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에 대한 엄숙한 명령을 준다. 앞에서 본 것처럼, 디모데는 바울이 당한 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었다. 사도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1절) 하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늘 성삼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자주 잊는 데 있다. 성삼위 하나님 중에서도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한다. 그분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으로서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신다. 사도는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가 임할 것을 디모데에게 상기시키며 “엄숙히 명령”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과 그분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는다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2절)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라고, 디모데에게 명령한다.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면 영영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끝까지 참고” 가르쳐야 한다. 필요하다면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음전하기에 더욱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듣기 거북한 말을 하면 배척하고 박해할 것이다. 원문을 보면, 사도는 그런 사람들을 “귀가 가려운 사람들”(3절)이라고 표현한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마음의 귀에 양심의 가책이 들린다는 뜻이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4절) 양심의 가책을 무마해 줄 스승들을 모아들여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것이다(5절). 그래서 사도는 복음을 전하려면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라고 말한다.
이어서 사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다. “부어드리는 제물”(개역개정 “전제”, 6절)은 포도주 잔을 제단에 쏟아 부어 바치는 제물을 가리킨다. 순교로써 자신의 피를 쏟을 때가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7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디모데 역시 고난을 견디고 전도자의 길에서 완주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견디면서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보상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8절). 그것은 전도자에게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묵상: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 깊은 곳에서 성령의 부르심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악 속에 머물러 살기 위해 그 음성을 무시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가 그들을 “귀가 가려운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은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그들은 마음의 귀에 들리는 성령의 고발에 귀를 틀어막고 살아갑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귀에 성령의 음성을 증폭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애써 외면해 온 성령의 음성을 대면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하는 일은 자주 거부와 배척과 혐오와 박해를 직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고난은 기본값인데,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난에 고난을 더하는 일입니다. 재산 상의 손실, 명예의 손상,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배척 그리고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목숨보다 큰 생명이 있고 이 땅에서 누리는 것보다 더 영원한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사도는 디모데에게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1절)라고 했고,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8절)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믿고 소망하지 않으면 현세에서 복음을 살아낼 수 없고, 복음 전파에 따른 고난과 박해를 견딜 수 없습니다.
사도는 그 믿음과 소망으로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아들처럼 아끼는 디모데도 그 길을 따라 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시퍼렇게 살아 있지 않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
다시 오실 주님, 영원히 다스리실 주님, 저희에게 이 믿음을 주시고 이 소망을 주십시오. 저희의 믿음이 고난을 피하려는 믿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기뻐하는 믿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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