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장 1-5절: 거짓 교훈에 대한 반박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 사도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마지막 때에 일어날 배교와 미혹에 대해서 경고한다(1절). “성령께서 환히 말씀하십니다”라는 말은 성령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예언서(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말씀)를 통해 알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도는 “마지막 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지막 때는 구원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속이는 영과 악마”가 기승을 부린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을 통해 믿는 이들을 유혹할 것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들은 “거짓말쟁이”(2절)다. 그들은 “속이는 영과 악마”에 의해 속아서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사도는 그 사람들에 대해 “양심에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양심이 불로 지져진”이라고 해야 한다. 양심이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뜻이다.

사도는 두 가지의 예를 들어, 거짓 교사들이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들의 가르침은 철저한 금욕을 요구했는데, 예컨대, 결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일부 음식에 대해서 금식을 요구했다(3절). 극단적인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의 금욕주의 사상이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러한 이단적 사상은 당시 여러 지역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8장부터 10장까지에서는 음식 문제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여기서 사도는 간단히 반박한다(3-4절). 이 반박의 사상적 근거는 창세기 1장이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시면서 매일 “좋다”(3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고 하셨고, 마지막에는 “보시기에 참 좋았다”(31절)고 하셨다. 율법에는 일부의 음식을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레위기 11장), 예수님은 그 모든 음식 규정을 거부하셨다. 레위기의 음식 규정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잠정적인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음식 규정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막 7:19)고 선언하셨다. 베드로 사도는 환상 속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고 거부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행 10:15)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사도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5절)라고 결론 짓는다. 

묵상:

금욕주의는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금욕주의적 가르침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게 한다는 점에서 솔깃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대단한 경지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한 때 사십일 금식기도가 목회자들의 훈장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로 인해 과도한 열정으로 그 일에 도전했다가 건강을 망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성서는 금욕이 아니라 절욕 즉 절제를 가르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에 대해 설명하면서,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5절)라고 권합니다. 우리의 타락한 욕망은 만족을 시켜주면 더 강해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끝은 파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라고 했습니다. 욕망은 적절한 정도에서 절제해야 합니다. 

금욕주의의 반대 극단에 있는 것이 방탕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4절)라는 말씀은 자주 방탕주의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술, 담배도 괜찮고, 마약도 괜찮다고,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방탕주의적인 가르침은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교묘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미혹됩니다. 

금욕주의와 방탕주의에 빠지지 않고 중용과 절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성령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킬 때 열리는 열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5:23).

기도:

주님, 미혹하는 영이 우는 사자와 같이 저희를 노리고 있음을 잊지 말게 해주십시오. 성령님과 늘 동행하여 절제와 중용의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4장 1-5절: 거짓 교훈에 대한 반박”

  1. billkim9707 Avatar

    가짜 뉴스가 교회 뿐마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사회 모든 분야에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 지우치지 않고 항상 깨어있어 성령의 인도하시는 길로 걷기를 원 합니다.

    낭비와 쾌락으로 부터 그리고 지나친 금욕으로 부터 절제를 이웃에게 사랑으로 낭비하는 은사를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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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절제하지 못하는 욕망과 쾌락에 속에서 빠져 있는 세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끝없는 욕망과 쾌락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비꼬아서 해석하고 정치와 결탁하여 한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있습니다. 전쟁은 멈추지 않고 강한나라는 더욱 강함을 과시하여 약한나라를 짓밟고 있습니다. 점점 노아시대 처럼 변해가는 세상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참다 못하시고 물로 세상을 쓸어버리는 심판을 하시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무지게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녹아내려 없어지고 원소들은 불타서 없어지는 심판을 하실(벧후 3:12)거라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결국 지금의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주님. 그날이 오기전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살면서 천국의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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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속이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어 따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속고 있는 지 모르는 상태라서, 거짓인 것을 몰라서 속는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최초의 의심 단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스스로를 방치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속이려고 작정한 인간에게 걸려 진실과는 동떨어진 것을 진실인양,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일로 믿으며 사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불행이며 사회 전체를 곪게 하는 사회악입니다. 금욕주의와 방탕주의가 완전히 반대이면서도 극과 극으로 만나듯이, 확신과 의심 또한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서로 손을 뻗어 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으려고 귀를 닫고 사는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귀와 마음을 열고 일단 들어야 합니다. 들은 것을 곰곰 되새겨봐야 합니다. 감리교는 성서 전통 이성 경험의 4개 기둥이 기초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진리로, 전통은 신뢰할만한 교회의 해석으로, 이성은 성찰의 도구로, 경험은 이를 확증하는 방법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사건, 가르침, 주장, 즉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시간의 각각 다른 얼굴들을 신앙인 (감리교인)이 잘 읽고, 이해하고, 걸러내도록, 그래서 속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 네 가지 스승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바울은 결혼과 음식에 대해 열린 사고를 했습니다. 본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충만한 시대였지만, 결혼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에 대한 태도도 상당히 개방적이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늘 기도하고 애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에 자기를 맞춰가는 훈련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았을 거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하나님이라는 숲, 복음이라는 숲, 경건이라는 숲. 요즘엔 도통 나무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자기를 나무로 보면서도 같이 있는 이곳이 숲이라는 걸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걸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답고 위대한 세계 속에 작디작은 풀, 개미, 먼지 같은 내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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