선과 자기 방어가 내 마음에도 은밀히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제사보다 통회하는 심령을 받으시는 주. 그 분 앞에 마음의 옥합을 깨뜨리고 내 자아와 생각과 계획까지 내려놓으며 그분의 사랑과 계획 앞에 내 존재 전체를 의뢰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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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해결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결 방법이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예로 남편이 겪은 치과 진료의 부작용을 들 수 있습니다. 치아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한다며 적용한 방법이 부적절했습니다. 없애야 할 문제는 없애지 못하고 다른 문제를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다른 치과를 여러 군데 다닌 끝에 전체적으로, 단계적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서 원래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의사의 실력 차이인지, 판단 미스인지, 욕심의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세가지 다일 것입니다. 같은 치과를 다닌 나도 거의 비슷한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의 경우는 담당 내과의사의 무심함과 무신경이 치과 진료에 영향을 미쳐 치료가 한없이 길어졌다는 보너스까지 받았습니다. 예레미야 뿐 아니라 그 전에도 여럿 선지자들이 백성의 잘못을 지적하고 경고했습니다. 성전에서 올리는 헛된 제사와 이방 풍습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것을 여러번 선포했습니다. 오늘 해설에서 보듯 성전은 제사장들의 밥그릇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는 곳에서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돈벌이를 가능하게 하는 속된 장터로 변했습니다.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성전에 와서 제사를 올리는 백성은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지도자들은 ‘해결’을 약속합니다. 지도자들의 꼬임에 따라 백성의 문제는 해결은 커녕 더 큰 문제로 커집니다.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제사가 더 큰 문제가 되어 그들을 옭아맵니다. 그 때의 백성이나 오늘의 우리나 같은 ‘문제’를 안고 삽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문제를 뒤로 돌립니다. 나의 욕망부터 채우려고 합니다. 보이는 것에 급급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피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놓고 선지자 시대의 왕과 제사장, 지도자들은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실은 자기 배를 채우는 방법이었을 뿐입니다. 해결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고 욕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길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엎드려 그분의 용서를 구하는 것 뿐입니다. 회개하는 것, 자신의 무력함과 무용함을 직시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해결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입니다. 문제는 늘 복잡합니다. 단순한 문제도 당사자에겐 어렵게 보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기도 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여러 방법을 추천하는 사람도 멀리 해야 합니다. 방법이 없는걸까요. 나는 할 수 없는 걸까요. 없습니다. 내 삶 가운데 일어난 무수한 문제와 그 문제의 해결은 내가 어떻게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몰라서 방황하고, 잘못 생각해서 깨지고, 믿었다가 실망하고…이런 일들 속에서도 살아왔음은 임마누엘 하나님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주를, 나를 지탱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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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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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심판을 예언자들을 통해 심판의 잔을 피하도록 알려 주셨지만 율법자와 권력자들이 영의 분별력이 없어 예언자들을 죽였습니다. 주님. 아히감 처럼 영의 분별력을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셔서 예언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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