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2장 1-12절: 하나님께 합당한 삶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사도는 데살로니가를 찾아갔던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사한다(1절). 사도와 일행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했는데, 데살로니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심한 반대”(2절)를 받았지만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우리의 권면”(3절)은 그들이 전한 복음을 가리킨다.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당시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종교 사기꾼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께 검정을 받아서”(4절)라는 말은 자신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은지를 늘 점검하고 있다는 뜻이다. “맡은 그대로”(4절)라는 말은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그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아첨하는 말”을 한 적도 없고 “탐욕을 부린 일”도 없다는 사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 알고 있다(5절). 그들은 누구에게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한 일”(6절)이 없다. 

그들은 사도로서 그들에게 권위를 발휘할 수도 있었지만,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유순하게 처신”(7절)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해 줄 뿐 아니라  생명을 내어 줄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끔찍하게 사랑했다(8절). 그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동안 스스로 일하여 돈을 벌면서 복음을 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9절). 그뿐 아니라, 그들은 신도들에게 흠 잡힐 데 없도록 경건하고 바르게 처신했다(10절). 여러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자녀들 하나하나를 전부인 것처럼 돌보듯이,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 하나하나를 전부인 것처럼 대했다(11절). 때로 그들은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12절)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걸맞게 살게 하려는 것이다. 

묵상:

디모데가 돌아와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전까지 사도는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 활동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닌지 염려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박해로 인해 경황 없이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리떼를 피해 양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목자가 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전도자로서는, 자신을 통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는 사태가 가장 마음 아픕니다. 그래서 사도는 베뢰아에서도, 아테네에서도 그들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디모데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고, 자신이 데살로니가에 갔던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앞에서 사도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셔서 은혜를 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자신들의 순전하고 헌신적인 노력에 하나님께서 열매로 갚아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심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정직하고 순전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의 귀에 만족을 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어머니가 자녀에게 하듯 유순하게 그들을 돌보았고, 목숨까지 내어줄 것처럼 헌신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숙식을 해결했고, 한 사람 한사람을 개인적으로 대했습니다. 때로 강하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게 하려는 충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자랑처럼 들리지만, 실은 고백입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의 최선을 받으셔서 좋은 열매를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전도자로서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의 열매를 보는 것처럼 감사한 일은 없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말과 행동이 주님께서 인정할 만한 것인지요? 저희의 관심이 사람의 환심을 사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있는지요? 저희가 사람을 대할 때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이 처신”(10절)하는지요? 오, 주님, 저희를 붙드시어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12절)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2절: 하나님께 합당한 삶”

  1. billkim9707 Avatar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허락하신 사귐의 믿음의 공동체가 몇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손을 분명히 보았고 확신하며 경험했습니다. 말씀이 살이있고 역사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저희들의 몸과 영혼에 말씀이 육체가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깊히 각인해서 저희들의 삶이 예수님의 향기로 이웃에 퍼져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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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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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청명하고 선선한 초가을 같은 날씨입니다. 토요일이에요.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카 전도 여행 중의 행적에 대한 바울의 자기 평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그곳에서 얻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모두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범을 보임.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지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모두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서술이라 자칫 자화자찬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오늘 아침의 기도문처럼 우리의 마음과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자기 질문으로 치환해 보니 은혜가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이 간구하며 기도했던 한 주였어요. 계속되는 광야의 시간. 그것이 인생이겠지요?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끌어주시고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

    하나님께 합당한 삶(live lives worthy of God).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그는 이제 새로운 신분과 정체성으로 살아야 해요.

    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더 이상 노예처럼 살면 안되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니 이제는 아버지의 일을 돌봐야 하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어요. 그러니 그분의 부탁대로 어린 양들을 돌봐야 해요.

    내일은 오랜만에 교회에 다시 나가네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를. 쉼을 허락하신 오늘에 감사. 저녁엔 좋아하는 햄버거를 만들겠지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임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매일 매일 그분의 뜻 안에 거하며 제 삶이 하나님께 합당한 인생, 거룩한 산 제사가 되었으면.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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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신약 성서는 크게 두 기둥입니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입니다.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정한 27권의 책들 가운데 맨처음 쓰여진 것으로 분류되는 책은 데살로니가전서와 갈라디아서입니다. AD 50년 경에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1년 반을 묵을 때 썼다고 추정합니다. 갈라디아서보다 먼저 쓴 편지라는 견해가 맞다면 신약 성서의 첫 책을 읽고 있는겁니다. 바울의 신학은 그가 보낸 편지들을 통해 정리되고 분석된 체계입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탄생할 수 없었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은 편지들 속에 담긴 사상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데살로니가는 그리스의 아테네 다음 가는 도시로 로마가 중요하게 꼽는 식민도시였습니다. 그리스인과 유대인 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 배경의 사람들이 사는 국제적인 도시니 지금 우리가 있는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렇게 ‘오픈’된 사회에서 로마가 금지하는 예수를 믿었으니 얼마나 위험하게 살았을까요. 따라서 바울은 신학적인 가르침보다 격려와 위로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 믿는 교인들을 조심조심 대하는 바울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을 ‘다시’ 보게 만든 구절들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어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심정 (7절)이라는 구절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듯 여러분을 돌보았다 (11절)는 구절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나란히 쓰고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데 엄마와 아버지가 다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고, 아버지 (남성)의 책임 뿐 아니라 엄마의 세심함 정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 읽으면서 좀 놀랬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에 여성들의 후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여성 신도들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지만 그의 신학은 친여성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편입니다. 2000년 전의 사회와 사상을 지금의 자리에서 평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unfair 한 일이지요. 바울이 어머니의 마음과 아버지의 태도로 바라보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믿음의 발자욱을 막 뗀 어린 아기들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유대인들은 율법과 전통을 동원해 야단치고, 로마 정부는 억압과 감시, 형벌로 협박하고 위해했을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가 이루는 새 세상에 대한 기대가 없었으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 만이 소망입니다. 바울의 편지는 한결같이 어려운 시대에 어렵게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글입니다. 우리는 지금 긴장감 없이 쉬 읽어내리지만, 바울은 목숨을 걸고 썼고 교회 또한 목숨을 걸고 읽은 편지입니다. 나를 포함해 자식은 자기가 스스로 큰 줄로 착각합니다. 엄마와 아버지의 염려를 먹고 자랐다는걸 깨닫는 건 자기 자식을 기르면서 입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혹시 자기가 잘 나서 컸다고 생각하는 자녀일까요. 아니면, 자녀를 키우는 일은 뒤로 미루고 자기 치장만 하기 바쁜 철 없는 부모일까요. 주님, 나를 돌아보며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인 것을 보고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굶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무시 당하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까지는 못 가도 친구의 심정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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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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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 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 하며 주께갑니다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성령충만 능력 받아 주의 일 하고 사랑으로 이웃에게 복음 전하네

    주가 주신 면류관 받아 쓰고서 할렐루야 영원 토록 왕 노릇하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주님. 찬송가 처럼 살아 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심을 통하여 그렇게 살게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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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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