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성막과 성막 내부에 둘 성구들을 제작한 다음 브살렐은 성막 바깥 마당에 둘 번제단과 물두멍을 제작한다. 브살렐은 먼저 모세가 전해 준 지시대로 번제단을 제작한다(1-7절). 그곳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게 되어 있었고, 또한 필요할 때마다 제물을 드렸다. 이어서 그는 물두멍을 제작한다(8절).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갈 때 손과 발을 씻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막 울타리를 제작한다(9-20절). 성막은 동서 방향으로 세우게 되어 있었고, 입구는 해돋는 방향 즉 동쪽에 두게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에게 지시 받은 그대로 지어졌다.
묵상: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 5:1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방식으로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을 완성하셨습니다. 첫째,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라는 뜻입니다. 둘째,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은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의지할 불완전한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완전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막(성전)은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잠정적으로 사용할 불완전한 도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하고도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을 때,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성막(성전)은 그 효용성을 상실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짐승을 잡아 바치는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으니, 번제단도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힘 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입고, 그 은혜로써 매일의 삶을 “산 제물”(롬 12:1)로 드려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번제단에서 드리는 제물의 양이 아니라 삶의 제단에서 드리는 사랑과 정의와 진실의 양을 더 관심하신다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가령,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의 숫염소의 피도 싫다 …… 너희는 찢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러.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사 1:11, 16-1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번제단과 성전을 제거함으로써 삶의 제단만 남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
오늘 하루도 저희의 말과 행실이 주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지기를 기도합니다. 생각에는 진실을, 말에는 정직을, 행동에는 사랑을 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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