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8절: 다시 요단 강으로 

2–3 minutes

음성으로 듣기(해설)

음성으로 듣기(묵상 및 기도)

해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복음”(1절)이라고 정의한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구원자로 오시는 메시아)라는 사실이 기쁜 소식 즉 복음이다. 주전 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프리에네 비문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태어난 사건을 “복음”이며 “구원자”로 온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했다. 마가복음이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마가는 아우구스투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며, 그분의 이야기야 말로 참된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로마 권력자들이 볼 때 1장 1절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마가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이야기를 세례 요한이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세례 요한을 소개하면서 말라기 3장 1절과 이사야서 40장 3절을 인용한다(2-3절). 세례 요한에게서 두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었다. 당시에 세례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베풀었다. 그 세례를 요한은 유대인들에게도 요구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마가는 요한의 세례를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4절)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에게 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은 그들이 죄로 인해 이방인과 같은 상태에 처해 있다는 의미다. 요한이 요단 강을 세례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처럼, 구원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요한의 세례에 대한 소식이 퍼지자, 예루살렘과 유대 여러 지방에서 유대인들이 찾아와 세례를 받는다(5절).

이어서 마가는 세례 요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6절). 이 묘사는 엘리야(왕하 1:8)를 생각나게 한다. 요한은 광야의 수도 공동체에서 자랐고(눅 1:80) 때가 되었을 때 광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광야의 외치는 이의 소리”(3절)로 살다가 죽었다. 요한은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7절)가 오실 것이며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8절)이라고 예고한다. 말라기가 예언한 “심부름꾼”의 역할을 요한이 자임하고 있다. 신발끈을 푸는 것은 당시 노예들이 했던 일이다.   

묵상:

학자들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네로 박해 시대에 고난 중에 있던 신도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실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 사건이 “복음의 시작”이며 황제의 통치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 복음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가는, 진정한 복음은 로마 황제의 철권 통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다스림 아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로마 제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매우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죄로 인해 그들이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잃어 버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물리적으로는 약속의 땅에 살고 있으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허위 의식에 대해 요한은, 그들의 죄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효력을 잃었고 영적으로는 아직도 광야를 유랑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의에 빠지면 가장 먼저 죄의식이 사라집니다. 자신이 죄성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죄를 행하면서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착각합니다. 영적으로 아직도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를 하고 있거나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우리가 선 자리를 점검하고 요단 강을 찾아야 합니다. 세례의 사건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지만, 세례의 정신은 늘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이 시점이야말로 회개의 심정으로 다시 요단 강물에 우리의 존재를 담그고 필요한 때입니다.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새 해, 새 날을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낮은 마음으로 요단 강물 속에 몸을 담급니다.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저의 영을 새롭게 해주십시오. 의롭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늘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에 의지하고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마가복음 1장 1-8절: 다시 요단 강으로 ”

  1. billkim9707 Avatar

    매일아침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귐의소리 시간을 2025년에도 허락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금년에는 좀더 영적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희들의 장막을 새로 옮기고 새로 시작하는 모든사역들에 가슴 설레는 소망을 주시는 주님, 저희들의 교회가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여러가지 이유로 혼란했던 조국이 새해에는 정돈이 되고 주님께로 조율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의 백성이 된것을 믿습니다만 자주 세상의 유혹에 넘이지는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프시고 사귐의 소리를 통해 매일 매일 성령의 세례를받고 새로워지고 갱신이 되는 2025년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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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ull9707 Avatar
    bull9707

    매일 아침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귐의 소리 시간을 2025년 에도 허락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금년에는 좀더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간구합니다.저희들의 성막을 새로 옮기고 모든예배와 사역들을 새롭게하시고 가슴벅찬 새소망을 주신 주님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저희들의 교회가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가지 이유로 혼란했던 조국이 새해에는 정돈이되고 모든일들이 주님께 조율이되는 새해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의 백성이 된것을 믿습니다. 문제는 자주 세상의 교활한 유혹에 넘어집니다.자비를 구합니다. 매일아침 사귐의 소리를 통하여 성령세례를받고 새로워지고 갱신되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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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침은 밤에 잠자러 들어가기 전의 상태로 찾아 옵니다. 시간만 바뀌었을 뿐 어제 밤 모습을 한 방에서 일어나 어제 밤 모습을 한 책상에 앉습니다. 요한을 찾아가던 사람들이 누구였고 왜 그에게 갔을까요.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가,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유대 지방 사람과 예루살렘 사람으로 구분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의 일기예보에 ‘도서산간지역’이라던 옛 표현이 생각납니다. 도서는 섬들이고 산간지역은 산과 골짜기가 많은 지역 즉 접근이 어려운 지방이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런 표현을 쓸 일이 없이 전국이 (그리고 세계가) 쉽게 연결된 세상이지만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은 곧 유대 전체라는 뜻이었겠습니다. 죄를 고백하러 왔다는 말도 인상적입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찾아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살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강렬한 의지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죄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 달라지고 싶다는 바램이 컸다는 뜻입니다. 새 해를 맞는 심정과 같은. 마가복음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주후 70년경에 씌여졌다고 합니다. 네로 왕의 광기에 찬 통치가 정점을 찍고 새 황제가 들어서던 혼란의 시기입니다. 마가복음을 쓴 사람은 바울과 같이 다니고 활동한 마가라고도 하고, 익명의 작가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자가 염두에 둔 청중은 유대인보다 로마에 살던 이방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는 서두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이 모두에게 복음이라는 것과, 온 유다는 물론 로마 -온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출생 이야기 대신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요한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요한과 예수님을 연결하고, ‘온 유대가 찾아온 요한-온 세상을 찾아간 예수’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새 해 첫날, 세례를 받은 심정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례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 아쉽지만 매일 받는 새 날의 감격은 날이 갈수록 진하기만 합니다. 어제 밤과 똑같은 상태의 공간에 있는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원히 똑같으며 영원히 새로운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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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inventive37b04476f1 Avatar
    inventive37b04476f1

    2025년을 맞아 저에 영을 새롭게 하시고 자기의에 빠져 헤매는 과거를 청산하고, 더 겸손히 새로이 하나님을 경험 하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새로운 한해를 허락하심을 감사 드리고, 올해 베풀어 주실 새 은혜를 기대하며 저 혼자만이 아닌 이웃과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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