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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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은 계속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간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는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1절).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날이 “밤에 도둑처럼”(2절) 임하리라는 것을 사도가 이미 그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날은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임할 것이다(3절). 그 날이 오면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의 오심이 갑작스럽지 않다. 언제든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4절). 믿는 이들은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5절)이므로, 주님의 오심이 도둑같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둠에 속한 사람” 즉 죄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될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사도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6절)라고 권고한다. “잠자는 자들”(7절)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영적 어둠 가운데서 살아간다. 반면, 믿는 사람들은 “낮에 속한 사람”(8절)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가운데 살아가면서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써야 한다(8절). 사도는 에베소서 6장 10-20절에서 군장의 비유를 더 상세하게 발전시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노하심”이 아니라 “구원을 얻도록”(9절) 정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그 구원이 재림의 때에 완성되게 하려면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목적이다(10절). 그래서 사도는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11절)라고 권한다. 공동체로 묶이지 않고는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묵상: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인가?”라는 질문은 기독교 안에서 오래도록 논의되어 온 중요한 질문입니다. 앞의 것을 “칼빈주의”라고 부르고, 뒤의 것을 “알미니안주의”라고 부릅니다. 

칼빈주의적 전통에서는,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이며 선택이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사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인간이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우주의 티끌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으로 높여주시고 상대해 주십니다. 능력의 차이로 따지면 인간의 결정이 하나님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신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졌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9절)라고 써 놓았습니다. “얻도록“으로 번역된 헬라어 ‘페리포이에시스’는 ”적극적인 추구와 획득“이라는 의미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 구절을, “God has not placed us on the road to fury, but to gaining salvation, through our Lord Jesus the Messiah”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획득하도록 정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그 길을 걸어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각자가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다 하셨지만, 우리 각자에게도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와 그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믿지 않을 때 우리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잠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에서 사도는 죽은 사람을 “잠 자는 사람”(4:13)이라고 불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산 사람입니다. 

이렇듯, 이 땅에 사는 동안 빛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의롭게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발견되는 것이 구원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기도:

저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하시고, 그 구원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빛에 속한 사람답게, 낮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의롭게 살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을 보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

  1.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구원의 반열에서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우상숭배와 음행, 쾌락의 세상속에 물들지 않고 신실한 백성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셔서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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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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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않이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읊조리며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님의 재림은 불신자에게는 심판이지만 믿는자에게는 축복인것을 항상 기억하고 등잔에 기름을 충분히 마련하여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현명한 다섯 처녀들과 같은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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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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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가을의 느낌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본문도 종말에 관한 내용.

    도둑처럼 올 심판의 때, 그러니 깨어있어야 하지요. 믿는 이들은 구원의 길에 서있지요. 그러나 실족하지 않도록 사랑과 믿음, 그리고 소망을 전신갑주처럼 입어야 해요.

    오늘 묵상 말씀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네요.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는 부분은 그냥 넘어갑니다.

    CS 루이스의 설명처럼 전자자인 하나님은 제 미래도 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렇지만 그 미래는 매 순간의 선택에 의해 끊임 없이 바뀌는 것 아닐까요? 누구도 구원이라는 미래를 보험증권처럼 손에 쥘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깨어있어야 해요. 예수의 보혈로 늘 씻기어 있어야 해요.

    또 한 주를 시작합니다. 생명을 주신 주. 삶을 허락하신 것 감사해요. 일을 주시고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이웃을 주셨지요.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며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행하는 한 주 되기를. 기쁨이 고통을 이기고 소망이 낙심을 이기는, 그래서 끝내는 승리하는 인생 되기를. 그런 축복이 아이들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도해요.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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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길을 가는 것 뿐일까요. 우리가 계획하고 소망한 것을 이룰 때는 그것이 이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일까요. 인생이 꼬이고 엉망이 되어 본인도 주변 사람도 힘이 들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요.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정신이 돌아올 때’를 위해 계속 하는게 맞을까요. 말하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은 아닐까요. 어제는 대학 1학년 때 만나 언니 동생으로 지내는 분과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동부에 살지만 딸이 엘에이에 있어서 보러 올 때 저와도 같이 만납니다. 형부가 돌아가신 뒤 많은 변화가 있는데 자신의 결정으로 만드는 변화 (이사, 여행, 취미 등)도 있고, 일이 생겨서 변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그렇지요. 적극적으로 결정하는 포션이 있고, 모르는 중에 그냥 되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언니 본인은 자신의 70여년의 삶이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특히 월가에서 한 직장생활은 크고 작은 전쟁과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말합니다. 퇴직을 하고 한인병원에서 디렉터로 몇 년 일을 하는 중에 형부는 난치암을 만나 싸우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부 떠나고 4년이 넘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개인 경제 personal finance’ 기본 클래스를 가르칠 계획이랍니다. 학교측에서 부탁을 한 과목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기본 경제학 클래스입니다. 남편과 내가 아는 사람들을 통틀어서 언니만큼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성공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든 누가 봐도 부러운 삶의 조건으로 가득합니다. 언니를 처음 만난건 야간 미국 대학에 들어간지 몇 달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언니는 이미 대학 공부를 마쳤지만 미국 회계학 공부를 하려고 직장 마치고 밤에 클래스 들으러 다녔고 나는 미국 (혹은 영국) 유학을 바라면서 한국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야간 대학에 들어간 경우였습니다. 듣는 클래스는 달랐지만 언니와 금새 친해졌고, 언니는 나도 자기처럼 외국 회사에 취직하기를 바라며 여러모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때도 언니는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물론 있었겠지만 내색을 안하거나 혼자 끙끙 앓은 것도 아닌데 순조롭게풀려서 원래의 목표나 계획보다 더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현지 직원 중에서 본사 (월가)로 데려갈 사람을 뽑을 때도 선발되어 부랴부랴 결혼식을 마치고 형부와 같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형부는 미국에서 보험 공부를 했습니다. 형부도 공부 마친 뒤에 원하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일궜습니다. 언니는 원래 종교가 없었고, 형부는 천주교인이었지만 종교적인 열심은 없었습니다. 상식과 이성, 의지와 인적 네트워크가 전쟁 도구였습니다. 언니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남편에게 ‘엄마는 나도 언니처럼 되기를 바랬는데… 언니는 누구나 다 바라는 삶, 어느 면에서나 (가정, 커리어, 자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데, ‘복 받은 삶’의 모델 같은 인생인데…’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을겁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삶이라면 누구는 (언니처럼) 멋있게 살고, 누구는 (나처럼) 안 멋있게 살고…내가 망친걸까, 살면서 내린 결정들이 여기로 날 데려왔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거잖아.’ 감사하지 않은 것 아닙니다. 내 삶에 주님의 은혜가 임한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으론 ‘비교’를 합니다. 세상에선 성공이라 부르고 본인은 꿈과 목표를 이룬 인생의 주인공을 만나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기가 싫었습니다. 예외적인 사람과 일찍 만나게 하시어 나도 그처럼 성공하기를 바라신게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엄마가 원했듯이) 더더욱 우울한거지요. 도적 같이 임하는 후회고 낭패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얻도록 부르셨다는데, 내가 나를 벌합니다. 이 어둠 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선한 뜻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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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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