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1장: 주님의 공의로우심의 증거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번째 편지를 쓴다. 박해가 더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도들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사도는 자신의 첫번째 편지의 내용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오해를 바로잡으려 한다. 첫번째 편지와 몇년의 간격이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바울은 첫번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시 편지 형식에 따라 먼저 발신자와 수신자를 명시한 다음(1절) 축복의 인사를 전한다(2절). 첫번째 편지에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 이후로 이것은 사도의 시그니처 인사말이 되었다. 

늘 그렇듯이 사도는 감사의 말로 시작한다(3-10절). 우선 그는, 박해 와중에도 그들의 믿음과 신도들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린다(3절).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박해 중에 보여 준 놀라운 인내와 믿음을 가는 곳마다 자랑하고 있다고 말한다(4절). 사도에 의하면, 그들의 믿음과 인내와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5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붙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6절). 그분은 박해와 환난을 통해 믿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만드시는 한편,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에 부치신다. 믿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심판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6-8절). 심판 받는다는 말은 ”주님 앞과 주님의 권능의 영광에서 떨어져 나가서, 영원히 멸망하는 형벌을 받는다“(9절)는 뜻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은 하나님 없는 상태에 영구히 처하게 된다. 반면, 믿는 이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10절).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증언했고, 그들은 그 증언을 믿었다. 

11절과 12절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사도의 기도 제목이다. 그는 그들 모두가 “그[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며 또 그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11절) 주시기를 항상 간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이 높여지고, 그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12절). 

묵상: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박해와 환난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사랑에 있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칭찬을 합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5절)라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 그들의 믿음이 더 깊어지고 사랑이 강해지는 현상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증명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대다수의 신앙인들이 고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는 만사형통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거나 큰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은 것처럼 혹은 하나님에게 징계 당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환경을 대하는 태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증명된다고 말합니다. 깨어진 세상에서 상처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사에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믿음으로 견디며,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인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실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그분의 공의로우심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간증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고난의 골짜기에 처했을 때 그런 일을 겪었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사람을 보고 감명 받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열에 하나는 고난을 대하는 태도에서 “뭔가 있구나!” 싶었다고 말합니다. 실로, 바울 사도는 고난의 신비를 경험하고 그 비밀을 깨달아 안 사람이었습니다.

기도:

주님,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저희는 고난을 원치 않습니다. 평안하고 평탄한 일상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 수 없음을 압니다. 하오니 저희의 믿음을 강하게 하셔서, 고난을 만날 때, 주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증거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데살로니가후서 1장: 주님의 공의로우심의 증거”

  1. billkim9707 Avatar

    교회와 성도들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풍조가 점점 심해져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주 누명을쓰고 비난을 받더라도 오직 거룩하시고 공의의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고 주님안에서 감사하며 평강을 누리며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늘로 부터 내리시는 영광을 받고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령충만의 경지 전능의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늘나라의 문이 십자가를 통해 열려있는것을 온 세상에 알리는 사역에 동참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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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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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무더위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날씨가 변하는 것 같아요.

    오늘은 데살로리카 후서를 시작합니다. 서신을 쓰는 사도의 마음이 전보다 훨씬 급박하게 느껴집니다. 교회의 연차가 늘어나며 박해와 시험의 강도도 더 커졌기 때문이겠지요?

    공중 재림과 심판 이야기가 편지의 첫머리부터 나오면서 믿음을 끝까지 지킨 이들이 어떻게 영광의 구원을 받게 되는지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심판 받는지를 강조하고 있어요.

    정말 그럴까 의심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조금만 더 견디자, 보응의 날이 임박했어.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독자들로 있었겠지요? 한해 또 한해 시간이 흐르고 재림의 날이 미뤄지며 교회를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2천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이 편지를 읽고 있네요. 반대자들의 공격이 데살로니카 교회의 위기였다면 성공, 자기 도취, 그리고 세상과의 밀착이 오늘날 교회의 위기가 아닐지요?

    보응의 날이 올 것을 믿고 떨림으로 깨어있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의 말씀 대로 고난의 풀무 안에서 오히려 더 순전하게 벼려지는 힘과 능력을 주시기를.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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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5절과 6절 즉 고난을 겪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하신다는 구절과 괴로움과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그대로 갚으신다는 구절을 좀 더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고난의 문제는 깔끔하게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고난에 대해 묵상하고 의미를 곱씹어보고 또 마음을 담대히 하여 다가올 고난 (언제 어떤 고난이 올 지 모르지만)에 준비를 한다고 해도 고난이라는 파도를 만나면 숨이 막혀 허우적거리고 어서 벗어나고 싶고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싶어집니다. 고난에 대해 묵상하며 깨달았던 것들은 생각나지 않고 그저 왜, 왜 또, 왜 내게,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실존이 본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실제인데 고난의 이해는 본질의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박해와 고난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받는 박해입니다. 박해에서 풀려나는 길은 예수 믿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박해를 받다 죽어도 할 수 없다며 인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붙잡고 견디는겁니다. 그런 고통을 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라는 믿음도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믿음과는 결이 달라 보입니다. 어제 한국은 8.15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형 집행이 면제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특정인들을 보았습니다. 사면을 받은 특정 인물들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각자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너무 과하고 심하게, 또 가족 전체에 까지 무리한 정치 폭력을 행사했다는 데는 많이들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나였다면,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면 무슨 생각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옥에서 지내는 ‘고난’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썼을 것 같고, 어떻게 해야 ‘복수’할 수 있을까 연구했을 것입니다. 고난의 싸이클은 회복으로 끝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고난을 받았으나 고난으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는 내러티브를 원합니다. 광복절 사면과 복권의 취지도 이 내러티브를 따르는 것이겠지요. 바울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점은 고통 앞에서 의연할 것과 신자들이 서로 살갑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믿지 않는 이들, 신자를 박해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될 지 (재림의 때가 오든, 박해로 죽게 되든) 모르는 신자들이 이런 태도로 산다면 삶과 신앙, 죽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더 클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믿으면 살면서 닥치는 문제나 환경, 조건들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상 주시고 또 벌도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보는대로 믿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믿음의 사람은 믿는대로 보는 것도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시선과 시야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도록 돕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고난의 파도를 넘기가 어렵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렇게 믿으며 미지의 시간을 삽니다. 숨어 있는 고난을 미리 보게 하는 고도의 시력 덕분이 아니라 고난을 같이 겪는 성령의 우정 덕분에 삽니다. 감사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의 친구 예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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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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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 선한 능력으로 우리를 감싸주셔서 놀라운 평화를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을 묵상하고 십자가 만을 바라보며 살아 감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증거가 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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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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