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살해 의도를 가지고 살인을 한 경우(일급 살인)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12절). 실수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쳤다면(이급 살인, 과실 치사), 도피성에 피할 수 있다(13절). 도피성에 피신한 과실 치사범은 누구도 잡아갈 수 없으나, 일급 살인범의 경우는 성전 제단에 피한다 해도 사형으로 엄벌해야 한다(14절). 부모를 살해한 경우(15절), 유괴한 경우(16절), 부모를 저주한 경우(17절)는 모두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웃과 싸우다가 그 사람을 상해한 경우에는 완치될 때까지 손해 배상과 치료비를 부담해 주어야 한다(18-19절). 주인이 노예를 때려 죽게 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20절). 즉사하지 않았다면, 주인에게 죄를 묻지 않아도 된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21절).
싸우던 중에 임신한 여자를 낙태하게 했다면, 돈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22절). 만일 그 여자가 낙태와 함께 신체적인 상해를 입었다면,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23-25절) 갚아야 한다. 당한 만큼만 되갚아 주라는 뜻이다. 만일 주인이 노예의 눈을 멀게 하거나 이를 부러뜨리면, 그에게 자유를 주어 내보내는 것으로 배상해야 한다(26-27절).
사람을 해친 소는 반드시 죽여야 하고, 그 고기도 먹어서는 안 된다(28절). 소의 임자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신의 소에게 사람을 받는 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하여 누군가를 죽게 했다면, 소와 주인을 모두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29절). 만일 피해자 가족이 합의한다면, 재판관이 정하는 배상금으로 대신할 수 있다(30절). 어린 소년이나 소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 같은 법을 적용해야 한다(31절). 목숨의 가치는 어려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종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소 임자는 종의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주고 그 소는 죽여야 한다(32절). 한 세겔은 성인 노동자의 4일 품삯에 해당했으므로, 은 삼십 세겔은 인간의 목숨에 대한 최소한의 값이다.
만일 가축이 다른 사람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 죽으면, 구덩이의 주인은 돈으로 배상해야 한다. 그럴 경우, 죽은 가축은 구덩이 주인의 것이 된다(33-34절). 어떤 사람의 소가 다른 사람의 소를 받아서 죽게 한 경우, 살아 있는 소를 팔아서 그 값을 반으로 나누어 갖고, 죽은 소의 고기도 반으로 나누어 갖는다(35절). 하지만 그 소에게 받는 버릇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여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사람은 피해자에게 살아 있는 소로 배상하고, 죽은 소는 자신이 가질 수 있다(36절).
묵상: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율법 규정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치의 최상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성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전제한 상태에서 주어진 최소한의 안전 장치입니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다”(21절)와 같은 말은 당시 인간 사회의 통념을 지적한 것입니다.
노예 제도가 폐지되기 전에 노예 소유주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여 노예들을 착취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대로,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생긴 현실이지,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따르면,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에게 등급을 매기고 차별한 것은 타락 이후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면, 모든 차별의식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겁습니다. 사형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사형에 대한 율법 규정을 근거로 듭니다. 심각한 범죄에 대해 사형으로 다스리라는 명령은 도덕 의식이 매우 낮았던 모세 당시의 상황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처음 국가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일벌백계의 엄한 징계가 아니고는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범죄자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뜻은 사랑입니다. 또한 인간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사형 제도를 허용한다 해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율법 규정을 읽으면서 우리는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출되는지를 보며 놀라야 하고, 그 불의하고 부조리한 사회 안에서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배려를 보고 감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이 불의한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주위를 살필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의 마음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주님의 눈으로 그늘진 세상을 보고, 주님의 귀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 해주십시오. “비루함이 높아지고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고 있는”(시 12:8) 이 시대에 정직과 진리로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