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장 18-20절: 사랑의 한계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아들 된 디모데여”(18절)라는 표현에 그를 향한 사도의 지극한 애정이 담겨 있다. “이전에 그대에 관하여 내린 예언”은 사도가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말해 준 예언을 가리킨다.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예언은 앞으로 그 사람이 하게 될 일과 겪을 일을 알려 준다. 점쟁이의 예언은 불행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성령의 예언은 고난을 대비하게 한다. 그것은 “선한 싸움”에 관한 예언이었다. 로마는 전쟁으로 세워진 제국이어서 군대 혹은 전쟁의 비유가 잘 통했다. 

사람에 대한 “싸움” 혹은 “전쟁”은 모두 악한 것이다. 디모데가 참여한 전쟁이 “선한” 이유는 악한 영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창과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선한 양심”(19절)으로 싸우는 것이다. 사도는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5절)에서 사랑이 우러나오게 하는 것을 디모데에게 목회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깊이 뿌리 내린 상태(믿음)에서 선한 양심을 따라 옳은 것을 분별하고 행해야 한다. 

에베소 교회에는 영적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는 그들이 난파 당한 배와 같다고 말한다(19절). 후메내오는 디모데후서 2장 17절에서 다시 한번 언급되는데, 그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쳐서 신도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구리 세공업자였는데, 바울 사도에게 해를 많이 입혔다. 사적으로 괴롭혔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복음 전파를 방해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습니다”(20절)라는 말은 교회로부터 추방했다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5장 5절에서도 사도는 교회에 나오면서도 성적인 부정을 지속하는 사람을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묵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계명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 9:13)고 하신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서 차별 당하고 무시 당하고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품어야 합니다. 사람을 골라 받는다면, 그 교회는 교회의 자격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사랑의 한계를 그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도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이 그렇고, 부도덕한 삶을 살면서도 회개할 마음이 없는 신도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먼저 혼자 찾아가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회개를 촉구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추방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15-17). 바울 사도는 후메내오처럼 이단적인 가르침을 전하거나 알렉산더처럼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사람을 추방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추방 결정은 “역설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누룩이 다른 신도들에게 퍼지지 않게 하려는 뜻입니다. 복숭아 상자 안에서 하나가 썩으면 그로 인해 주변에 있는 복숭아들이 피해를 입는 것처럼, 회개할 줄 모르는 부도덕한 신도나 이단적인 신도를 그냥 두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치리” 혹은 “권징”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그럴만한 영적 권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교회가 많아지고 보니, 권징의 대상이 되면 “다닐 교회가 이 교회 밖에 없나?”라면서 떠나버립니다. 그로 인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교회가 많아져서 더 편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신앙적으로는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교회를 백화점처럼 혹은 서비스 센터처럼 여기는 저희의 마음을 고쳐주십시오. 주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하시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희로 하여금 거룩한 주님의 몸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지체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1장 18-20절: 사랑의 한계”

  1. billkim9707 Avatar

    세상에서의 싸움은 온갖 흉기로 서로 죽이는 것이고 선한 싸움은 사랑으로 서로 사는 복음의 능력인것을 고백 합니다.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매일 아침 말씀으로 무장하여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진실의 믿음으로 승리의 마지막 숨쉴때까지 변질되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일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앞서 가시는 우리 대장 예수님을 따라 믿음의 군병 이되어 원수 마귀가 감히 해치지 못 하는 믿음의 공동체 가정과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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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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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지금 시대는 낡고 네비도 없는 자동차를 마약과 쾌락, 사악함으로 뭉쳐진 사랑이 없는 술취한 자가 운전하는것 처럼 아슬아슬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주님. 한 순간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갈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백성들을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감싸 주심을 통해 선한 믿음안에서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천국의 소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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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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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나 여러 교회들 앞으로 보낸 편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는 데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방향을 말합니다. 교회와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눈다 즉 교회 안에서는 이렇게 행동하고 밖에서는 저렇게 행동한다는 두 강령이라는게 아니라, 예수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언어와 행실에 중점을 둔 권고라는 뜻입니다. 컨텍스트라는게 이런 것이겠지요. 어제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회담이었습니다. 계엄과 파면의 극한 상황을 6개월간 겪고 새로 출발한 정부가 국제무대를 처음 밟는 자리인만큼 회담 당사자인 대통령이나 그를 지켜보는 한국민이나 세계인의 관심과 기대가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다른 때보다 긴장감이 더욱 높았던 이유는 외국 정상들을 대하는 미국 대통령의 태도가 예측하기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외교 관행이나 회의 진행의 틀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공을 다루듯 조심조심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백악관에 들어가는 한국 정부팀을 감쌌을 것입니다. 회담을 마친 뒤에 나온 여러 언론 기사나 오찬 전에 오벌 오피스에서 가진 미팅의 생중계나 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매끄럽게 진행되었다고 전합니다. 실질적인 면에서 양국의 손익계산이 어떤지 알아 보기엔 너무 이릅니다. 정상들은 큰 얼개를 정할 뿐 세부적인 내용은 실무자들이 함께 정해갈 것입니다. 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는 미래의 방향과 목표를 공동으로 정하는 최고 회의이기 때문입니다. 보면서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으로 하는 말과 행동은 개인으로 하는 말과 행동과 다를까. 회담에서 하는 말과 행동에 자연인 개인과 공무원 공인의 퍼센티지는 어떻게 될까… 특히 방명록에 한국 대통령이 남긴 글을 보면서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글체가 참 아름다왔습니다. 내용도 좋았습니다. 미국 오기 전에 글쓰기 연습도 했나보다 싶은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방명록 사진을 보는데 자연인과 공인은 하나이되 컨텍스트에 따라 나뉜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방명록에 뭐라고 쓸 지는 미리 준비하겠지만 자기 글씨체는 준비할 수 없습니다. 방명록에 쓰는 글은 공인으로서 정상이 하는 생각이지만 글씨는 자연인이 정성들여 베스트로 쓴 글체입니다. 평소의 그 사람이 공인 그 사람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때가 이런 순간입니다. 바울의 편지는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신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교회를 지키고 교인들을 보호하고 이끄는 데 필요한 지혜를 알려 줍니다. 바울 편지의 컨텍스트는 교회입니다. 바울의 권고가 세상에서는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라는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읽으면 바울의 교회관, 신앙 공동체의 모델을 공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사랑이 이끌어가며, 교인은 서로를 인내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인내의 끝에서 내쳐야 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 교회 안의 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도 단호하지만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연민을 가지고- 대하라는 말로 받아 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자연인의 모습을 가지고 삽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행동이 절제되고 기품 있으려면 평소에도 절제와 기품을 연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한계는 무한이며 유한입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유한한 우리가 표현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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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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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한국에서 맞는 두 번째 밤. 극히 피곤했던 첫날보다는 시차를 몸으로 느끼며 새벽같이 잠이 깨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여정에서 실족할 위험에 대한 경고. 사도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과 선한 양심을 늘 붙들 것을 권면하네요. 교회에 위협이
    되었던 두 난파자,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를 내친 아아기도 나옵니다.

    사랑의 한계라는 오늘 묵상 제목을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적이고 거래적이지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주님의 사랑은 완전하지요.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나를 위해 생명을 나눠주신 사랑. 십자가 사랑. 조건이 없는 사랑.

    그러니 사랑의 한계라는 말을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참을만큼 참았고…”. 이런 메시지가 아닐 거에요. 가짜교사 그리고 거짓 자녀들을 분간하고 권면하며 심지어 배제할 수도 있아야 하겠지요. 자녀를 징계하는 아버지 같이. 어떻게 하면 그러면서도 주님을 본받아 모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늘 난해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성령이 마음 안에 계서서 참 사랑을, 또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주시기를. 오래참는 사랑,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아내고 모든 것을 견뎌내며 결국 이기는 그런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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