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3장: 낮은 곳에 앉으라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종종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셨다. 그것을 ‘상징행동’이라고 부른다. 그 행동을 통해서 다른 무엇을 보게 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베로 만든 띠를 사서 물에 적시지 않도록 잘 보관하라고 하신다(1-2절). 얼마 후, 주님은 그 베 띠를 가지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서 바위 틈에 숨겨 놓으라고 하신다(3-5절). 

예루살렘으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는 5백 킬로가 넘는 먼 거리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나돗에 가까운, 유프라테스와 유사한 발음의 지명을 가리킨다고 본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주님은 다시 가서 그 베 띠를 꺼내 오라고 하신다. 가서 꺼내 보니 베 띠가 썩어 있었다(6-7절). 주님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허리 띠로 삼아 동여매려 했는데, 교만으로 인해 부패하여 썩어 버렸다고 탄식하신다(8-11절). 또한 주님은 포도주로 가득 찬 항아리를 비유로 말씀하신다(12절). 지도자나 백성이나 모두 포도주에 만취한 사람들처럼 서로 부딪쳐 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13-14절). 

이 예언을 듣고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향해 더 늦기 전에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 영광을 돌리라고 촉구한다. 그는 유다 백성이 자신의 예언을 듣고 돌아서기 까지 숨어서 울 것이며, 그들의 불행한 미래를 미리 내다 보고 슬피 울 것이라고 말한다(15-17절). 

주님은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유다의 운명이 다했으므로 교만을 버리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앉으라고 하신다. 낮은 자리로 내려 와야만 비로소 유다가 당한 운명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부터 재앙이 몰려 오고 있는데, 유다의 지도자들은 아무런 위기감도 없이 죄악을 즐기고 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돌아선다 해도 심판을 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서지 않으면 희망이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18-27절).

묵상: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죄를 ‘교만’으로 특정하십니다(9절, 15절, 17절). 성경적인 의미에서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난 것을 가리킵니다. 창조주 앞에서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위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반면, 창조주를 부정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신을 신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런 경향은 지위가 높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재산이 많을 때 더욱 심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왕과 왕후에게 “낮은 곳에 앉으라”(18절)고 말씀하십니다. 

교만의 가장 큰 해악은 현실을 오판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성추행 같은 부끄러운 일로 추락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비리를 자행합니다. 자신의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현실의 상황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반면, 낮은 자리로 내려 오면 현실이 제대로 보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낮은 곳으로 내려와 마음을 낮추었다면, 유다가 당하고 있는 재앙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그것이 참담한 재앙을 불러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라 불릴 만합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있기를 즐기지 않고 자신을 비워 종처럼 낮아져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 하시다가 인간으로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빌 2:5-8). 그로써 그분은 우리를 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길을 따라 살라 하십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높아진 마음을 낮추어 주십시오. 주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13장: 낮은 곳에 앉으라”

  1. billkim9707 Avatar

    주님은 창조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인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교만이 항상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 으로부터 멀리하여 내 자신이 주인이 될려는 죄성이 있는 위선자 입니다.

    떠나온 조국의 번영과 이땅 미국의 축복이 주님으로 온것을 잊고 마치 자신들의 노력으로 이룬것이라고 착각하고 벌서 주님으로 부터 멀리 떠나있는 형편입니다.

    저 자신부터 사귐의 소리 식구, 교회가 사회가 나라의 회개가 긴급히 필요한 시간입니다, 우선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고 주님의 긍휼을 간절히 기도하는 사귐의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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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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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높은 하늘이 푸르게 빛나는 수요일 아침입니다. 어젯밤에는 별 이유도 없이 중간에 잠이 깨었어요.

    예레미아 13장. 허리띠를 강물에 넣으라는 좀 이상한 상징 행동 이야기. 그리고 유다의 교만 (pride)과 패망의 인과 관계 이야기입니다.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출애굽 사건 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긴 했지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었을까요.

    선지자는 그 이유를 교만에서 찾고 있네요. 흙이고 피조물임을 잊어버린 마음. 소유된 백성이길 거부하는 마음. 보좌에 스스로가 오르려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자기 욕망을 들어줄 우상 곧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창조주와 대체하는 데까지 이른 것 아닐지요.

    피곤한 아침. 그래도 힘을 내어 하루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오늘도 호흡 주심을 감사. 사랑하는 사람들 또 허락하신 일을 감사. 낮은 마음, 통회하는 심령, 자복하는 마음을 주시길. 주의 보혈이 매일 나를 정케 하시고 주의 뜻이 내 발길을 매일 이끄는 삶. 공의를 구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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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때론 일상에서 만나는 특별한 일이 하나님의 메시지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습니다. 평소의 생각이나 기대와 다른 경험을 통해 막연한 하나님의 뜻이 구체화되기도 하고,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감지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늘의 구름 가운데 내 눈에만 보이는 글자가 써있는거 아니고, 환청처럼 음성이 들리는 것 아닙니다. 그런 현상은 병의 증세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는 허리띠와 포도주 가죽 부대 이야기는 예언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명령입니다. 예언자의 행동을 보면서 백성은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걸 알아 차리게 됩니다. 메시지라는걸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메시지를 보내시면 백성은 (우리는) 해석을 합니다. 개인 차원의 해석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로 이해하고 숙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개인을 향한 각각의 다른 예언이 아니라 성전공동체에게 던지는 한결 같은 촉구입니다. 허리띠가 다 썩어서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가죽 부대에 담겨야 할 포도주가 백성의 배에 들어가 모두 취합니다. 주정뱅이처럼 서로 부딪쳐 다치고 넘어집니다. 백성은 포도주 가득한 항아리처럼 깨집니다. 남쪽의 성문을 열 수 없어 그 안에 갇히고, 낯선 나라로 끌려갑니다. 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백성을 능멸합니다. 죄 때문에 수치를 당합니다.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거짓된 우상을 의지하였기 때문 (25절)입니다. 예레미야가 행동으로 예언을 할 때 지도자들은 예언을 해석해서 알아 들었어야 합니다. 선지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돌아서야 합니다. 지도자는 교만하고 백성은 어리석으니 다가오는 재앙을 피할 길이 없겠습니다. 우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세계가 다같이 병이 들어 아파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회개와 결단으로 병이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전염병과 같아 모든 사람이 돌아가며 다 아픈 것 같습니다. 안전한 곳이나 무균지대가 없습니다. 결국 자기 힘으로 병을 이겨내야 할까요. 살아있지만 사람은 아닌 좀비들이 나오는 영화나 지구 종말의 전후시대를 보여주 영화들이 제작되는 현상을 사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전제주의나 파시즘의 팽창 앞에서 무력한 개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극단적 민족주의와 군사력을 앞세운 권력강화와 국민 통제는 파시즘의 주된 요소입니다. 좀비가 되는 것은 체제와 질서의 붕괴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서바이벌 모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겉만 인간일 뿐 인간성 humanity 을 잃은 인간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는 좀비 영화가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21세기가 시작한지 25년이 되었습니다. 사분의 일 1/4 지점을 지나갑니다. 1세기로 리셋이 되기 6백년 전에 예레미야는 백성의 멸망을 상상하며 통곡합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울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믿고 희망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선한 길로 인도해 주세요. 이스라엘의 고집과 교만을 따르게 두지 마세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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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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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은 아담과 하와 시대부터 교만이 시작되었습니다. 즉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이 될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통해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은혜를 망각하고 제멋대로, 마음대로, 자신이 최고인양 교만이 하늘을 찌를 만큼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온갖 죄를 범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님.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시고 약한자, 가난한자, 병든자들과 함께하신 그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 되도록 믿음의 공동체들을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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