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1장 8-16절: 사람 대하는 태도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사도는 본론으로 넘어간다.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8절)은 그의 종 오네시모를 자유민으로 풀어주어 그에게 돌려 보내는 것이다. 그는 사도로서 그 일을 명령할 수 있지만, 사랑에 근거하여 “간청”(9절)하겠다고 한다. 고압적으로 명령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호소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사도는, 자신이 노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갇힌 몸”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사도가 아킵보에게 호소하려는 것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10절)에 대한 것이다. 히에라볼리 교회는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기 위해 아킵보의 종 오네시모를 파견했다. 그는 감옥 근처에 살면서 바울을 돕는 동안에 감화를 받아 주님을 믿게 되었고, 사도는 그를 아들처럼 총애하게 되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대와 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11절)라는 말은 그의 회심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사도는 오네시모를 계속 곁에 두고 도움을 얻고 싶었으나, 아킵보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서, 그를 돌려 보낸다고 말한다(12-14절). 자신이 아킵보에게 요청하는 일은 “선한 일”인데, 사도는 그가 그 일을 “자진해서”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도는, 오네시모가 잠시 아킵보를 떠난 것은 “영원히 그를 데리고 있게 하려는”(15절)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한다. 오네시모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아킵보와 오네시모는 영원한 동행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 곁에 있을 것”(16절)이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그렇다면, 아킵보에게는 그의 변화가 더욱 감사한 일이 되어야 한다.

묵상:

오네시모가 감옥을 오가면서 바울에게 감화를 받고 주님을 영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것은 사도가 오네시모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존중했다는 뜻입니다. 사도가 그를 노예로 취급했다면, 오네시모는 사도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는 오네시모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존중했고, 어느 정도 관계가 맺어진 다음에는 그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사도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전하는 복음이 진짜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고, 복음을 통해 새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관계 전도”가 어떤 것인지를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오네시모가 회심한 후, 사도는 그가 복음 전도자로서 매우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는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도움을 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킵보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사도로서 그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었지만, 낮은 자세에서 그에게 호소하기로 선택합니다. 아킵보가 자신의 청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들어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사람에 대한 바울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는 주인도, 종도 없다”고 했는데, 그는 주인에게나 종에게나 같은 태도로 임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믿음은 형제 자매들에 대한 존경심과 배려심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누구를 대하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최대의 존중심으로 대하는 것이 사도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었고, 그것이 그의 전도의 힘이었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는 사람을 대할 때 세속적 기준으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저희의 생각을 고쳐 주셔서 누구를 대하든 존귀한 주님의 자녀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저희의 온갖 차별의식을 고치는 힘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빌레몬서 1장 8-16절: 사람 대하는 태도”

  1. bull9707 Avatar

    은혜로 죄의 노예에서 자유를 허락하신것 뿐만아니라 자녀로 입양하시고 상속자로 인정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주님이 저희들을 위해 끝없이 낮아지셔서 극심한 십자가의 고난을 감내하신 예수님의 마음 갖기를 원 합니다만 두렵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닮기를 원합니다.

    자진해서 기쁘게 주님 말씀을 순종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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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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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햇살이 찬란한 아름다운 가을 아침입니다. 고국은 추석 명절을 맞고 있네요.

    단 한 장 (one chapter)으로 이루어진 짧은 편지, 빌레몬서. 노예들에게 조건없이 순종할 것을 가르쳤던 디도서와는 과연 같은 저자가 쓴 것일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의 내용을 담은 편지에요.

    노예 오네시모의 주인 (빌레몬? 아킵보?)에게 오네시모의 속량(emancipation)과 형제로의 영접과 대우를 요청하는 글. 그런데 바울의 요청은 사도로서의 명령이 아닌 fellow Christian으로 부터의 탄원, 곧 간청의 형태로 전달됩니다.

    월요일 아침이에요. 지난 한 주는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힘들었었지요. 삶의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나와 함께 하시고 내게 능력주시는 분, 살아계신 주를 찬양.

    오늘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을 사랑과존중의 랜즈로 바라보고 모두가 주님의 자녀, 주안에서 형제 자매임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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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몸과 마음이 처진 아침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처져 있습니다. 새벽에 눈을 떴지만 묵상하러 일어나지지 않았습니다. 어제 주일을 잘 보내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교회 예배당에 들어갔는데 왜 서늘함과 허무감이 느껴졌을까요. 보통 때 예배당에 들어가 매번 앉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주님, 이 자리에 앉게 하시니 감사합니다’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어제는 앉기도 전부터 전에 모르던 냉냉함이랄까, 거리감 같은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주에는 토요일 종일 앨러지가 너무 심해서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했습니다. 남편만 다녀 왔습니다. 앨러지는 약을 먹고 진정이 좀 되었고, 주초에 여선교회 일로 줌미팅을 하느라 신경을 좀 썼습니다. 어제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서늘하고 서글픈 감정이 온걸까요. 애써 마음을 다잡고 예배를 드리는데 이번에는 설교 말씀에 걸려 넘어집니다. ‘아멘이 없네요.’ ‘이럴 때 아멘 안 하면 언제 하는거죠?’ 이렇게 까지 아멘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제는 아멘하라는 주문이 여러번이었습니다. 설교본문은 마태복음서 4장 광야의 시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신학적으로 고민하고 해석하지 말고 말씀에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순종해야’ 한다고 할 때는 I was totally lost 였습니다. 따지기도 싫고 (따질 수도 없다는게 더 정확한), 남편 말고 다른 누군가한테 설교 잘 들었어요? 어땠어요? 묻기도 싫었습니다. 추석 분위기를 살려 떡과 과일까지 올린 친교 테이블에서 서로 안부 나누고, 별 관심 없는 야구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듣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차에서 남편은 ‘교회를 다니는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싶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고, 그에 대해 나는 ‘교회는 아니어도 예배는 드려야지’ 라는 답이 되지 않는 답을 했습니다. 연인들이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하지요. ‘너 때문이 아니야, 내가 문제지.’ ‘It’s not you. It’s me. I am the problem.’ 두 주 전 만해도 내년을 생각하며 교회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게끔 가게 스케쥴을 조정하기, 장성한 자녀들을 대하는 데 있어 좀 더 섬세해지기, 자신을 돌보는데 적극적이 되기 등 제법 의욕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이었습니다. 통제 밖의 사건들에 그만 휘둘리겠다는 결단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헤어질 결심을 할 때가 된건가 싶었습니다. 마태복음서 4장의 시험이 곧장 나를 찾아온 걸까요. 바울은 지금 빌레몬에게 (혹은 아킵보에게) 오네시모를 받아 들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자기 곁에 두었으면 참 좋겠지만 빌레몬을 위해, 더 큰 그림이 보이기에, 오네시모를 다시 보낸다고 말합니다. 오네시모를 나의 마음이라고 여기고 받아달라고 까지 합니다. 좋은 일도 자진해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빌레몬의 승낙을 구하는 마음으로 간청합니다. 바울의 뜨거운 교회 사랑이 느껴집니다. 자기는 어떻게 되도 상관 없고 그저 오네시모가 잘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네시모 때문에 빌레몬과 아킵보가 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변화된 오네시모가 교회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바울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주님,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또 새 날입니다. 매일 마음이 새로와지면 좋겠습니다. 안 좋은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 앞으로 나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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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키리에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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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26~27). 따라서 상대를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님. 때때로 하나님 자녀를 자녀답게 받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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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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