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7장: 예배와 일상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성전 문에 서서 들고 나는 사람들에게 선포하도록 말씀을 주신다(1-2절). 주님은 예배자들에게, 생활과 행실을 고치면 주님께서 성전에 머물러 계시겠다고 말씀하신다(3절).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4절)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어려울 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면서 외쳤던 말이다. 이것을 주문처럼 외치면 주님께서 성전을 생각하셔서 도와 주신다고 믿었다. 주님은 그 말을 믿지 말라고 하신다(5절). 그들이 주님의 도움을 입으려면 바르게 살고 이웃에게 정직하며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보고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것이고,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6-7절). 

하지만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 온갖 죄악을 일삼고 있다. 그러면서도 성전에서 제사만 잘 드리면 안전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8-10절). 이 일에 대해 주님은, 그들이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다고 책망하신다(11절). 주님은 성막을 두었던 실로가 심판 받아 폐허가 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여 폐허로 만들겠다고 하신다(12-15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을 위해 중보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의 죄악이 너무도 심하여 심판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16-20절). 

주님은 계속하여 유다 백성의 거짓된 제사를 책망하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번제가 아니라 순종이다. 그들에게 순종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잘 되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온갖 죄악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제사만 잘 드리면 된다고 착각한다(21-26절). 주님은, 예레미야가 주님의 말씀을 전해도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심판의 소식을 전하라고 하신다(27-28절). 유다 백성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속속들이 부패하여 참담한 운명을 맞을 것이다(28-34절). 

묵상:

하나님은 때로 예레미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시키십니다. 성전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성전 문에서 들고 나는 사람들에게 외치라는 명령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예언으로 인해 성전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위험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았을 것이고, 유다 백성도 심한 거부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위안을 얻고 싶었던 그들의 의도가 폭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악을 즐기는 동안에 마음에 쌓인 불편한 감정(죄책감)을 제사 행위를 통해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이 행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도둑질이고, 성전은 도둑의 소굴이 되었다고 탄식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라는 말은 유다 백성이 드렸던 주문 같은 기도였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있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성전을 보아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믿었습니다. 그 기도는 그들의 영성이 부패했다는 가장 중요한 증거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른 행실인데, 그들은 제사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입니다. 제사는 죄를 씻어내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을 고치는 과정입니다. 기도와 제사를 통해 우리는 거룩함의 능력을 얻고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번제가 아니라 순종을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번제를 드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소유의 일부를 떼어 바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순종은 어렵습니다. 매일 자신의 욕망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가장 자유롭고 가장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유다 백성처럼 우리의 타락한 욕망을 따라 멸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들은 내게 순종하지도 않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계획과 어리석은 고집대로 살고, 얼굴을 나에게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등을 나에게서 돌렸다”(24절)는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기도와 예배와 찬양이 성소에만 갇혀 있지나 않은지요? 주님과의 깊은 사귐이 말과 행실로 이어지고 있는지요? 저희의 예배가 죄책감을 덜어내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오늘도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를 올리는 하루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7장: 예배와 일상”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쌀쌀하지만 동이 아름답게 터오는 수요일입니다. 연차총회가 있는 한 주라 좀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예레미아 7장.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 제사와 예배는 삶과 유리된 형식적 종교 행위 곧 타락한 양심에 덧대는 하나의 부적이 되었습니다. 실로의 성막이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도 곧 무너지게 되겠지요.

    메트로 밖으로 분홍색 구름과 하늘이 아름답습니다. 출근할 일터가
    있어서 감사해요. 오늘 하루 생명을 허락하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셔서.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는 주.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뭔가 도움이 되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공의를 구하며 인자를 사랑하고 주와 함께 겸손히 동행하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일상이 주께 올리는 순종의 제사가 되고 나의 인생이 주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나가길. 매일 조금씩. 앞으로 또 앞으로.

    Liked by 2 people

  2. billkim9707 Avatar

    탐욕과 이기심과 쾌락과 분쟁이 점점 격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생각과 언행과 삶이 주님께 초점을 마추고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어야 합당한것을 알지만 모르는 사이에 세상 풍조에 같이 흘러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매일 아침 허락하시는 말씀을 읊조리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깊히 또 깊히 몸과 마음과 영에 새겨 순종하며 살기를 원 합니다. 성전에서 제사보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가되는 삶을 더 원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는 오늘의 일상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Liked by 1 person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루살렘 성전으로 경배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예레미야의 설교입니다. 아!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한 이불 밑에 누워있는데 이불을 확 재껴 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라는 소제목을 보면 성전에서 한 설교 같지만 실상 그 내용은 성전은 없다, 성전은 거짓이다, 성전으로 숨지 말라는 고발입니다. 성전의 부정입니다. 성전의 해체 선언입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라니 더욱 긴장이 됩니다. 3절은 ‘너희의 길과 행실을 바꾸어 올바른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 답이 5절과 6절입니다. 이웃끼리 정직하게 살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고, 이곳 (성전)에서 죄없는 사람을 죽이지 말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은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다 This is God’s Temple, God’s Temple, God’s Temple’ 라고 열심히 읊조리고 찬양해봤자 거짓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믿고 있으니 쓸데없는 짓 (8절)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배를 받으려고 정한 곳을 도둑들이 숨는 곳 (den of thieves, a cave full of criminals)’으로 ( (11절) 만든 죄를 심판하겠다 하십니다. 예레미야에게는 백성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선지자는 허탈했을 것입니다. 준엄한 경고를 전해도 ‘어차피’ 듣지 않을 백성이 밉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중간에서 나는 뭔가 생각도 했겠지요. 울음이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심판의 불가피함, 필연성 God’s wrath is inevitable, God’s judgment is unavoidable 을 아는 예레미야는 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본문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산당을 짓고 자기 자식들을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광경이 나옵니다. 인신제사는 구약 다른 곳에서도 나옵니다. 몰렉 (암몬 부족의 주신) 이나 그노스 (모압 족속의 주신) 같이 고대근동 지역에서 숭배하던 신들은 자식을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를 받는 신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신공양은 여호와와 이방 신들을 구분하는 마커 marker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는 인신제사가 역겹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아버지로 묘사합니다. 오늘 이 부분을 읽는데, 우리는 과연 역겨운 인신제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최근 한국 뉴스에 계속 올라오는 캄보디아의 한국 청년들 감금과 고문, 살인 사건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편에선 쉽게 큰 돈을 벌려고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이 문제인 것 처럼 말합니다. 피해자인데도 되려 공격을 당하는 셈입니다. 돈 벌 기회가 있다면 어디라도 가려고 하는 청년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게 만듭니다.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는게 과언이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다음 세대를 보호하지 않는 세상, 자기가 다 올라가고 난 뒤에는 사다리를 거둬 버리는 야박한 세상, 젊은이에게서 청춘을 앗아간 사회는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고대인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탐욕으로 지은 다리가 무너지고, 탐욕으로 운영하는 여객선이 물에 잠깁니다. 자식을 탐욕의 신에게 바치는 제사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만 올려지는 제사일까요.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라는 주문을 요새 말로 하면, 나는 크리스찬이다! 믿음이 전부다! 예수가 우리의 구주다! 가 될 것입니다. 혹여 주께서 그건 다 거짓말이라고, 아무 쓸 데 없는 말이라고 하시는건 아닌지요.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따스한 이불을 걷어내는 것 같은 주의 손길을 상상합니다. 정신을 차려야지요. 일어나야지요. 주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Like

  4. gachi049 Avatar
    gachi049

    주일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의 능력으로 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게 도와 주시고 일상 생활속에서 신실한 예배자로 사는 삶이 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Like

Leave a reply to tenderlya0860fa44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