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3장: 묵상의 힘

2–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3장은 예레미야 애가 전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앞 장에서 시인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서운함을 쏟아 놓았다. 그 기도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고, 막혀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린 것처럼 보인다. 

이 애가에서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자신이 받은 고통에 대해 묘사한다(1-20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적 삼아 활을 쏘고 계신 것처럼 느낀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최대한 잔인하게 괴롭히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로 인해 주님께 두었던 희망마저 사라졌다. 유일한 희망은 주님 밖에 없는데, 그분께 버림 받았으니, 절망 밖에 남은 것이 없다. 

시인은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자신이 그동안 믿어 온 하나님에 대해 묵상한다(21절). 시인은 자신이 과거에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다”(22절)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함이 크다”(23절)고 고백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그는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의 나의 희망”(24절)이라고 늘 고백하고 다녔다.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주님은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영영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회복되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심히 크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당하고 견뎌야 한다(25-32절). 그분이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기 때문이다(33절).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며 믿음과 희망을 되찾은 시인은 유다 백성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의 소행을 다 보고 계시고(34-36절),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스리신다(37-38절). 따라서 그분에게서 받는 심판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39절). 재난 중에 그들이 할 일은 지난 일들을 돌아 보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40-41절). 

하나님께 기도 드리자고 권면한 후, 시인은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기도 올린다. 먼저 그는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다. 지금 당하고 있는 재앙은 그들의 죄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다(42-51절). 이어서 시인은 자신들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 묘사하면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원수를 갚아 달라고 청한다(52-63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자신들을 괴롭게 한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해 주시기를 기도한다(64-66절).

묵상:

인간의 희망이 끝나는 곳에서 진정한 희망이 시작됩니다. 시인은 지상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희망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는데, 지금 당하는 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온 것이니, 이제는 영영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버림 받은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절망의 가장 깊은 바닥에 내버려졌고, 우울의 늪 속에 빠져서 끝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습니다. 모두에게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아니, 하나님 밖에 생각할 대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경험 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분이 왜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는지를 캐어 묻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어둠에 갇혀 있던 그의 영혼에 깨달음의 빛이 비칩니다. 그분의 본심은 한결같은 사랑에 있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재앙은 그분의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이 회복되자,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한 없이 끌어내리던 우울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빠져 있던 유다 백성을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묵상은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는”(21절)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왜 이런 일을 당하게 하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일을 알 수 없을 경우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그 빛에서 오늘 우리의 상황을 해석하게 합니다. 그럴 때,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현실을 대면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도:

묵상의 삶으로 저희를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주님 앞에 머물러 앉아 주님이 하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주님 안에 저희의 참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 애가 3장: 묵상의 힘”

  1. gachi049 Avatar
    gachi049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항상 돌보심을 믿습니다. 만약 주님을 믿지 않고 내 주장대로 살았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주님과의 사귐을 숨이 멎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도록 성령께서 동해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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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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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지난날 어둠에서 방황하고 고난과 낙망으로 허덕 였던것이 온전히 내자신의 죄의 결과 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에 침묵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끝이 없다고 읊조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하게 하는것은 주님의 본심이 아닌것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죄인이었을때 원수였을 때에도 십자가의 은혜와 구원을 허락하신 신실하신 주님을 인내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교회로 부터 멀리 떠난 자녀들이 다시 돌아오는 소망를 갖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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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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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많이 끼고 찬바람이 일렁입니다. 벌써 수요일. 어제 밤 늦게까지 가진 모임의 여운 때문인지 잠이 여러번 깨었네요.

    애가서 3장. 성찰과 위로와 애통의 노래라고 할지요? 마치 욥이 당한 그것처럼 시인에게 닥쳐온 고난은 마치 토끼 몰이 같이 잔인하고 완벽하여 결코 벗어날 구멍이 없습니다. 욥과의 차이점이라면 이 고난의 이유가 자기 자신의 죄라는 것.

    그러나 (21절). 이 접속사 하나가 나오면서 죽음과 절망의 시편이 희망과 위로의 노래로 뒤바뀝니다. 이렇다 할 빌드업 없이, 갑자기.

    이율배반?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심판과 응보가 있어야만 하겠죠. 죄의 무게에 비례하는 엄중한 형벌. 마치 지옥불 같이 그것은 잔인하도록 냉혹한 것이겠지요? 그 유황불 속에서 시인은 다시 사랑이신 하나님을 기억한 것 아닐지요? 조건이 없는 완전하신 사랑. 죄의 권세와 죽음의 쏘는 침을 꺽고 살리는 능력.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내 죄를 인하여 채찍에 찢기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이, 그 사랑을 찬양. 보혈의 능력, 그 대속을 찬양. 때로 고통과 실망, 우울의 강을 건널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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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람이 겪는 슬픔이나 고통의 무게는 저마다 다 최고치입니다. 어린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아프다고 웁니다. 크게 다친 게 아니어도 아이는 웁니다. 아파서도 울고 놀라고 무서워서도 웁니다. 아이에게는 그 순간이 위급하고 위험합니다. 응급실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위급하고 위험한 느낌이 다 자기 위주라는걸 압니다. 의사를 빨리 보고 싶으면 심장마비가 오는 것 같다고 창구에 얘기하면 된다는 ‘팁’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환부의 심각성이나 통증의 정도를 수치화하는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응급의학도 달라지겠다 싶습니다. 성경은 고통에 대해 여러 군데에서 여러 번, 여러 방식으로 말합니다. 삶의 기본값은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마주하는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풀면서 사는가. 나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리가 매일 씨름하는 질문이고 답입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가 -누군가가- 달래줍니다. 나의 울음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면 고통은 반 이상 사라집니다. 세번째 애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독입니다. 어둠 속으로 데려가시고, 어둠 속에 앉히셨다는 표현이 아픔보다 먼저 다가옵니다. 작가는 자기의 고난과 괴로움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한 그는 자기 또한 기억을 함으로써 희망이 생겼다고 고백합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산의 전부이시니 내게 희망이 있다’고 하였다 (24절)”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메시지 영어 성경은 ‘He’s all I’ve got left. I’m sticking with GOD, I say it over and over.’라고 번역합니다. 고통의 원인을 찾아서 위로가 된 게 아니고, 고통을 없앨 방도를 알아내서 희망이 생긴게 아닙니다. 여호와를 기억하는 것이 고통의 강을 건너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억한다는 말은 그분의 사랑과 자비, 선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한다는 뜻이겠지요. 내가 울면 들어주고 다독여주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는 뜻이겠지요. 고통의 답은 같이 있음이겠구나 싶습니다. 작가가 독백처럼 하던 말이 주님과의 대화로 바뀝니다. 들을 사람이 없던 것처럼 느껴지던 고독의 바닥에서 선지자는 주께서 자기 사정을 살펴 주셨고 목숨을 구해주셨다 (58절)는 고백도 하게 됩니다. 함께 있는 것,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것, 멀리 있어도 마음을 전하는 것, 듣고 있다고 알려 주는 것… 고통을 견뎌내는 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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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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