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장 17-25절:교회가 작동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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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장로”(17절)는 앞에서 언급된 “감독”과 같은 뜻이다. “장로”는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감독”은 비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3절에 나온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십시오”라는 명령과 마찬가지로,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과 관계 있다. 교회는 확대된 가정이므로, 교인들은 가정에서 부모를 공양하듯 영적 지도자들(장로 혹은 감독)을 대해야 한다. “존경하다”는 심적 태도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물질적인 지원까지 포함한다. 

참고로, 일부 교파에서는 “다스리는 장로들”과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을 따로 언급한 것에 근거하여, 목사로서의 장로직(전도와 교육)과 평신도 장로직(행정과 치리)을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본문이 에베소 교회에 두 종류의 장로가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사도는 교회가 영적 지도자를 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명령에 대해 두 가지의 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신명기 25장 4절로서 “타작 마당에서 낟알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다(18절). 사도는 이 말씀에서 장로들에 대한 물질적인지원의 근거를 찾는다. 다른 하나는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7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어느 지역에 가든지 그들을 맞아들이는 사람의 집에 머물며 그 집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눅 10:7)고 하셨다. 

장로로 세움 받은 사람이 중대한 문제를 범할 수 있다. 그런 의혹이 발생하면, 율법에 따라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을 때만 받아들여 조사해야 한다(19절). 만일 그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공개적으로 다루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게 해야 한다. “죄를 짓는 자들”(20절)은 “죄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청산하지도 않는 경우에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교인들 중에 중요한 문제가 발견되면 세 단계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가르치셨다(마 18:18-20). 다만, 교회는 그 과정에서 “편견 없이” “공평하게”(21절) 처리해야 한다.

이런 사태를 맞지 않도록 사도는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안수하지 마십시오”(22절)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그는 앞에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제시했다(3:1-13). “남의 죄에 끼어들지 말고”는 “다른 사람의 죄에 연루되지 말고”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교회 안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다 보면, 그 문제에 연루되어 비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를 깨끗하게 지키십시오”라고 덧붙인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가 연루되어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사도는 숨겨진 죄라 해도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고(24절), 착한 행실도 언제까지나 숨겨질 수 없다(25절)고 말하면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순리대로,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권한다. 

묵상:

바울 사도는 자비량 전도로 유명합니다. 그는 율법 교사로 훈련 받는 동안에 가죽 세공업을 배워 익혔습니다. 유대교 율법 교사들은 율법에 대해 상담해 주고 금전적인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회심하고 나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필요하다 싶을 때면, 고린도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신세를 지지 않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에서는 루디아의 물질적 지원에 의지했고, 그 후에도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는 물질적인 지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도가 교인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은 그럴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 그 권리를 내려 놓은 것입니다.

사도는 자신의 선택이 다른 복음 전도자나 영적 지도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교인들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 자신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교인들에게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이 전도자나 영적 지도자에게 바울처럼 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교인들의 물질적인 도움에 의지하여 교회를 치리하고 전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지도자에게는 권리인 동시에 책임입니다. 그들은 교인들에게서 받는 재정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자신의 소임에 신실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영적 지도력을 회수해야 할 정도로 큰 죄를 범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쩌다가 범하는 실수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 큰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명백한 죄에 그대로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인들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의 행위입니다.

교회는, 영적 지도자들의 신실한 영적 생활과 섬김 그리고 교인들의 사랑과 후원이 합해질 때 그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교회를 통해 성육신의 사역을 지속해 가시는 주님, 저희에게 맡겨주신 교회를 축복하셔서, 영적 지도자들에게 신실함과 겸손함을 주시고, 모든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응답함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5장 17-25절:교회가 작동하는 법”

  1. billkim9707 Avatar

    말씀이 육신이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지은 교회를 원 합니다. 주님을 바루게 깨닫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제대로 하지 못 했으면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존대받기를 기대하고 살아온 얄팍한 위선자 입니다.

    주님앞에서도 잘못은 감추고 드러나면 변명하고 겨자씨보다 더 적은 선행을 부풀어서 교회에 드러냈든 죄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다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와 은혜를 간구합니다. 앞으로는 빛과 이름없이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밑거름이 되기를 원 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일도 할수없는것을 압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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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디모데서를 읽다가 드는 생각은, 여러 서신들이 교회 앞으로 보낸 편지인 것과 달리 이것은 디모데 개인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라는 점입니다.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에 대한 바울의 판단이나, 노인과 과부를 대하는 태도 등을 이야기 한 부분을 마치 교인 전체에게 당부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디모데서는 디모데 본인이 교인들에게 읽어주지 않는 한 디모데가 혼자 간직할 편지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약간 마시는 게 좋겠다는 구절을 읽다가 갑자기, 디모데가 바울에게 먼저 편지를 썼을까? 껄끄러운 문제를 만났을 때, 여러 사람이 각각 여러 소리를 해서 중심을 잡기가 어려울 때, 혼자 씨름하는 신앙의 고민에 조언이 필요할 때 바울에게 편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편지는 원칙적인 것에서 부터 세세한 것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의 신학적인 통찰보다 교회 안의 구체적인 사안들을 더 많이 언급합니다. 편지의 도입부에서 바울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 끝없이 이어지는 족보 이야기 쓸데없는 말싸움 등은 전혀 유익하지 않으니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스타일이라면 당시에 돌아다니던 ‘썰’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고 따져서 다시는 헛된 소리들을 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 같은데, 그대신에 편지는 친밀하고 사적인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하는 맞춤형 편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여선교회의 임원을 하면서 깨닫는 것 가운데 하나가 리더십입니다. 내가 부회장으로 임명 받았을 때 회장도 새 사람이 임명되었습니다. 회장은 부회장으로 일하다 회장이 되었고, 나는 임원을 맡지 않고 ‘밖에’ 있던 사람인데 당시 임원 중에서 부회장으로 세울 사람이 없었는지 나를 공천했습니다. 회장과 둘이 만나 일정을 짜면서 나는 리더십 ‘브랜드 brand’를 언급했습니다. 그가 부회장이었을 때 회장이던 사람은 독단적이고 충동적인 면이 강해서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임원들과 의논 없이 자기 생각에 할 수 있다 싶으면 무조건 고 go! 였습니다. 새 회장은 그런 회장의 파트너로서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애를 많이 썼습니다. 나는 그가 부회장으로서 많은 일을 해냈고 (회장 대신에), 하나하나 본인이 다 챙겼던 것을 여러 경로로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유능한 부회장의 역할이 너무 익숙해서 내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들면 어쩌나, 혹시 전임회장에게서 어디 나서서 일 만드는거나 배웠으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며 긍정적이고 또 부지런한 사람이어서 내게 도움 만 주었을 뿐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습니다. 자기 리더십 브랜드는 별 것 아니라고, 앞의 회장들처럼 쎄거나 선동적이거나 밀어 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내게 답을 했는데 4년 임기를 마치면서 나는 그에게 당신은 섬기는 리더, servant leadership의 롤 모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와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묶여서 그는 서부지역 (웨스턴 쥬리스딕션)의 회장으로, 나는 전국 여선교회의 자문위원으로 또 4년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이 하는 조언을 읽으며 그를 떠올립니다. 누구에게도 편견을 갖지 말고 공정히 이 모든 일을 하라는 21 절 말씀은 내가 그에게서 배운 리더십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작은 사람들, 부족한 ‘여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교회를 이루어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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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교회는 육신적으로, 특히 영적으로 병든 환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의견과 틀린다고 반박함으로 상처를 받고, 때로는 말씀 중에도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서로 피를 나누지는 아니했으나 주안에서는 믿음의 형제자매 임을 믿습니다. 따라서 겸손하고 이타적 사랑스러운 언행을 구사함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또한 상처를 주고 받은 신들은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야 합니다. 주님. 아직도 때때로 교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상처의 언행을 묶어 주심으로 신실하고 사랑이 가득찬 교회가 이루어지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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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선선한 기운이 완연한 아침입니다. 이제 고국방문도 두 밤이면 마무리되네요. 고령의 부모님과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며 보낸 선물 같은 시간이었지요. 이제 몇 번이나 더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오늘 본문은 교회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장로 (즉 목회자)에 대한 대우 및 경책, 그리고 죄와 선행의 결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에 좋은 목사님들이 계신 것은 큰 복이고 목회의 리더쉽은 기업 CEO의 그것만큼 한 교회의 성쇠를 좌웃하곤 하지요.

    또 평신도들도 더 이상 관중석에 앉아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으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모두가 baseball player 그러니까 사역자 그리고 다른 교인을 돌보고 먹이는 목자(pastor)가 되어야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의 성령, 하나의 영성으로 묶여져야 하고, 사랑에서 서로 권면하고 경책할 수 있는 질서와 민주주의가 세워져야 되지 않을지요.

    주님의 몸이 되는 교회, 시온성과 같은 교회, 사탄의 권세를 꺽고 십자가 아래 무릎 꿇리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이 작고 보잘데 없는 인생도 주의 성결한 성소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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