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장 1-11절: 해 아래에서 산다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1절)이라는 말에서 독자는 솔로몬을 생각한다. “전도자”는 ‘코헬렛’의 번역이다. 전도자는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 반복한다(2절).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은 ‘숨’, ‘바람’, ‘수증기’를 의미한다.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체가 없는 것, 잡고 싶으나 붙들 수 없는 것, 혹은 의미 있는 줄 알고 잡아보니 의미 없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서”(3절)는 개역개정처럼 “해 아래”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히브리어로 ‘타하트 하 세메쉬’인데, 이 표현은 전도서에 29회 나온다. “해 아래”라는 표현은 인간 실존의 한계를 상징한다.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의 한계 안에서는 어떤 수고도, 노력도 궁극적으로는 덧없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4절), 계절의 순환과 생명 현상은 무심히 반복된다(5-7절). 

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다 지쳐 있다”(8절)고, 전도자는 말한다. 인간도, 생명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9절). “새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고(10절). 모든 것은 잊혀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11절). 

묵상

2절은 불교적 인생관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석가모니의 제일 가르침은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모든 존재는 늘 변화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되고,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절부터 11절까지의 전도자의 고백은 불경에서 인용해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이 “해 아래”에서의 삶의 본질입니다. “해 아래”라는 말은 인간 실존의 한계를 상징합니다. 우주가 아무리 광대하다 해도 3차원의 물리적 공간입니다. 모든 존재는 1차원 시간의 흐름의 한계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 한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주어진 원리에 따라 일어나고 소멸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만들어 놓고 보면 과거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잊혀져 버립니다. 

“만물이 다 지쳐 있다”(8절)는 말은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그는 새로운 무엇을 이루어 의미와 보람을 맛보기 위해 평생토록 노력했는데, 모든 것은 지나가고 남는 것은 진한 공허감과 회의감과 무력감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만물이 다 지쳐 있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세상은 동일한데, 마음의 상태에 따라, 생명의 춤으로 가득해 보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의 ‘제행무상’의 가르침은 현상계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해 아래”의 세상에 국한한 관찰입니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멈춥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결국 “해 위”를 바라보고 이 무거운 침체와 회의를 극복합니다. “해 아래”에 대한 관찰은 “해 위”를 보게 하고, “해 위”를 본 사람은 “해 아래”를 다르게 살아갑니다. 

기도:

때로 저희도 전도자와 같은 회의감, 무력감, 절망감에 빠지곤 합니다. “해 위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고 계신 주님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육신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뜹니다. “해 위에서” 우주의 운행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묵상합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순간이 새롭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도 새 날, 새 세상을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전도서 1장 1-11절: 해 아래에서 산다”

  1. billkim9707 Avatar

    세상의 모든 자연재해 전쟁 질병 독재자들의 폭정을 보면 전연 희망이 없고 실망할 뿐입니다, 그에 따르는 stress 가 점점 심해저서 그 부작용으로 온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고 더이상 살수없는 세상이 될것 같습니다.

    해와 달 온 천지를 창조하신 사랑과 구원의 창조주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고 소망을 갖고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저희들을 십자가로 새롭게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에 감사하며 이토록 귀한 소식을 세상에 알리며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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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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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해 아래에서 사는 삶은 반복되고 헛되고 헛된 인생길 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지나간 세대는, 앞으로 올 세대도 그다음 세대가 기억해 주지 않는다(11)”고 시인은 말합니다. 따라서 생을 마감하고 영혼과 육신이 분리될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해위, 저천국, 하나님께 되돌아감이 주님의 섭리임을 믿습니다. 주님. 이와 같은 진리를 아직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웃에게 주님을 전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하시므로 그들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품격있는 삶을 살다가 천국백성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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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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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는 새로 산 맥북으로 아침 묵상을 올렸는데 사이트 접속부터 교정, 전송이 다 잘 안되었습니다. 사이트에서 새 기기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본인 확인을 시켰습니다. 오늘도 또 그럴까봐 은근 걱정입니다. 전자기기 위주의 문명시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자고 나면 ‘새 것’이 생기고, ‘신상품’을 원하게 만드는 상업주의인데, 정품이라는 입증 authentication 과 확인 verification 프로세스를 반드시 거쳐야 쓸 수 있다는 것은 ‘새 것’에 대한 오래된 의심과 저항을 보여주는 역설 같습니다. 그리고 전도서가 바로 이 역설의 산실처럼 느껴집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There’s nothing new on this earth. 모든 새로운 것,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 모든 오래된 것,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그대로라는 뜻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모든 것, 모든 인생을 다 허무하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 아닐까요. 솔로몬의 작품으로 알려진 전도서를 두고 유진 피터슨은 “전도서는 하나님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전도자는 그 일을 성경의 나머지 65권에 맡기고 우리 스스로는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을 완성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자신만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해설합니다. 전도서의 역할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뭔가 이뤄보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중단하게 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뭔가를 해보려는 노력 대신에 하나님께 온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서의 지혜자가 이미 헛되다고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의 출발역을 떠나 ‘사람은 다 가질 수 없는 존재로다,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라는 깨달음의 종착역 까지 달리는 기차입니다. 우리 안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사랑과 증오, 복종과 반항, 금기와 욕망 같은 대립적인 가치가 공존합니다. 대립적이지만 늘 갈등만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사회의 규율과 기대에 맞춰 내 안에서 조절이 됩니다. 증오보다는 사랑을 택할 때가 더 많으며, 복종과 반항의 때를 분별할 줄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전도서가 헛되다는 결론을 너무 빨리 너무 강하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도서를 사랑합니다. 어쩌면, 믿음의 편에 있는 65권의 책들에 ‘맞서’ 허무하고 연약한 인간을 편드는 유일한 책처럼 느껴져서 일까요. ‘해 아래’를 둘러보는 한 허무가 맞습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 아래가 아니라 하나님 아래에 있는 존재입니다. 해의 지배를 받는 under the sun, on this earth 시간을 살지만 마음 속엔 별이 하나 새겨져 있습니다. 해처럼 빛나는 별, 누구나 다 자기 것인 별이 있습니다. 그 별이 내 안에서 다시 빛나는 계절입니다. 영원히 새로운 주님, 우주보다 더 오래된 주님이 같이 살자고 청하십니다. 허무한 인생이지만 같이 살자고 하십니다. 죽지 않으려고 애쓰는 인생을 넘어 살기 위해 애쓰는 인생을 만들어가자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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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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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이 예쁘게 어우러진 아침, 토요일입니다. 바쁜 한 주, 오랜만에 열심을 다한 한 주였네요.

    전도서 1장. 흔히들 알려져있는 것처럼 전도서의 저자가 정말 솔로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요? 저자가 사용하는 히브리어 자체가 후대의 언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나요? (ESV 해설성경).

    익명의 저자. 대단한 지혜의 소유자이고 인생의 이치를 찾기 (히브리 matsa =find) 위한 진지한 구도의 여정을 밟은 그리고 그 답을 찾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듯.

    무상 (vanity=히브리 hebel). 삶 자체가 무상 곧 헛됨 자체라고 선언하며 책이 시작되지요. 수증기처럼 모든 생명은 잠시 있는 듯 하다 꺼져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자연의 모든 수고 (해가 동에서 뜨고 서로 지는 것,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는 제자리를 빙빙도는 무한 반복의 사슬. 모든 피조물은 허무에 갇혀있고 또 피곤해요.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어요. 한 세대와 인생은 죽고나면 그저 사라질 뿐, 그리고는 잊혀져요. 타락하여 하나님에게로 부터 끊어진 세계 (fallen world)의 허무와 슬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요.

    토요일입니다. 아무 일정 없이 삶의 쉼표를 잘 찍어보려 해요. 모순과 허무에 갇혀 있는 인생. 때로 알 수 없는 하나님. 그렇지만 하나임이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며 내게 대한 완전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오늘이 되기를.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모든 것에 때가 있음을,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실 것을 믿으며 확증하는 오늘,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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