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사십 일 후에 모세는 새 증거판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 오는데, 그의 얼굴에서 빛이 발산되었다(29절). 그 빛은 태양빛과는 다르다. 은혜로 충만할 때 표정에서 발산되는 거룩한 기운을 가리킨다. 그 거룩한 기운이 모세에게서 충만하게 발산되었다. 모세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빛 때문에 아론과 백성은 모세에게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30절).
모세가 아론과 백성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자, 비로소 그들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나가간다(31절). 모세는 그들에게 산 정상에서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해 준(32절) 다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다(33절). “수건”이라는 번역은 세수할 때 사용하는 수건을 상상하게 만들지만, 희미하게 앞을 볼 수 있는 베일을 의미한다. 그 이후로 한 동안 모세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와 백성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만 베일을 벗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것을 쓰고 있었다(34-35절).
묵상: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과 함께 지낸 후에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그의 존재 전체가 인간으로서 가 닿을 수 있는 거룩함과 정결함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의 ‘얼굴’은 ‘얼의 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꼴 좋다”고 할 때의 꼴은 겉모양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얼’ 즉 내면의 상태가 보이는 ‘꼴’로 드러난 것이 얼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깊고도 밀도 있는 교제를 한 결과, 그의 존재는 거룩하고 정결함의 최고치에 이르렀고, 그것이 그의 얼굴을 통해 발산된 것입니다. 모세는 한 동안 그러한 내면 상태를 유지했을 것이고, 그래서 얼굴을 베일로 가려야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우리의 영적 생활에 대한 비유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모세가 자기 얼굴에서 나는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백성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얼굴을 가렸다고 말합니다(고후 3:13).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그 너울을 벗지 못합니다”(14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그 베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그 의미를 환히 드러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고후 3:18)입니다. 우리의 기도, 예배, 말씀 묵상 그리고 사랑의 섬김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들어 올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내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가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 변화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기도:
주님, 모세처럼 베일로 얼굴을 가릴 정도는 아니라도, 저희의 얼굴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화의 빛이 희미하게나마 발산되게 해주십시오. 그 빛이 점점 진해지도록 저희가 주님과 더 깊은 사귐에 이르게 해주십시오. 아멘.
Leave a reply to tenderlya0860fa44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