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전도자는 “시험삼아”(1절) 여러가지를 시도해 본다. 참된 만족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 위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도 허무한 일이었다. 그 어떤 것도 잠시 즐거움을 줄 뿐, 진정한 만족은 없었다(2절).
그는 술에 탐닉해 보기도 했다(3절). 술 취함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토목 공사를 해 보기도 했고, 포도와 여러 과일 나무 재배에 공을 들여 보기도 했다(4-6절). 남녀 종들을 두고 가축을 길러 보기도 했고(7절), 여러 나라에서 보물을 수입해 보기도 했으며, 수 많은 궁녀와 처첩을 거느리기도 했다(8절). 그 결과, 그는 역사 상 가장 큰 세력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고, 지혜의 왕으로 알려졌다(9절).
그는 인간으로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고,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누려 보았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수고하여 얻은 것이고,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10절). 하지만 이제 돌이켜 보니, 자신이 인생이 바람을 잡으려고 몸부림 친 것과 같았다(11절). 어떤 것도, 잠시 동안 기쁨을 줄 뿐, 오래도록 만족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묵상:
2017년, 뉴욕패션윅 인터뷰에서 영화배우 짐 캐리가 자신이 누리고 있던 인기와 부와 특권에 대해 “여기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누려 본 사람이 “내가 해 봤는데, 별 의미 없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누려 보지 못한 사람은 은근히 화가 납니다. 헛되고 덧없다 해도 한 번 누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없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말이 가진 자의 한가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흔히 추구하는 일들(쾌락, 부, 명예, 성취, 지식 등)은 만족과 안전과 편리를 제공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전도자가 그런 것들을 누려 보았어도 헛되더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모두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것에서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지 못하겠더라는 뜻입니다.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은 “해 아래에” 있는 것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더라는 고백입니다. 그것은 “해 위에서” 즉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잠시 동안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진정제일 뿐입니다. 모든 진정제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진정제는 잠시 쓰고 말 약이지,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약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경우, 결국 중독에 빠져 파멸을 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리석음 중 가장 큰 어리석음은 인생에서 성취할 수 있는 어떤 것에서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허무함의 쓰디 쓴 맛을 보고 “모든 것이 헛되더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온전한 기쁨과 안식과 만족을 하나님에게서 얻고 매일 주어지는 하루치의 수고와 만족을 겸손히 받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과 그 결과에서 만족을 찾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한 만족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안에서 만족을 얻었다고 말하면서도, 저희 안에는 이 세상의 것들로 더 큰 만족을 누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많이 누릴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품을 더욱 깊이 파고 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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