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장 1-8절: 고난 가운데 기뻐하는 이유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에 대한 엄숙한 명령을 준다. 앞에서 본 것처럼, 디모데는 바울이 당한 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었다. 사도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1절) 하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늘 성삼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자주 잊는 데 있다. 성삼위 하나님 중에서도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한다. 그분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으로서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신다. 사도는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가 임할 것을 디모데에게 상기시키며 “엄숙히 명령”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과 그분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는다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2절)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라고, 디모데에게 명령한다.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면 영영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끝까지 참고” 가르쳐야 한다. 필요하다면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음전하기에 더욱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듣기 거북한 말을 하면 배척하고 박해할 것이다. 원문을 보면, 사도는 그런 사람들을 “귀가 가려운 사람들”(3절)이라고 표현한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마음의 귀에 양심의 가책이 들린다는 뜻이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4절) 양심의 가책을 무마해 줄 스승들을 모아들여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것이다(5절). 그래서 사도는 복음을 전하려면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라고 말한다. 

이어서 사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다. “부어드리는 제물”(개역개정 “전제”, 6절)은 포도주 잔을 제단에 쏟아 부어 바치는 제물을 가리킨다. 순교로써 자신의 피를 쏟을 때가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7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디모데 역시 고난을 견디고 전도자의 길에서 완주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보상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8절). 그것은 전도자에게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묵상: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 깊은 곳에서 성령의 부르심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악 속에 머물러 살기 위해 그 음성을 무시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가 그들을 “귀가 가려운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은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그들은 마음의 귀에 들리는 성령의 고발에 귀를 틀어막고 살아갑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귀에 성령의 음성을 증폭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애써 외면해 온 성령의 음성을 대면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하는 일은 자주 거부와 배척과 혐오와 박해를 직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고난은 기본값인데,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난에 고난을 더하는 일입니다. 재산 상의 손실, 명예의 손상,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배척 그리고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목숨보다 큰 생명이 있고 이 땅에서 누리는 것보다 더 영원한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사도는 디모데에게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1절)라고 했고,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8절)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믿고 소망하지 않으면 현세에서 복음을 살아낼 수 없고, 복음 전파에 따른 고난과 박해를 견딜 수 없습니다.

사도는 그 믿음과 소망으로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아들처럼 아끼는 디모데도 그 길을 따라 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시퍼렇게 살아 있지 않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

다시 오실 주님, 영원히 다스리실 주님, 저희에게 이 믿음을 주시고 이 소망을 주십시오. 저희의 믿음이 고난을 피하려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는 믿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후서 4장 1-8절: 고난 가운데 기뻐하는 이유”

  1. billkim9707 Avatar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고 새나라와 새땅을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항상 기억하며 성도와 교회를 비난하고 멸시하는 세상에서 주늑들지 말고 담대히 부활의 주님을 증언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짜뉴스를 더 좋아하고 복음을 멀리하는 세상에서 고난과 박해를 감수하며 행군의 나팔 불때까지 의의 멸류관을 소망하며 선한싸움으로 인생을 마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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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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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시고 지켜보시고 장차 심판주로 오셔서 심판의 잔을 세상에 쏟아 부으실 것을 믿고 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부르실때까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고난과 핍박이 와도 이 믿음 변치않고 복음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우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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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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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많이 끼고 선선한 수요일 아침입니다. 한 일주일은 더 비소식이 있네요.

    사도의 마지막 목회서신 겸 유언장. 오늘은 디모데 후서의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엄숙히 넘겨주는 선교의 바통. 끊김 없이 선포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진리의 본질을 끝까지 지켜내라는 명령.

    반드시 고난이 따르겠지만 그가 싸울 싸움을 다시 오실 주께서 놓침 없이 응시하고 계시겠죠? 사명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고 나면 바울과 같이 향기로운 전제로 부어 올려지고 마침내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되겠지요.

    하루가 밝아 오네요. 삶을 주신 주, 그 은혜에 감사. 주가 주신 사명, 그리고 고난을 견디는 이유를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고통과 슬픔이 많은 이 광야 같은 세상. 지치고 넘어지고 때로 길을 잃어도 주와 더불어 다시
    일어나 사명의 길을 끝까지 걷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저 가나안성 귀한 성에 들어갈 때까지.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제게도 주어진 사명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기를.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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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었던 시기에 쓰여졌다고 봅니다. 로마의 대화재가 예수 추종자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크리스찬들이 당하는 박해가 매우 극심했습니다.. 광기에 찬 네로는 베드로를 십자가에 거꾸로 달아 처형했고, 감옥에 있던 바울은 참수형을 당합니다. 네로 자신은 자살합니다. 팍스 로마나로 기억되는 로마제국의 부흥 이면에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온갖 악행이 감춰져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내 삶을 바쳤고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이제는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왔도다).’ 의연함이 느껴집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상대방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죽음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확인함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용기를 찾은 것 같습니다. 디모데를 안심 시키려고 했으면 ‘디모데,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아.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풀려날거라고 믿어. 주님은 나를 살리셔서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하실거야. 그러니 힘을 내.’ 이런 말을 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순교합니다. 이 편지를 쓰고 오래 되지 않았을 때 로마는 형을 집행합니다. 예수 공동체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순교하고, 일반 신도들은 고난의 현장에서 매일 울었을 것입니다. 이 때 마가복음서가 나옵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잘 알았던 신자 요한 마가 (John Mark)가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성전 예배,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가 끝난 시점입니다. 마태와 누가복음서도 뒤를 이어 나옵니다. 요한 사도는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목숨을 잃지 않지만 순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유배된 곳에서 요한은 계시를 얻습니다. 심판의 광경, 세계가 멸망하는 그림을 봅니다. 밧모섬의 요한도, 도처에 숨죽여 살던 크리스찬들도 자신의 시대가 세상의 ‘종말’이 임박한 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해지는 바울의 심정은 ‘종말’을 앞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고난의 끝에서 맞이하는 종말. 배교를 강요하고,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하고, 주님 붙잡은 손을 놓으라고 협박하는 권력자의 행패를 ‘통과’하는 길은 죽음을 쏘아보는 것,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도록 빤히 보는 것이었을까요. 제단 위에 다 부어진 술. 남은 것이 없는 빈 병. 야곱과 바울, 베드로, 스데반, 요한…카톨릭에서 성인들을 기리는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고난 속에서 살고 고난 중에 죽어간 그들의 기도와 피가 우리에게 양식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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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첫번째 순교자로 알려진 ‘야고보’를 썼는데 야곱으로 타이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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