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장: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1장부터 8장까지에서 전도자는 “내가 보니”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1:14; 2;12; 3:10, 16; 4:1, 4, 7; 5:13, 18; 6:1; 7:15; 8:9, 16).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을 의미한다. 세상사와 인생사를 관찰하면서 모순된 일들과 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9장 1절에서 전도자는,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보아 온 현상들이 무슨 의미인지를 캐물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묵상’이라고 부른다. 

전도자의 묵상의 결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은 지나친 의역이다. 개역개정의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라는 번역이 낫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조종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분이 정해 놓으신 한계 안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은 아무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알지 못한다.”

전도자는 “모두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2절)고 단정한다.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이나, 부정하고 악하게 사는 사람이나, 결국은 죽게 되어 있다(3절).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아무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4-6절). 그 운명을 기억한다면,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매일 주어지는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7절).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백년을 산다 해도 인생은 헛되고 덧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주어지는 생명은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서로 사랑하며,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한다(8-10절).  

세상사와 인생사는 공식대로 되지 않는다. 선하게 산다고 해서 복 받는 것도 아니고, 악하게 산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불행이나 재앙을 만나기도 한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11-12절). 세상사와 인생사가 복불복이요 랜덤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전도자는 어떤 성읍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 성이 포위되어 함락될 위험에 빠져 있을 때,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그 성읍을 구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해주지 않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높임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가난하다 해서 무시 당한 것이다(13-16절). 지혜는 좋은 것이지만. 어리석은 사람 하나로 인해 그 지혜가 무색해질 수 있다(17-18절).

묵상:

“인간은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철학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합니다. 하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적으로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입니다. 앞의 것을 ‘존재론적 윤리’라 부르고, 뒤의 것을 ‘목적론적 윤리’라고 부릅니다. 

잠언은 지혜에 대해 목적론적으로 접근한다 할 수 있습니다. “왜 지혜를 알아야 하고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잠언은 “그것이 참된 행복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합니다. 반면, 전도자는 지혜에 대한 목적론적 이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평생토록 지혜를 연구하고 지혜를 따라 살아 보았지만 지혜가 약속하는 행복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용 해지는 상황도 자주 만났다고 말합니다. 인생사를 지켜 보니,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별로 다를 바 없더라고 말합니다. 

이 결론은 두 가지의 선택지 앞에 우리를 서게 합니다. 하나는 “케 세라 세라”(될대로 되라) 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나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비록 지혜가 당장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해도, 그때그때 지혜를 분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결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비록 제한적이고 불분명하지만 현재 아는만큼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혜를 따라 살아도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도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존재론적으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지혜를 찾고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도, 믿어야 잘 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에 의해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을 믿고 의지함에 있어 저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저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에 주님 앞에 나아와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니 주님 원하시는 대로 저희를 처분하십시오.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시오. 채우기도 하시고 비우기도 하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일이면 무엇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멘.    

2 responses to “전도서 9장: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

  1. gachi049 Avatar
    gachi049

    원죄로 인하여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습성입니다. 그러므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주시는 지혜의 말씀이 믿음의 공동체의 나그네길에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걸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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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착한 사람이나 죄인이나 같다고하는 시인의 말에 동의 합니다만은 태어난후에 십자가를 통해 달라지는것은 확실합니다. 도리어 십자가의 길을 걷는자가 세상으로 부터 핍박을 받을 확율이 훨씬 높지만 세상이 줄수없는 마음의 평강을 세상이 모르고 있다고 읊조리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자주 넘보고 있는 졸부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오신 아기 예수님을 영혼에 깊숙히 간직하고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은혜를 감사하며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세상에 알리는 삶을 살아내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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