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1장 17-25절: 사랑이 한 일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 사도는 아킵보와 온 교회에게 “나를 맞이하듯이”(17절) 오네시모를 맞아 달라고 부탁한다. “동지”는 ‘코이논’의 번역으로서, 운명을 함께 나누는 사람을 가리킨다. 후대 해석자들은 “그가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거나, 빚진 것이 있거든”(18절)이라는 말에 근거하여 오네시모가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고 추측했다. 그것은 노예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만들어 낸 오역이다. 본문 자체에는 그렇게 추정할 만한 단서가 없다. 사도는 오네시모가 노예로서 주인인 아킵보에게 재정적인 빚이나 용서 받을 어떤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도가 갚아 주겠다고 약속한다. 

당시에 편지를 쓸 때는 전문 필경사를 고용하여 대필하게 했다. 그래서 “나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19절)라고 덧붙였다. 이 지점에서 사도가 펜을 넘겨받아 서명하듯 이 문장을 쓴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는 아킵보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를 상기시킨다. 그는 아킵보가 자신이 요청한 것보다 더 넘치게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인다(20-21절). 사도는 곧 그의 교회를 방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다(22절). 

마지막으로 사도는 자신과 함께 있던 사람들의 안부를 전한다. 에바브라는 사도와 함께 감옥에 갇혀 있다. 사도는 골로새서에서도 에바브라의 헌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1:7; 4:12). 다른 네 명의 동역자들(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은 감옥 바깥에서 오가면서 도왔을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보면, 데마는 박해를 견디지 못하여 바울을 떠났다. 

묵상:

이 짧은 편지가 성경 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아킵보가 바울의 청에 응답하여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돌려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편지가 보관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킵보는 바울의 청을 따라 행했고, 그것이 믿는 이들 사이에 미담으로 퍼졌을 것입니다. 아킵보는 그의 집을 교회의 집회소로 사용하도록 내어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바울과 복음을 위해 오네시모를 기꺼이 내어 주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가장 값비싼 재산 목록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는 이미 사도를 통해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더 깊은 감화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이런 편지를 써 준 사도에게 깊이 감사했을 것이고, 사도의 청을 받아들여 자신을 자유인으로 방면해준 아킵보에게도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네시모로 하여금 더욱 신실하게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만든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 전통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은 이렇듯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도 달라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복음이 가지고 있는 ’전복적 힘‘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서 느끼는 가장 큰 감동은 사람에 대한 바울 사도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 때문입니다. 그는 오네시모를 극진히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오네시모가 사도에게서 인격적인 감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킵보에게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 풀어달라고 청하면서도, 그가 빚진 것이 있거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신이 다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또한 사도는 최대한의 예의와 존경으로 아킵보를 대합니다. 사도로서 명령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동지로서 자신을 낮추어 그의 진심에 호소합니다. 그와 같은 진심이 아킵보의 마음을 열게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빌레몬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 낸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성서에 룻기와 유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깊은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믿음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으로 인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기도: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신 주님, 그 사랑으로 저희를 구원해주신 주님, 저희도 그렇게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도 사랑으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풍성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빌레몬서 1장 17-25절: 사랑이 한 일”

  1. bull9707 Avatar

    마땅이 죽어야하는 죄 값을 갚아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네시모 같이 평생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사랑 이웃사랑하며 살기를 원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유혹과 시험과 고난이 있어도 변절하지 않고 순례자로서 거룩한길을 걸으며 인생을 마감하는 믿음을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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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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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사랑은 모든것을 덮어주고 모든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전 13:7)”고 말한 것처럼 사도 바울과 동역하는 사람들이 고난과 핍박을 견딜수 있는 것은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었다고 믿습습니다. 주님. 가까운 이웃에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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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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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바울의 목회서신이라고 분류되어 불리우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대체적으로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 (직접 쓰거나 대필자에게 불러준) 편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 학자들은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와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 게 확실하다고 봅니다. 빌레몬의 집으로 보낸 이 편지의 수신자도 빌레몬이라는 학설이 유력하지만 아킵보를 수신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오네시모가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는 설도 오역과 오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노예가 주인집에서 도망을 나오는 일은 그 자체가 범법이고, 주인에게 손실을 끼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바울의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네시모를 보호하는 바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빌레몬과 아킵보, 또 교회에게 부탁하는 바울은 이미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닌 한 동료요 동역자로 여기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논리와 이성이 뛰어난 바울의 모습에 익숙한 독자에게 빌레몬서는 바울의 감성을 드러내 보입니다. 오네시모의 법적 신분은 노예입니다. 노예는 자기의 인생이 없습니다. 주인에게 달린 목숨입니다. 사정이 어떠했든 오네시모는 주인을 피해 도망 나온 신세입니다. 도망 나온 그가 우연히 바울을 만난 것은 아닐겁니다. 주인집에서 예배도 드렸으니 바울을 본 적이 있었을테고 도망 나와서 바울을 찾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 옆에서 오네시모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법적인 노예 신분은 그대로지만, 이제는 도망자라는 죄목도 추가되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한 형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종에서 형제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서 그리스도를 믿게된 모든 이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묶인 종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자유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노예로 보지 않습니다. 자유인 형제 자매로 대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과거 신분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같은 형제라고 여깁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도망 갔다 다시 돌아온 노예가 아니라 바울의 보증서를 들고 동역자로 들어온 새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목사님의 해설에서 보듯 빌레몬과 교회가 오네시모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이 편지가 전해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잊혀지고 묻힌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편지는 남아서 우리를 촉구하고 가르칩니다. 오네시모가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도우시고, 교회 공동체는 협력했습니다. 오네시모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교회 또한 도왔습니다.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교회로 살 수 있을까요. 연합감리교회는 담대하게 사랑하고, 기쁨으로 섬기며, 용기있게 살아가는 love boldly, serve joyfully, lead courageously 예수 제자들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결단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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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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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청명하지만 쌀쌀한 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겨울은 유달리 추울 거라고 하네요.

    빌레몬서가 마무리됩니다. 오네시모의 주인 (빌레몬 or 아킵보)에게 보내는 이례적인 탄원. 노예 오네시모를 동지(코이노노스)로 곧 사귐과 나눔(코이노니아)의 동반자로 영접해 달라는 radical한 요청이지요.

    오네시모가 남긴 채무가 있다면 그 빚을 자기에게 인계해달라는 사도의 요청은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지역 유지인 수신자가 설마, 이런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수결로 자기 이름을 직접 쓴 진지한 문장은 필요하면 정말 빚을 대신 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사랑. 너무 흔해져서 그저 대중 문화 속의 상투어처럼 느껴지는 단어에요. 교회에서는 더욱 남발되고 진부한 클리셰로까지 변질되는 듯한 단어.

    사랑의 본질은 나눔. 나눔은 자기의 소중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대가 없이 주는 것, 그리고 남의 부채 곧 그 짐과 고통을 조건없이 나눠 져주는 것. 그 평범한 진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메트로의 창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찬란합니다. 생명을 허락하시고 오늘 하루를 살게 하심에 감사.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을 찬양.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의 기적을 때마다 경험하는 인생, 그런 복된 인생의 축복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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