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2장 8-15절: 아이를 낳는 일로 받는 구원

3–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사도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취할 바른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사도는 먼저 남성들을 향해, “화를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이 없이, 모든 곳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8절) 권한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 팔린”(1:4) 사람들은 변론을 좋아했기에, 논쟁 중에 자주 말다툼을 했다. 믿음의 공동체는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형적인 기도 자세이기는 하지만, 손으로 범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여성 신도들에게는 “소박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9절) 몸을 꾸미라고 권한다. 사치스러운 몸 장식에 신경을 쓰지 말고 “착한 행실로 치장”(10절)하라고 권한다. 남성 신도들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1:4)에 빠져 논쟁하는 것이나, 여인들이 겉치장에 있어서 경쟁하는 것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나 “착한 행실로 치장하는 것”도 근본에 있어서 같다. 착한 행실로 치장하기 위해 여성들은 말씀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11절)라고 권한다.

이 권고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 유대교 회당 전통에서 율법 교육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여성 신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문화변혁적인 발언이다. 헬라어 ‘귀네’는 “여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아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조용히”로 번역된 ‘헤쉬키아’는 “차분한 자세로”라는 뜻이며, “순종하는 가운데”는 “순종하려는 태도로”라는 뜻이다. 

사도는 이어서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12절)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역시 “여자”를 “아내”로, “남자”를 “남편”으로 번역할 수 있다. 사도행전과 다른 편지에서 보듯, 사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았다. 그가 세운 교회에서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사도는 이 말씀으로써 여성의 영적 지도력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상황에 대해 국지적 처방을 주려 했다고 보아야 한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던 일부 여성들의 지나친 언행을 억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도는, 창세기로부터 두 가지의 이유를 끌어온다. 첫째는 아담이 먼저 지음 받았다는 것이고(13절), 다른 하나는 하와가 먼저 유혹에 넘어갔다는 것이다(14절).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논리다. 

교회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던 여성들에 대해 말한 후, 사도는 여성 신도들 전체를 향해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15절) 살라고 권한다. “아이를 낳은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라는 말은 출산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도는 “아이를 낳는 일” 앞에 정관사를 붙여 놓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출산이 아니라 특별한 출산을 의미한다.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나고, 정숙하게 살면” 낳게 되는 것은 곧 “새 사람”이다. 진실한 믿음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구원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동일하다. 

묵상: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의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서가 쓰여지던 시대는 노예 제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회의 소수자로서 노예 제도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철폐를 위해 세를 모을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양성 평등은 성서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읽으면, 성서가 노예 제도를 묵인하고 있다거나, 여성을 차별한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성서는 그러한 사회적 부조리를 그대로 둔 채, 노예 제도와 가부장 제도의 악을 무력화시킵니다. 그것이 발전하여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근거가 되고, 여성 해방 운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주의할 또 다른 잘못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을 선택하여 강조하고 불리한 말씀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 세월 동안 남성 설교자들에 의해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본문 때문에 천주교회에서는 여성 사제를 두지 않고 있고, 일부 개신교파에서도 여성에 대한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보아도 그렇고, 빌립보 교회를 여성 지도자들에게 맡긴 바울의 예를 보아도 그렇고, 교회에서의 여성 지도력을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롬 13:1)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부당한 통치 행위를 정당화 했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말씀 앞에 설 때는 무장해제 하고 말씀에 의해 고발 당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지만, 책망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요리하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5절). 

말씀 묵상이 우리 삶에 유익한 열매를 맺으려면 늘 진실해야 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 묵상이 우리의 거짓과 허위와 위선을 강화하여 더 형편없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기도:

주님, 오늘도 말씀 앞에 항복합니다. 꾸짖으십시오. 저희가 듣겠습니다. 깨뜨리십시오. 저희가 깨지겠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지어 주실 것을 믿기에 저희를 온전히 주님 손에 맡깁니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2장 8-15절: 아이를 낳는 일로 받는 구원”

  1. gachi049 Avatar
    gachi049

    아직도 때때로 깊은 가슴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분이 서서히 올라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 냉냉함과 교만과 분냄을 성령께서 말씀으로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과 겸손함으로 변화시켜 주심을 통해 믿음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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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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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바울 신학의 ‘가시’와도 같은 본문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에 대한 평가가 나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다,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 정립이 되었다, 바울이 없이는 교회도 없을 것이다…등의 찬사가 바울은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이다, 바울은 여성을 무시한 반페미니스트였다…등의 비호감 평가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본문이 오늘 묵상 분량입니다. 나 역시 사도 바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옥 같은 그의 글을 읽고 배운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의 고백은 신앙의 토대가 되고 그의 예수 사랑과 이해는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구절들은 발에 가시처럼 박혀 잘 못 걷게 하고, 주저 앉히고, 그만 걷고 싶게 만들기도 합니다. 질문이 생깁니다.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아는게 중요할까요? 아니면,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하고,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이고 적용하는가도 중요하다고 봐야 할까요. 오늘 목사님의 해설과 묵상을 읽으면서 먼저 든 생각은 ‘다행이다’ 였습니다.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을 생리적인 해산에서 ‘문화변혁적인’ 산고의 차원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목사님이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요. 매일 빠지지 않고 묵상을 인도하시는 것도 늘 감사하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말씀을 읽게 하시는 것도 정말 감사하고 다행한 일입니다. 말씀 앞에서 정직하려고 애쓰는 목사님의 태도가 하나의 일깨움이고 배움입니다. 해설을 읽고나니 발에 박힌 가시가 빠졌는지 아프지 않습니다. ‘바울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그것 나름의 유익이 있었다 싶습니다. 바울에 대한 존경과 ‘의심’은 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줬고, ‘성경에 써 있으니 이건 진리다’라는 선언을 너무 쉽게 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묵시문학은 손등이요, 손바닥은 당시의 종말론을 담고 있다는 비유를 빌리자면 본문에 나온 교회 안의 질서나, 여성의 옷차림과 순종 등은 당시 에베소 교회 등 초기 예수공동체를 위한 국지적 처방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가 취할 태도입니다. 손등입니다. 손바닥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하는 부탁, 바울의 교회관이 담겼습니다. 손등과 손바닥을 잘 살펴볼 일입니다. 해산에 관한 대목은 어쩌면 바울의 자전적인 회심 스토리의 연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담을 죄짓게 한 이브 (여자)마저도 해산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구절에서 늘 빚진 자의 심정인 바울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매일 말씀과 함께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목사님과 함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침마다 함께 하는 여기 이 ‘교회’에 속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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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진솔한 묵상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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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illkim9707 Avatar

    남녀노소 부귀귀천을 가리지 않으시고 모두 평등하게 끝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공평한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 올립니다.

    매일 아침 말씀읽고 말씀을 바르게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오해하여 사교로 빠질수있습니다.

    나의 발에 등불이요 내길의 빛이신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시간을 허락하신 은총에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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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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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도 새벽 일찍 잠이 깨었습니다. 시차 때문이겠지요. 또 고령의 부모님과 지내며 여러 상념이 많아지는 탓도 있겠지요?

    오늘 본문은 주로 여성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보이네요. 금붙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우리 말 번역을 보면 이런 식의 장식을 하지 말라는 금지적 권유에 방점이 있어 보여요. 하지만 영어 번역을 보면 (‘adorn with good deeds, not with gold or pearls etc.’) 겉치정보다는 삶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라는 적극적 권유가 그 포인트인 듯.

    여자가 공동체를 가르치거나 인도하는 것에 대한 거부. 하와의 후예인 여자의 더 큰 원죄적 죄책. 출산을 통한 구원 등은 오늘날의 현실과 신앙적 세계관에 비춰볼 때 좀 난감한 얘기들.

    성경도 인간이 쓴 것이라 시대와 문화의 틀과 한계에 안에 넣어져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중 맥락 (then and now)의 프리즘으로 봐야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임의적 해석의 위험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넘어갑니다. 믿음의 길은 어렵다는 것.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꽤 기다려야 해요. 흑암과 혼돈이 가득한 세상. 소망의 촛불을 끝내 지키며 슬픔과 고난의 광야를 기쁨으로 걷는 인생이 되길. 저 가나안성 귀한 곳에 들어갈 때까지.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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