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52장: 성취된 예언, 성취될 예언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레미야서를 편집한 사람은 열왕기하 24장 18절부터 25장 7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함락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어 결론으로 삼는다.

유다는 주전 605년에 이미 바빌로니아의 봉신 국가가 된다. 여호야김 왕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로니아에 도전했고, 그로 인해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고립시킨다. 그 과정에서 여호야김 왕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즉위하자 마자 바빌로니아에 항복한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 시드기야를 꼭각시 왕으로 세운다(1-3절). 

그로부터 9년 뒤, 즉 주전 588년, 시드기야는 또 다시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느부갓네살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18개월 동안 성을 에워싸 고립시키고, 시온 산 옆에 토성을 쌓아 올린다. 외부로부터의 식량 공급이 단절되자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주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4-6절). 토성이 예루살렘 성벽보다 높아지자, 바빌로니아 군대는 공격을 시작했고, 성이 함락될 것이 분명해지자 왕은 군사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바빌로니아 군대는 그들을 추적하여 여리고 평원에서 사로잡는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자녀들을 처형하고 그의 두 눈을 뺀 다음 바빌론으로 끌고간다. 시드기야는 바빌론의 감옥에서 생을 마친다(7-11절). 

바빌론으로 돌아간 느부갓네살은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을 보내어 예루살렘 궁전과 성전을 약탈하고 파괴한 다음,  예루살렘 성벽도 무너뜨린다(12-14절). 그는 극빈자들만을 남겨 두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간다(15-16절). 그들은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기구와 도구들을 약탈해 간다(17-23절). 그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고관들과 귀족들을 모두 체포하여 포로로 잡아간다(24절의 ‘스라야’는 51장 59절에 나오는 ‘스라야’와 다른 사람이다). 그가 세 차례에 걸쳐 끌고 간 유대인 포로는 도합 4천 6백명이었다(24-30절). 

느부갓네살의 첫 번째 원정 때에 사로잡혀 갔던 여호야긴은 37년 동안 바빌론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가 포로로 끌려 온 것이 18세 때의 일이었으니, 55세까지 감옥에서 산 것이다. 그 사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세상을 떠나고 에윌므로닥이 왕위에 오른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여호야긴을 석방하고, 죽을 때까지 포로로 잡혀 온 왕들 중 가장 높이 예우해 준다(31-34절).

묵상:

편집자가 예루살렘 멸망 이야기를 예레미야서의 결론으로 삼은 이유는 그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비호감’의 인물이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커녕,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예언을 하고 다녔으니, 그의 예언을 반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예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습니다. 사실이라 해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예언자들의 말이 진실이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레미야가 전한 그대로 유다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토록 미워하고 배척했던 예레미야가 참 예언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그의 예언 중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지금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바빌로니아가 유다처럼 멸망할 것이고, 바빌론 도성이 예루살렘 성처럼 폐허가 될 것이라는 예언도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자신들이 자유인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희망이 이국 땅에서 포로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지켜 주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포로로 살던 유대인들이 예언에 대해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바빌로니아는 멸망했고, 다른 제국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포로로 살던 유다 백성은 조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새계약이 맺어질 것이라는 예언도 5백 년이 조금 지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메시아를 통해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것이, 우리가 때로 포로된 유다 백성들이 겪는 것과 같은 고난을 겪는다 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힘입니다.  

기도:

유다 백성이 바빌로니아에 살면서 조국을 그리워 했던 것처럼, 저희도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그리워 합니다. 유다 백성이 미래에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얻고 그 희망의 힘으로 현실을 살아낸 것처럼, 저희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을 살아냅니다.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52장: 성취된 예언, 성취될 예언”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내린 눈으로 아직도 흰 색을 잃지않고 있는 창밖 풍경이 확 들어오는 아침. 토요일입니다.

    52장. 지난 두달 간 예레미야서의 여정이 진짜 끝났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편집자 후기 같은 글. 그러니 예레미야나 그의 예언 자체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예언의 대상이 되었던 남유다 왕국의 최후, 그리고 포로집단의 상황이 그 주제.

    듣기 싫고 아니기를 모두가 바랬던 냉혹한 심판 예언. 도성의 초토화, 성전 파괴와 기물의 약탈, 지배 엘리트들의 처참한 말로. 편집자는 이 모든 악몽이 현실로 구현되었음을 것을 매우 담담히 증언하고 있어요.

    52장은 바벨론 포로기 말기에 포로공동체 (golah) 서기관들에 의해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예레미야의 응징 예언의 성취되었으니 그의 회복 예언 (70년이 지나면 가나안으로 귀환)도 이뤄질 것을 모두가 바랬고 그 간절한 믿음이 golah 공동체의 정체성이 된 것 같아요. 다윗의 자손 여호야긴의 복권이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길 바라는 그들의 염원이 이 사실을 담담히 기술한 무미한 엔딩 뒤에 숨겨져 있지는 않을지요?

    토요일입니다. 개인일과 오후 일정으로 마음이 분주한 날. 그래도 바쁜 일상 속에 허락하신 쉼표를 충분히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주의 신실하심을 깊이 생각해 보는 날이 되었으면.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시간에. 모든 것에 때가 있고 그 때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이. 그 회복의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날마다 느끼며 소망으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매일,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임마누엘. 바로 여기. 임마누엘. 곧 오소서.

    Liked by 2 people

  2. billkim9707 Avatar

    대림절 시기에 허락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 졎습니다. 단 한가지 약속 재림 하시겠다는 약속만이 남았습니다. 그것도 언젠가는 이루어질것을 믿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기름을 충분히 마련하는 다섯 지혜의 처녀들과 같이 부지런히 주님 맞을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언제오실지 모르는 주님 시간에 깨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Like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 특히 예레미야를 통해 장차 일어날 일들을 알려주시고 대비하도록 하셨으나 권력자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므로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그들은 남의 나라의 포로로 살았고 여호야긴 만 살아났으며 새 계약도 이루어 졌습니다. 주님. 앞으로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믿음의 공동체에게 영적 지혜와 능력을 주심을 통해 신실한 하나님의 군사로서 품격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Like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장은 열왕기하 24장과 25장의 일부분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구약에서 특히 열왕기와 역대기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조들과 사건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예언서는 역사서의 배경과 나란히 갈 때도 있지만 예언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선포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이어서 매일 읽겠다고 결심하고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은 reader friendly, user friendly 책이 아닙니다. 편집을 잘 하는 편집자들이 모여 성서를 다시 출판해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 어려운 책을 누가 읽겠나. 직접 읽지 않아도 설교 말씀으로 풀이해 주는거 들으면 되는걸까. 읽는게 다가 아니라 행하는 것이 더 중하지. 내가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엘리트의식 아닐까. 성경을 대중이 읽게 된게 얼마나 되었다고…이런 생각이 묵상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열왕기하 25장과 예레미야서 52장 모두 바빌로니아 왕은 여호와긴이 죽는 날까지 날마다 자기 상에서 음식을 먹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뒤를 이은 에윌므로닥이 왕이 된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뜻밖의 엔딩 같이 보이기도 하고, 바빌로니아의 왕조 내부의 혼란을 예측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포로로 잡혀온 유다 백성들에 대한 유화정책을 쓰는걸까, 느부갓네살의 40년 집권을 ‘지우는’ 정치적 제스츄어일까…에윌므로닥을 따로 찾아보면, 바빌로니아의 제 3대 왕으로 그의 통치는 2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다 왕 여호와긴을 37년 만에 옥에서 꺼내 준 것이 그의 집권 중 주요 치적으로 남았습니다. 여호와긴을 풀어 주고 자기와 함께 식사를 하게 한 기간 또한 그저 2년일 뿐입니다. 에윌므로닥이 죽은 뒤 여호와긴의 대우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왕조가 순조롭지 않았다는 것 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관통하는 테마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의지와 방향은 우리의 기대나 예상과 같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바램이 상수 constant 이고 그분의 뜻이 변수 variable 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 하나님이 보조를 맞춰 주셨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우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 아니라 변화 이상의 분, 변화 너머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변할 수 밖에 없고, 변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누가 사람=상수+변수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변하지 않는 부분과 변하는 부분이 공존한다는 뜻입니다. 히브리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 땅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는 알지라 (출 6:7)’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약속입니다. 상수입니다. 내 안의 상수와 변수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에윌므로닥의 상에 앉아 밥을 먹는 여호와긴의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왕에게 감사했겠고, 여호와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풀어주고 머리를 들게 하며 죄수복을 벗게 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합니다. 뜻밖의 엔딩 같은 예레미야서의 엔딩이 50장 넘게 계속되는 심판의 예언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부활의 엔딩을 가슴에 담고 아기로 오시는 사랑스러운 예수님. 어서 오소서.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임마누엘!

      Like

Leave a reply to billkim970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