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장 11-15절: 구원의 세 시제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또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11절)에 대해 설명한다. 그 은혜는 믿는 이들을 “교육하여,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12절) 만들어 준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복된 소망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13절)를 소망하고 기다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심”(14절)으로써 구원을 이루시어, “모든 불법”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살면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14절) 사람이 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는 “아무도 그대를 업신여기지 못하게”(15절) 하라고 권면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디도가 먼저 믿음과 소망 위에 굳게 서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대는 권위를 가지고 이것을 말하고, 사람들을 권하고 책망하십시오”라는 말은 영적 지도자로서 존경을 얻어내라는 뜻이다. 그러한 영적 권위를 얻으려면 그가 먼저 복음의 진리를 굳게 믿고 그 진리에 따라 삶의 변화를 받아야 한다.  

묵상: 

사도는 여기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와는 전혀 상관 없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누구나, 있는 그대로 구원의 은혜를 받고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상태로 있지 못합니다. 구원의 은혜가 그 사람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그 은혜는 우리를 교육한다”(개역개정, “양육한다”,12절)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성령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 안에 거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아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한 순간에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변화의 폭과 속도가 다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그 은혜 안에 머문다면, 필경 과거의 죄 된 습관을 청산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구원의 은혜를 매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복된 소망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가 완성되는 미래를 소망하고 기다리게 만듭니다. 지금 여기서 누리는 은혜가 강할수록 미래에 대한 소망은 더 강해지는 법입니다.

이런 까닭에 “구원에는 세 시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고, 현재는 그 은혜의 양육을 받아 성화의 길을 가는 것이며, 미래는 이 땅에서 누리던 모든 은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신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은혜 안에 더욱 견고히 서서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도서 2장 11-15절: 구원의 세 시제”

  1. billkim9707 Avatar

    복음에는 모든 신자들을 구원하시고 양육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있는것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주님 닮아가고 말씀 순종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들이 수고하고 땀흘려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이유를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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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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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도 구름이 많이 낀 아침을 맞습니다. 화요일이에요..

    아침에 묵상 이메일을 보고 잠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디도서 2장 1절을 할 차례인 것 같은데 11절로 넘어갔네요. 그래도 마음을 모아 주어진 본문에 집중해 봅니다.

    구원의 세 시제. 곧 과거, 현재와 미래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주신 구원. 젊은 날, 하나님을 떠나 깊은 허무의 늪과 혼돈의 풍랑 속에 헤메이던 때를 기억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보혈의 은혜를, 대속의 능력을 알게 하신 주. 죄인을 아들이라 불러주신 그 사랑.

    이루시는 구원. 광야 같은 인생길. 때로는 걱정과 불안으로 또 다른 때는 욕망과 이기심 때문에 넘어지고 길을 잃는 나. 양육과 훈련의 은혜 안에 매일 거하며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이루실 구원. 재림하실 주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주님의 때. 완성의 때를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출근할 곳이 아직 있는 것을 감사. 주신 생명,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감사. 어둠 속에 넘어져 있는 모든 지체들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내 모든 걱정과 불안과 근심도 십자가 그늘 아래 내려놓는 오늘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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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같이 살기를 원하고 사랑하셨으나 인간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과 정의의 주님께서 금하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삐딱하게 핑계를 대면서 얼버무리며 듣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의보다 사랑이 앞서 죄가운데 빠진 인간을 십자가의 값으로 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시고 있어 누구든지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겠다(계 3:20)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코끝에서 숨이 멎는 날까지 예수님의 구원의 말씀과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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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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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떻게 해서 믿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믿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엄마로부터였겠지요. 엄마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첫인상’이겠지요. 왜 하나님을 알고 싶어졌는지, 하나님을 믿어야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그냥, 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생긴걸로 기억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게 만든 학교 같은 곳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었고, 나의 관심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합쳐졌습니다. 오늘 해설의 과거 시제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정확하게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질문은 여전히 생기고 답을 찾는 노력 또한 계속되겠지요. 처음 믿을 때 가졌던 질문의 상당 부분은 교리가 답을 해주었습니다. 교리를 공부하자 답을 얻긴 했지만 교리가 믿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리는 답의 형태지만 나의 답이 되려면 경험과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원은 여기-지금 (here and now)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열심이었어도 지금 열심이 없으면 괴롭고 허전합니다. 죄책감이랄까, 소외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 엉망이었어도 지금 되돌아 왔으면 설레고 기쁩니다. 집을 나간 작은 아들과 한 배를 탄 느낌입니다. 구원의 세 시제가 한결 같은 감격을 갖춘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과거에) 구원 받았고, (현재)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고, (앞으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사람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며칠 전 뉴욕타임스 일요일판에 ‘경외감함을 찾아서 In Search of Awe’ 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유대력으로 로쉬하샤나와 욤키퍼로 이어지는 10일간을 ‘Days of Awe’ 라 부른답니다. 필자는 몇 몇 분야의 사람들과 경외감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을 토대로 이런 말을 합니다. 경외감은 일회적인 사건이나 순간의 품질 quality 뿐이 아니라 반복할 수 있고 여러번 가질 수 있는 횟수 quantity 와 관계가 있다, 경외감을 느끼려고 적극적으로 찾으면 찾아진다고 합니다. 신비한 체험 (불꽃떨기 앞의 모세가 한 경험 같은) 만이 경탄이나 경외라고 여기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합니다. 어찌보면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툭하면 오썸! 어메이징! awesome! amazing! 하는게 말이라도, 말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은연 중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과거의 감동을 기억하는 일, 지금 있는 곳, 마주하는 현실에서 찬미할 조건을 찾는 일, 장래의 소망을 완성해 주실 주님을 바라보는 일들이 고단하고 위험하고 각박한 말세의 때를 살았던 바울과 디도와 함께 하는 길이 되려나요. 감사합니다 주님. 9월이 가고 새로운 달이 옵니다.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세며 하루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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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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