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3장 6-15절: 어머니 품과 같은 교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사도는 “무절제하게 살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모든 신도를 멀리하십시오”(6절)라고 엄중하게 명령한다. “무절제하게 사는 사람들”은 헬라어 ‘아탁토이’의 번역으로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아탁토스’는 군대 용어로서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전통”은 2장 15절에서도 사용되었다. 바울 사도가 열두 사도에게서 전해 받은 복음의 핵심 내용을 가리킨다. “멀리하십시오”는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다. 14절에 의하면, 완전히 결별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라는 뜻이다. 

사도는, 그들이 자신의 모범을 이미 보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들은 무절제한 생활을 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했다(7-8절). 사도로서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숙식 제공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권리를 포기하고 손수 일하는 모범을 보였다(9절).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10절)는 말은 당시의 격언이었다. 세상에서도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더욱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 그런데 무절제하여 “일은 하지 않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11절)이 있었다. 사도는 그 사람에게,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서 먹으십시오”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령하고 권면한다(12절). 

사도는 또한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13절)라는 권면을 덧붙인다. 이 권면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도 나온다. “선한 일”은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교회로 모여 다른 이들을 위해 섬기며 희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낙심하게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거부와 박해 때문이기도 하고, 열매가 더디게 맺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도 자신이 자주 이런 경험을 했다. 아울러, 사도는 이 편지에 담긴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14절) 잠시 교제를 끊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원수처럼 여기지는 말라고 덧붙인다(15절). 목적은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묵상: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이상을 품고 살았지만,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도 절절하게 경험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집요한 시달림을 받았고, 그리스-로마인들에게도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것은 교인들에게서 받은 오해와 거부와 모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즉시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의 구습에서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사도는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늘 해 주던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해산의 수고”(갈 4:19)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때로 사도는 사랑을 유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심술궂고 악한 사람”과 얽히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고, 복음의 전통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마음의 완악함이 너무 심하여 극약 처방 외에는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진”(롬 1:21)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롬 1:28). 그것 외에는 그들을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그와 같은 극약 처방을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둘째, 교회 안에서 복음의 전통을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행하는 사람을 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신 것처럼 인내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지만,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악한 영의 집요함과 현실 악의 강고함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 있을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높은 이상과 목표를 지향해 가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롭게” 분별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극약 처방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언제나, 할 수 있는대로, 끝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다음에야 극약 처방을 쓸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중하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행해야 합니다(마 18:15-17).

기도:

주님, 저희에게 주신 몸 된 교회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교우들 모두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게 하셔서, 교회가 누구에게나 따뜻한 품이 되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변화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8 responses to “데살로니가후서 3장 6-15절: 어머니 품과 같은 교회”

  1. gachi049 Avatar
    gachi049

    험한 세상에서 상처 받고 울면서 집에 들어오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고 사랑의 언어로 위로하고 품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믿음안에서 형제 자매들을 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믿음의 공동체와 동행하시어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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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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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ull9707 Avatar
    bull9707

    나이 핑계로 허락하신 공동체 가정과 교회의 뒷전에서 서성 거리며 지내온 존재입니다. 지금 부터라도 헌신하시는 사역자들 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도움이 가 되기를 원합니다.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올리는 예수님 중심의 가정과 교회가 되어 사회와 나라에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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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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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비구름이 잔뜩 낀 날씨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비상사태와 소개령도 발동되었다고 하네요.

    오늘은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무절제한 사람들. 헬라어 원어인 아탁토이의 의미는 군대에서 명령을 따르지 않는 행태를 말한다고 하네요. disorderly라는 KJV의 번역이 그나마 잘 맞는 것 같아요.

    데살로니카 교회의 disorderly한 교인들은 일을 하지 않고 여기저기 나서면서 양식을 얻어먹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지도자 또는 중재자인양 자처했던 인물들 아니었을지요.

    사도는 조용히 일해서 자기 먹을 것을 벌어 먹도록 명하고 또 권합니다. 끝까지 말을 안들으면 상대하지 말되 내치지는 말라고 가르치고요.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번 허리케인도 큰 피해없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희뿌연 아침. 바로 오늘 인생의 거친 풍랑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기억해요. 주께서 함께 하시며 믿음의 능력으로 물 위를 걷도록 하시길.

    공동체의 유익이 되는 사람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기를. 나의 공과 귄리를 주장하며, 인정을 요구하고 질서와 조화를 흐트리는 사람으로 늙어가지 않기를. 항상 자기를 돌아보며 내려놓을 때를 아는 그런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고 소망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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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편지를 마치면서 교회에 당부합니다. 한마음으로 행하지 않는 신자들을 어떻게 대할 지를 알려줍니다. 앞부분은 일하기를 싫어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이들을 책망하는 톤이지만 끝에 가면 그들을 ‘원수처럼 대하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로서 충고’하라고 권합니다. 따뜻하고 넓은 어머니의 품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 잘못을 알고 고치도록 기다려 주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묵상을 하는데 음악의 여러 악상 기호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곡이 어떤 속도인지를 알리는 표시가 있습니다. 작곡자가 처음 의도한 곡의 빠르기가 있습니다. 템포라고 하고 곡의 실제 속도를 뜻합니다. 이탈리아어로 정리 되어 있습니다. 흔히 듣는 템포가 라르고 (매우 느리게), 안단테 (걷는 속도로), 알레그로 (빠르게), 프레스토 (아주 빠르게) 입니다. 템포가 재미있는게 부르는 (연주하는) 속도에 따라 곡의 느낌이 아주 많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이 노래를 불러보라면 대개 자기 속도 (본인의 걸음 속도에 가까운 안단테 템포)거나, 노래의 분위기를 이미 알기에 이보다 약간 빠르게 부를 것입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반짝 반짝 작은 별’ 노래를 아주 천천히 부르라고 하면 아리랑 못지 않게 구성진 노래가 됩니다. 교회 안에 잘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겠는지 (What Would Jesus Do?), 바울은 편지에서 뭐라고 하는지 – 생각하니 연주곡의 템포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작곡자의 악상 (곡의 주제, 곡풍 같은) 은 교회의 경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가 주제입니다. 그 주제를 표현하는 템포는 속도 면에서 느리게 쪽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의 역동성, 외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마냥 천천히, 느리게 목가적인 분위기로만 연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곡이나 악장이 바뀌면서 템포도 달라집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대할 때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몰아치듯 ‘연주’한다면 그는 교회를 영원히 떠날 지 모릅니다. 교회만 떠날 뿐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랑과 인내를 드러내는 곡을 연주한다면 일단 마음이 따뜻해지고 좋은 기억이 떠오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듣는 사람에게 사랑과 인내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의 허물을 일깨워 스스로 인정하고 고치도록 하는 부분에 오면 이제는 연주에 속도가 좀 붙어야 할 것입니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와 거리를 잘 조절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 껄끄러운 이들이 있습니다. 나와 성격이 맞지 않아서 만이 아니라 이사람 저사람과 부딪치고 일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라리 그만 나왔으면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와 ‘엮이지’ 않는 방법을 찾지만 교회라는게 피하기만 해서 되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 바울의 권면은 그런 사람과 거리를 두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거리 뿐 아니라 교회가 그를 잠시 멀리하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치채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태도를 고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좀 더 지나서, 혹은 어떤 계기가 되어 교회에서 나가게 됩니다. 바울의 편지는 그런 사람이 들으라고 쓴 것이지만 그를 참아내야 하는 교인들에게 더 큰 비중을 두었다고 봅니다.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안단테보다 느리게, 즉 자기의 평소 생각이나 감정보다 한 템포 느리게 차분한 태도로 대할 것을 권하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가 하나로 일관성 있게 대하면 그것 자체가 메시지가 됩니다. 일단 메시지가 전달되면 마냥 순하고 느리고 부드럽게만 진행되지 않습니다. 본인의 결단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는 교회에 성령의 연주가 없을 리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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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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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issful2a0acacad4 Avatar
    blissful2a0acacad4

    주님의 사랑과 인내를 엄마의 품이 닮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서도 모를 주님의 사랑과 인내가 내게 있을까?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 갈수록 더 어려운 문을 늘 대한다. 열수도 닫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문 앞에서 생각한다. 그저 안을 수 있는 품에 없어 넉넉한 마음이 부족한 내 문에 부딪치며 해결되지 않는 인생이 그렇듯 쉽지 않은 문들을 두드린다. 주의 사랑과 인내를 겨우 묻힌 채 문들 사이에서 때론 비껴가고 또 두드리고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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