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 사도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마지막 때에 일어날 배교와 미혹에 대해서 경고한다(1절). “성령께서 환히 말씀하십니다”라는 말은 성령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예언서(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 말씀)를 통해 알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도는 “마지막 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지막 때는 구원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속이는 영과 악마”가 기승을 부린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을 통해 믿는 이들을 유혹할 것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들은 “거짓말쟁이”(2절)다. 그들은 “속이는 영과 악마”에 의해 속아서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사도는 그 사람들에 대해 “양심에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양심이 불로 지져진”이라고 해야 한다. 양심이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뜻이다.
사도는 두 가지의 예를 들어, 거짓 교사들이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들의 가르침은 철저한 금욕을 요구했는데, 예컨대, 결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일부 음식에 대해서 금식을 요구했다(3절). 극단적인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의 금욕주의 사상이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러한 이단적 사상은 당시 여러 지역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8장부터 10장까지에서는 음식 문제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여기서 사도는 간단히 반박한다(3-4절). 이 반박의 사상적 근거는 창세기 1장이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시면서 매일 “좋다”(3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고 하셨고, 마지막에는 “보시기에 참 좋았다”(31절)고 하셨다. 율법에는 일부의 음식을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레위기 11장), 예수님은 그 모든 음식 규정을 거부하셨다. 레위기의 음식 규정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잠정적인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음식 규정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막 7:19)고 선언하셨다. 베드로 사도는 환상 속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고 거부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행 10:15)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사도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5절)라고 결론 짓는다.
묵상:
금욕주의는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금욕주의적 가르침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게 한다는 점에서 솔깃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대단한 경지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한 때 사십일 금식기도가 목회자들의 훈장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로 인해 과도한 열정으로 그 일에 도전했다가 건강을 망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성서는 금욕이 아니라 절욕 즉 절제를 가르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에 대해 설명하면서,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5절)라고 권합니다. 우리의 타락한 욕망은 만족을 시켜주면 더 강해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끝은 파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라고 했습니다. 욕망은 적절한 정도에서 절제해야 합니다.
금욕주의의 반대 극단에 있는 것이 방탕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4절)라는 말씀은 자주 방탕주의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술, 담배도 괜찮고, 마약도 괜찮다고, 궤변을 늘어 놓습니다. 방탕주의적인 가르침은 인간의 타락한 욕망을 교묘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미혹됩니다.
금욕주의와 방탕주의에 빠지지 않고 중용과 절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성령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킬 때 열리는 열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5:23).
기도:
주님, 미혹하는 영이 우는 사자와 같이 저희를 노리고 있음을 잊지 말게 해주십시오. 성령님과 늘 동행하여 절제와 중용의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히 열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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