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6장 8-38절: 성막의 규모

1–2 minutes

해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지휘를 따라 기술자들은 열 폭 천으로 성막을 만들었다(8-13절). 그런 다음, 염소 털로 성막 위에 덮을 천막을 만들었다(14-18절). 하나님의 지시대로, 그 위에 덮어 씌울 덮개 두 개를, 하나는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다른 하나는 돌고래 가죽으로 만들었다(19절). 

이어서 그들은 성막을 세울 널빤지를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은으로 밑받침을 만들어 동서남북으로 세웠다(20-30절). 널빤지들을 이을 가로다지를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널빤지와 가로다지와 고리에 금을 입혔다(31-34절).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은 가늘게 꼰 여러가지 색깔의 실로 짜서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았다(35절). 그 휘장을 걸어 놓기 위해 아카시아 나무로 기둥을 만들어 금을 입혔다(36절). 마찬가지로, 가늘게 꼰 여러가지 색깔의 실로 막을 짜서 성막 입구를 가렸다. 이 막을 칠 기둥과 고리에도 모두 금을 입혔다(37-38절). 

묵상:

26장에서 성막 제작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으므로, 여기서는 그냥 “하나님이 지시한 그대로 성막을 지었다”고 해도 될 터인데, 저자는 상세하게 성막 제작 과정과 내용을 서술합니다. 현대 독자에게는 불필요해 보일만한 반복입니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그것이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성막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성막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규모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같은 거대한 토목 공사에 동원되어 강제 노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이집트의 여러 신들보다 더 크고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어울리는 거대한 성막을 만들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나도 단출하고 소박한 규모로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십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려는 리마인더(reminder)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상징성이었습니다. 성막의 구조와 그 안에 두게 되어 있던 가구들의 상징성으로 따지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상징과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그것은 오직 볼 눈이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을 바로 보는 법을 가르치는 도구였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하나님 나라를 보았다는 저희는 아직도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비싼지를 따지고 삽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낮고 작고 적은 것에 눈길을 두게 하시고, 그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출애굽기 36장 8-38절: 성막의 규모”

  1. billkim9707 Avatar

    십자가의 사랑으로 눈에보이는 공간으로 부터 자유하게하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올립니다. 제몸이 가정이 교회와 나라가 모든곳이 저희들의 성막인것을 고백합니다.

    모퉁이돌을 예수님으로 foundation을 그리스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벽과 기둥을 참나무로 만든 십자가로서 벽을 선한목자가 지으신 양울타리로 지붕을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된 성막을 원합니다. 어디를 가던지 무엇을 하던지 성막안에서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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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나와 광야로 들어섰을 때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당시 기준으로 열흘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 야곱의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야곱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갈 만한 거리였습니다. 열흘 걸리는 길을 40년 걸려 도착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보낸 세월에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다면 40년은 완전 낭비일 뿐입니다. 광야 40년을 the long way around 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먼 길이라고, it’s a long way but it’s not a wrong way 라고도 합니다. 광야의 세월은 시간적으로는 너무나 긴 디투어 detour 지만 은유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믿음의 여정과 삶의 궤적을 담은 시간이며 인격이 형성되는데 걸리는 시간의 양을 생각하면 40년은 길지 않은 세월입니다. 물론 광야의 백성은 40년의 ‘훈련’을 마친 뒤 다 죽었습니다. 가나안에는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 만이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만 예외입니다. 이집트를 나온 백성은 40년 동안 훈련만 받다가, 고집 세고 목이 뻣뻣한 백성에서 하나님의 선민, 언약 백성으로 새로 빚어지는 연단만 받다가 광야에 뼈를 묻은 셈입니다. 모세도 그 가운데 하나구요. 그런 관점에서 성막공사를 보니 놀라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걸 보여주는 집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때면 표시를 했습니다. 돌을 쌓아 그 자리를 마킹 marking 했습니다. 다음에 또 그 자리에 또 오게 될 지 아닐지 모르면서도 여기서 하나님을 만났다, 느꼈다 하는 표시를 했습니다. 고대인들이 살던 동굴 안에도 하나님 (초자연적 존재) 과의 만남을 알리는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고대인에게도 우리에게도 여전히 두렵고 떨리며 아름답고 멋있으며 눈이 감기고 무릎을 꿇게 되는 일입니다. 장막은 하나님께서 먼저 제안하신 마킹입니다 -너희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걸 알리는 집을 지어라. 백성은 가나안을 잠시 잊습니다. 이집트도 잊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잊고 지금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기리고 예배하는 집을 짓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사는 40년은 낭비가 아닐 겁니다. 광야에서 백성은 시간과 공간을 새로 배웁니다. 하나님의 지시로 삶을 새로 삽니다. 옛 사람은 사라지고 새 사람이 태어납니다. 이 기적이 오늘 내게도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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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낀 아침입니다. 저녁에는 비소식이 있네요. 오늘은 성막 건축이야기. 26장에서 이미 자세히 제시된 제작 시방서(설명서)를 마치 복붙(copy and paste)한 것처럼 뒤풀이하는 좀 이상한 부분이에요.

    동사만 명령 형에서 과거형 (make 에서 made)로 바뀌고 그들(They)라는 주어가 붙습니다. 요즘 같으면 출판사에게 통편집을 당할 부분이겠죠? 성막 건축의 구절 구절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강렬한 집단적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 그러니 누구도 감히 이 부분을 잘라내지 못한 것 같아요. 메시지는 분명한 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했다.

    아무 일정이 없는 토요일이에요. 밀린 일도 하고 노래연습도 좀 하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햄버거를 만들어 먹겠지요? 휴식을 함께 같이 누릴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

    세상은 혼돈스럽고 어두워요. 말씀으로 질서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 설계자의 의도대로 지어가는 삶이 되기를.

    20평 남짓한 작은 성막. 보잘 것 없는 제 인생에도 주의 말씀이 씨앗처럼 뿌려지고 자라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선한 열매를 맺는 그런 동산이 되기를. 같은 축복이 아이들의 인생에도 함께 하시기를.

    기도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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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이백여명의 백성들이 모두가 볼 수 있는 성전을 만들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백성의 처지와 형편을 아시고 작고,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볼품이 없는 성막을 만들게 하셨다고 생각 합니다. 

    주님. 비록 작은 성막이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행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까봐 우리를 지금 이순간에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므로 약하고 낮은자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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