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5장: 절망 속에서 기도하기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앞의 네 장은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을 순서대로 첫 글자로 삼아 쓴 것인데, 마지막 장은 그렇지 않다. 앞의 네 장에서 정형화 된 틀을 사용하여 고난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장에 와서 그 틀을 버림으로써, 시인은 유다 백성이 당한 혼돈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시인은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유다 백성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에게 점령 당하여 자신의 땅에서 유배자처럼 살아야 한다. 여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능욕 당하고, 젊은이들은 자기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간다. 노인들은 성문에서 사라졌고, 지도자들은 살해 당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죄 때문에 받은 심판이다. 그래서 마음 아프고, 그래서 절망스럽다(1-18절). 

유다 백성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한 다음,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한다. 주 하나님은 영원 하시며 그분의 다스림은 온 세상에 미친다. 그렇기에 그들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시인은, 이제는 그만 당신의 백성을 생각해 주시고 회복해 주시기를 구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 하신다면 그들은 주님께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시금 예전의 평화와 안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19-21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습니까? 우리에게서 진노를 풀지 않으시렵니까?”(22절)라고 질문한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이 난해하기 때문에 성서학자들 사이에도 번역과 해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어떻게 번역하든,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애가 전체를 마무리 짓는다.

묵상:

5장의 마지막 절은 예수님의 ‘가상칠언'(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 중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얼른 보면,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버림 받은 절망감을 토로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입니다. 이 시편에서 기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절규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신뢰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미래를 내다봅니다.

마지막 절(22절)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놓고 싶을 정도로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마지막 말이 모호한 표현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인은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 이대로 우리를 내버려 두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조차 버릴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속히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묵상을 접하는 분들 중에 혹시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시다면, 시인의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버려진 것 같고 잊혀진 것 같은 상황에서 믿음의 끈을 놓고 싶다 해도 끝까지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편 22편의 기도자처럼 믿음으로 희망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시는 분이며, 주님의 보좌는 세세토록 있기 때문입니다(19절).

기도:

고난과 절망 가운데 주님의 이름밖에 부를 수 없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영원히 다스리시는 주님, 그들의 호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고난 중에 더 가까이 계시는 주님, 그들을 품으시고 붙들어 주십시오. 언젠가 저희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것을 압니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주님을 우러르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빛을 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 애가 5장: 절망 속에서 기도하기”

  1. gachi049 Avatar
    gachi049

    절박하고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있을 때 자신을 돌보고 지켜주는 분을 어린아이 처럼 원망하고 울부짓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분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아시는 주님. 육신의 부모는 너희들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절망의 늪 한 가운데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더욱더 하나님께 매달려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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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끼고 추운 바람이 일렁이는 아침, 금요일입니다. 간밤에 잠이 깨어 두어시간 일을 하다가 다시 잠을 청했네요.

    5장. 애타는 탄원의 애곡. 이것으로 한 주 동안 했던 애가서 묵상이 마무리됩니다. 시온의 참담한 몰락. 고통과 징벌의 강도도 그 시간도 이 정도면 됐지 않냐는 마음일까요? 영원히 다스리시는 주. 그런 주님이 이스라엘을 이젠 영영 잊어버리신 걸까요? (20절).

    한편으론 백성 모두의 마음을 담아 조속한 회복을 요청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완전히 버려져 (utterly rejected)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될 수가 없는 건 아닌지 (unless…angry with us beyond measure) 불안과 의심이 안개로 피어납니다. 절망 중에서 드리는 기도.

    그래도 하나님이 계시고, 그래도 그분이 구원하실 것을 믿고 싶고, 간절히 믿길 원하는 갈대의 기도. 바로 우리들의 기도 같네요.

    하루를 시작합니다. 기쁨과 감동이 있었지만 상실과 괴로움도 늘 겪곤했던 시간. 그 또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루 몫의 걸음을 잘 걷는 오늘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의심의 안개 속에서도 드리겠지요? 같은 안개 속에서 헤맬 때라도 이 연약한 갈대의 기도가 약속의 항로를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었으면. 아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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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illkim9707 Avatar

    어린이 였을때 엄마에게 쓸데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불평하던 생각이 납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것을 확신 합니다만 아직도 주님께 쓸데없이 응얼거리고 불평을 하는 자신을 봅니다. 허락하신 고난과 시련이 너무나 힘들어 보여도 이 어려움을 넘어 끝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동포들의 고난은 너무나 극심합니다, 하루속히 굶주림과 헐벗음과 핍박에서 해방되는 날을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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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불행을 겪고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아는 사람이 당하는 소식도 있고 먼 데서 일어나는 일, 모르는 사람들의 비극도 있습니다. 나한테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이 서른 후반에 자발적으로 파산을 해 운영하던 출판사와 사업 일체를 정리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대학가에 오피스텔을 7년 동안 문학사 원고를 정리하며 지낸 시절에 대해 짧은 글을 썼습니다. ‘불행이 차린 만찬에는 손을 대지 마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자기의 불행은 악연이 빚은 결과였다고 말하면 비겁한 변명 같겠지만 자기는 악인과 악연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며 인생을 소모하며 살았다고 썼습니다. 그의 글은 불행이 차린 만찬을 먹고 가난과 근심에 빠지게 되었다는 회상으로 시작하지만, 오피스텔 근처 식당에서 매일 먹던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이 곤고한 시간을 시간을 넘어가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 중에 딱히 악인이 없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2005년에 시인은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등달 몇 날”이라는 시 ‘대추 한 알’을 발표합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생명은 지난 35년 동안 빌딩 외벽에 좋은 시를 올리는 행사를 해왔습니다. ‘광화문글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공간에 올라간 시들은 깊은 울림을 주는 참 좋은 작품들인데 올해 35주년 기념으로 시민이 뽑은 최고의 시로 ‘대추 한 알’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시가 나온 배경에는 불행이 차린 만찬 자리에 앉았다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시인의 언 가슴을 녹인 수수한 콩나물국밥이 들어있는 셈입니다. 남편과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우리에게도 곤고한 시간이 있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수수한 음식이 있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한국 식당 없는 동네에서 사기꾼에게서 잘못 산 가게를 하느라 고생하던 때 코리아타운까지 1시간 운전해 내려와 먹던 칼국수 한 그릇이 주던 온전한 위로…말씀이 음식이 되어 우리에게 올 때가 있습니다. 애가 4장에서 그리던 끔찍한 기아의 현장은 위로의 말씀을 듣지 못해 절망 속에 갇힌 세상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배가 고플 때 건네 받는 국 한그릇. 삶이 무너질 때 건네 받는 동앗줄. 선지자는 기도합니다. 우리를 주께 돌이켜주십시오. 우리가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군요. 내가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 어깨를 돌리시는거군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누군가가 밑에서부터 내 다리를 밀어 올려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내쪽으로 밧줄을 던져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군가가 당신입니다 주님.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를 주께로 돌이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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