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성막과 그에 딸린 모든 가구들과 기구들 제작이 완료되자, 모세는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명령하여 소요된 경비를 계산하게 한다(21절). 성막 제작을 주도한 사람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이다(22-23절). 성막 제작에 소요된 금은 성소 세겔로 이십구 달란트 칠백삼십 세겔(24절)이었는데, 이것은 약 육백 킬로그램에 해당한다. 1킬로짜리 금괴 육백 개가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은의 용도는 더 많아서 약 이천 킬로그램 정도가 사용되었고(25-28절), 놋쇠는 약 천오백 킬로그램 정도가 사용되었다(29-31절).
이와 동일한 성막과 성구를 오늘 제작한다면 6천만 달러 정도 들 것이라는 계산이 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성막은 보물 창고와 마찬가지였다.
묵상: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성막은 가장 귀한 재료를 사용하여 정교하고 아름답게 제작되어야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세운 신전에 비하면 성막은 오두막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원하여 헌납한 온갖 귀한 재료들로, 자원하여 헌신한 여러 기술자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집트의 신전들은 인간의 허영심의 표현이었지만,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허영”은 혼동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헝영심을 채우려는 일들을 자주 봅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언제 그런 것을 지어 달라고 했느냐?”고 물으실 지 모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게 우기고 또 그렇게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허영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둘 사이를 분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자기를 비워 스스로 낮아지셔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으셨습니다(요 5:41). 사람들이 영광을 찾는 곳에 예수님은 눈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 힘 없는 사람들, 낮은 자리와 가장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십시오”(요 17: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이 할 수 있는 최고, 최상의 일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높아지고, 가장 어두운 곳에 처할 때 영광의 빛은 더 밝아집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마음도 허영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의 영으로 저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어, 저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 걷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삶을 통해 저희는 낮아지고 주님이 높아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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