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사도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취할 바른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사도는 먼저 남성들을 향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이 없이, 모든 곳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8절) 권한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 팔린”(1:4) 사람들은 변론을 좋아했기에, 논쟁 중에 자주 말다툼을 했다. 믿음의 공동체는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형적인 기도 자세이기는 하지만, 손으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여성 신도들에게는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9절) 몸을 꾸미라고 권한다. 사치스러운 몸 장식에 신경을 쓰지 말고 “착한 행실로 치장”(10절)하라고 권한다. 남성 신도들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1:4)에 빠져 논쟁하는 것이나, 여인들이 겉치장에 있어서 경쟁하는 것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나 “착한 행실로 치장하는 것”도 근본에 있어서 같다.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 위해 여성들은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11절)라고 권한다.
이 권고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 유대교 회당 전통에서 율법 교육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여성 신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문화변혁적인 발언이다. 헬라어 ‘귀네’는 “여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아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조용히”로 번역된 ‘헤쉬키아’는 “차분한 자세로”라는 뜻이며, “순종하는 가운데”는 “순종하려는 태도로”라는 뜻이다.
사도는 이어서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12절)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역시 “여자”를 “아내”로, “남자”를 “남편”으로 번역할 수 있다. 사도행전과 다른 편지에서 보듯, 사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았다. 그가 세운 교회에서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사도는 이 말씀으로써 여성의 영적 지도력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상황에 대해 국지적 처방을 주려 했다고 보아야 한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던 일부 여성들의 지나친 언행을 억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도는, 창세기로부터 두 가지의 이유를 끌어온다. 첫째는 아담이 먼저 지음 받았다는 것이고(13절), 다른 하나는 하와가 먼저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이다(14절).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논리다.
교회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던 여성들에 대해 말한 후, 사도는 여성 신도들 전체를 향해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15절) 살라고 권한다. “아이를 낳은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라는 말은 출산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도는 “아이를 낳는 일” 앞에 정관사를 붙여 놓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출산이 아니라 특별한 출산을 의미한다.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나고, 정숙하게 살면” 낳게 되는 것은 곧 “새 사람”이다. 진실한 믿음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구원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동일하다.
묵상: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의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서가 쓰여지던 시대는 노예 제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회의 소수자로서 노예 제도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철폐를 위해 세를 모을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양성 평등은 성서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읽으면, 성서가 노예 제도를 묵인하고 있다거나, 여성을 차별한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성서는 그러한 사회적 부조리를 그대로 둔 채, 노예 제도와 가부장 제도의 악을 무력화시킵니다. 그것이 발전하여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근거가 되고, 여성 해방 운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의할 또 다른 잘못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을 선택하여 강조하고 불리한 말씀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 세월 동안 남성 설교자들에 의해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본문 때문에 천주교회에서는 여성 사제를 두지 않고 있고, 일부 개신교파에서도 여성에 대한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보아도 그렇고, 빌립보 교회를 여성 지도자들에게 맡긴 바울의 예를 보아도 그렇고, 교회에서의 여성 지도력을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롬 13:1)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부당한 통치 행위를 정당화 했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말씀 앞에 설 때는 무장해제 하고 말씀에 의해 고발 당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지만, 책망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요리하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5절).
말씀 묵상이 우리 삶에 유익한 열매를 맺으려면 늘 진실해야 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 묵상이 우리의 거짓과 허위와 위선을 강화하여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기도:
주님, 오늘도 말씀 앞에 항복합니다. 꾸짖으십시오. 저희가 듣겠습니다. 깨뜨리십시오. 저희가 깨지겠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지어 주실 것을 믿기에 저희를 온전히 주님 손에 맡깁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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