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것들”(11절)은 앞에서 디모데에게 부탁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은 디모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인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이기도 하다. “명령하고 가르치십시오”라는 말은 목회자의 두 가지 과제를 보여준다. 진리를 행하도록 명령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명령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젊은 사람이 한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될 경우, 나이값으로 인해 업신여김을 당할 수 있다(12절). 당시 디모데는 삼십대에서 사십대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당시 기준으로 오십은 되어야 뭘 알고 있다고 인정 받았다(요 8:57).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 믿는 이들의 본이 되는” 것 밖에 없다. 말과 행실을 통해 영적 권위를 인정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는 일과 권면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13절)해야 한다. 여기에서 “읽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회당에서 소리내어 성경을 읽는 행위를 가리킨다. 말씀을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고, 필사하는 것은 더 유익하다. 앞에서 사도는 자신의 에베소 방문이 늦어질 지 모른다고 했다(3:15).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역할을 대신 하라고 부탁하는 셈이다.
디모데는 장로들에게 안수를 받을 때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14절). 가르침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 같다. 방언이나 신유 같은 은사들은 누구나 귀중히 여기는데, 가르침의 은사는 소홀히 하기 쉽다. 믿는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점에서는 가르침의 은사는 매우 중요하다. 사도는 디모데에게, 영적 생활에 힘써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15절) 하라고 권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과 자신의 “가르침”을 “살피라”고, 그런 일을 “계속하라”(16절) 명령한다. 영적 생활은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대 자신도 구원하고,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하지만 그 구원 안에 머무르고 그 은혜 안에서 변화되고 자라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묵상:
사도는 앞에서 디모데에게 “경건을 위한 훈련”을 강조했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체력 훈련을 하는 것처럼, 영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영성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새번역은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7절)라고 했는데, 정확히 번역하면 “경건함에 이르도록 당신 자신을 훈련하십시오”가 됩니다. 16절에서 사도는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을 살피십시오”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살피다”로 번역된 헬라어 ‘에페코‘는 “면밀하게 점검하다”라는 뜻입니다. “경건함에 이르는 것”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있어서”(12절) 성숙한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가르치며 힘써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그것은 영적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지만,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16절에서 사도는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 자신도 구원하고,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도, 다른 사람도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그런 뜻으로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믿는 이들의 영성 생활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 안에 머무르고, 그 구원을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영적 생활을 멈추거나 게을리 하는 것은 이미 얻은 구원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원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면, 그 구원에 머물러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믿게 하고, 믿는 사람을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써 안겨 주신 선물입니다.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사적 표현이지 사실적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 7:1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은 생명으로 향하는 문에 들어선 것입니다. 좁은 문 뒤에는 좁은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좁은 길을 걷는 것이 영적 생활입니다. 그 길은 비록 좁지만, 그 길에는 참된 생명이 있고,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좁은 길을 걸으며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도:
저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생명의 길을 기뻐 뛰며 걷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의 길을 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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