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장 1-13절: 고난을 견디는 이유

3–4 min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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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앞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위축되어 있던 디모데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다음,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굳세어지십시오”(1절)라고 격려한다. 디모데에게 필요한 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를 때 얻을 수 있다. 그럴 때 그는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할 수 있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게 된다(2절). “믿음직한 사람들”은 디모데처럼 고난 중에도 복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복음이 이렇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믿는 이들에게 특별한 헌신이 필요하다. 사도는 여기서 세 가지의 비유를 사용한다. 첫째, 훌륭한 군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살림살이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상관에게 충성을 다하며, 모든 고난을 견딘다(3-4절). 둘째, 운동선수는 경기할 때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를 한다 해도 월계관을 얻을 수 없다(5절). 규칙을 지키는 것은 절제력을 요구한다. 셋째, 농부는 추수하기까지 많은 고난을 견뎌야 하지만, 추수한 곡식은 그의 소유가 된다(6절). 

사도는 이 세 가지 비유가 무슨 의미인지를 잘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7절). 복음 전파의 과정에는 많은 고난이 있지만, 복음 전하는 사람에게는 큰 상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도는 디모데에게,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고,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8절)라고 말한다. “기억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마음에 새겨두다” 혹은 “곱씹어 그 의미를 새기다”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고난을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자신도 지금까지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구금되어 있는 것은 자신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9절). 그가 고난을 견디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10절) 때문이다. 그를 통해 구원 받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사도는 “믿을 만한 말씀”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11절)이다. 사도는 로마서 6장 8-11절에서 이 사실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둘째, “우리가 참고 견디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12절)이다.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또한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부인하는 사람은 마지막 심판 때에 당신에게 부인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마 10:33; 눅 12:9). 넷째,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언제나 신실”(13절)하시다. “그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그분은 그분의 본성대로 행하신다는 뜻이다. 사도는 이런 분을 믿기에 그분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놓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묵상: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했음에도 자신을 2세대 신자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면서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고전 15:3)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디모데는 3세대 신도인 셈이고, 디모데를 통해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들은 4세대 신도가 됩니다. 4세대 신도들은 그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고, 그것이 이어져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 “복음의 연결고리”가 계속 이어져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난과 박해와 순교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사도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고, 그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그분에게 일어날지를 깊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 대해 바로 알면, 그분에게 존재 전체를 걸 수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 죽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 참고 견디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곁길로 가도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그분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겪는 고난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을 것이라는 소망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신이 얻은 영원한 생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얻게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모든 고난을 견디고 복음을 전하게 만듭니다.

생명과 구원의 복음은 수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연결고리가 우리에게서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로 굳세어져서”(1절) 전해 받은 복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

저희가 전해 받은 복음 안에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피가 담겨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고귀한 복음이 저희 안에 고여 썩지 않도록, 저희에게도 용기와 열정을 주십시오. 우리가 믿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게 하시고, 저희의 헌신을 통해 얻는 한 영혼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후서 2장 1-13절: 고난을 견디는 이유”

  1.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셔서 죽고 부활하심을 믿으로 복된 구원의 은총을 허락 하시므로 장차 오실 그분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시니 그 은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과 함께죽으면 그분과 함께 살것이며 참고견디면 우리도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요 부인하면 그분도 부인하실 것(11~12)이라는 이 복된 믿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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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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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가을의 청명함이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이제 9월도 반 절을 훌쩍 넘어갔네요.

    선교의 바통을 영적 아들에게 넘기며 하는 비장한 유훈들. 고난을 견디는 믿음,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확신을 끝까지 붙들라는 것.

    우리는 누구나 죽겠지요? 그런데 자연적인 쇠퇴의 과정을 다하고 점점 fade out 하는 것과 연극이 한 가운데에서 갑자기 끝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로마의 시민권과 하늘 시민권의 치명적인 갈림길. 그리고 한쪽 길에는 갑작스런 죽음의 공포가 기다리고 있어요. 사도는 그 길로 사명의 경주를 완주하기로 작정했고 그 경주의 바통을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넘겨주려하고 있지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기 위해, 영광의 월계관을 바라며, 심판과 보응이 있음을 믿으며.

    이제 하루를 시작합니다. 좀 생각이 많은 아침이에요. 걱정과 근심, 괴로움과 슬픔은 광야 같은 인생 길을 늘 따라오겠지요? 생명으로 이르는 길, 그 길은 좁고 협착하여 자주 넘어지고 자주 실패하겠죠?

    십자가를 깊이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이 괴롬 많은 광야의 순례길이 마침내 끝날 때까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내게 주어진 사명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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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illkim9707 Avatar

    140년전에 죽음을 각오 하고 조선에 들어와 양화진에 묻친 선교사님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감사하게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부활한다고 읊조리면서도 군사같이 훈련받기를 꺼려하고 운동 선수같이 뛰는것을 게을리하고 농부같이 기다리지 못하는 염체없는 존제입니다, 그러기에 연수는 오래 되었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차세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삶으로 사랑하여 그토록 귀한 복음을 전수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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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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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수를 믿고 안 믿고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받아 들이는 것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내 마음은 나의 것이라지만 내 ‘마음대로’ 마음을 부릴 수 없는 모순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서 우리의 통제 밖의 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정해진 사람, 믿게 되어 있는 사람 만이 믿는다면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분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넓고 깊고 높다는 고백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바울은 이미 믿기로 정해진 사람들 즉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어 있는 이들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사명감이 (10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베푸시고’) 있었고, 이 일을 위해 부르신 군사, 운동선수, 농부인 복음전파자들이 끝까지 잘 달릴 것을 늘 기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정된 이들이 받기로 예정된 구원이 전부라고, 숙제 끝! 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지와 같은 인간의 의지와 주장과 선택에 대해 바울이 생각하고 고민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기를 원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자기도 힘을 보태는 것이 자기 삶의 목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해 디모데를 보내셨다고, 그래서 디모데를 격려하여 끝까지 한 길을 가도록 돕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와 지금 읽는 두번째 편지는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두 편지를 각각 다른 사람이 썼다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바울 서신 중에 특별히 세 편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는 바울을 따르던 제자들 중누군가가 바울이 쓴 편지들을 참고해서 후대에 바울의 이름으로 쓴 편지라는 학자들이 있는데 비교적 널리 받아 들여지는 의견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정말 그렇게 썼는지, 아니면 평소에 바울을 잘 알았던 사람이 바울이라면 이런 바램을 가졌고, 이렇게 조언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쓴 편지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신약의 일부로서 지금껏 많은 이들이 의지하고 지혜를 구했던 디모데전후서의 구절들은, 더 나아가 성경책 어디라도 펼쳐 읽을 때 일어나는 일들은 사람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예비하신 섭리라는 고백에 동의하게 됩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나를 구해주시기로 정하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믿어지고, 은혜에 눈 떠진 것이 감사합니다. 당신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에 있어 성장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저절로 되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여전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성과 사고의 익숙한 틀 밖으로 초대하시는 주님, 나의 노력이나 결단이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매일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고 그에 응답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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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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