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으로 듣기(해설)
음성으로 듣기(묵상 및 기도)
해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복음”(1절)이라고 정의한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구원자로 오시는 메시아)라는 사실이 기쁜 소식 즉 복음이다. 주전 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프리에네 비문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태어난 사건을 “복음”이며 “구원자”로 온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했다. 마가복음이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마가는 아우구스투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며, 그분의 이야기야 말로 참된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로마 권력자들이 볼 때 1장 1절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마가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이야기를 세례 요한이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세례 요한을 소개하면서 말라기 3장 1절과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한다(2-3절). 세례 요한에게서 두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었다. 당시에 세례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베풀었다. 그 세례를 요한은 유대인들에게도 요구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마가는 요한의 세례를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4절)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에게 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은 그들이 죄로 인해 이방인과 같은 상태에 처해 있다는 의미다. 요한이 요단 강을 세례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처럼, 구원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요한의 세례에 대한 소식이 퍼지자, 예루살렘과 유대 여러 지방에서 유대인들이 찾아와 세례를 받는다(5절).
이어서 마가는 세례 요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6절). 이 묘사는 엘리야(왕하 1:8)를 생각나게 한다. 요한은 광야의 수도 공동체에서 자랐고(눅 1:80) 때가 되었을 때 광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광야의 외치는 이의 소리”(3절)로 살다가 죽었다. 요한은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7절)가 오실 것이며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8절)이라고 예고한다. 말라기가 예언한 “심부름꾼”의 역할을 요한이 자임하고 있다. 신발끈을 푸는 것은 당시 노예들이 했던 일이다.
묵상:
학자들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네로 박해 시대에 고난 중에 있던 신도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실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 사건이 “복음의 시작”이며 황제의 통치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 복음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가는, 진정한 복음은 로마 황제의 철권 통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다스림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로마 제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매우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죄로 인해 그들이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잃어 버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물리적으로는 약속의 땅에 살고 있으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허위 의식에 대해 요한은, 그들의 죄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효력을 잃었고 영적으로는 아직도 광야를 유랑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의에 빠지면 가장 먼저 죄의식이 사라집니다. 자신이 죄성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죄를 행하면서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착각합니다. 영적으로 아직도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고 있거나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우리가 선 자리를 점검하고 요단 강을 찾아야 합니다. 세례의 사건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지만, 세례의 정신은 늘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이 시점이야말로 회개의 심정으로 다시 요단 강물에 우리의 존재를 담그고 필요한 때입니다.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새 해, 새 날을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낮은 마음으로 요단 강물 속에 몸을 담급니다.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저의 영을 새롭게 해주십시오. 의롭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늘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에 의지하고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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