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50장: 영원한 권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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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50장과 51장은 바빌로니아의 멸망에 대한 긴 예언이다. 51장 59절에 의하면, 이 예언이 주어진 때는 늦어도 시드기야 왕 제 4년(주전 593년) 이전이다. 이 때 느부갓네살은 무섭게 제국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바빌로니아 왕국이 영원할 것처럼 보일 때, 주님께서는 그 왕국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신다(1절). 

주님은 미래에 있을 바빌로니아의 멸망을 완료형으로 말씀하신다. 때가 되면 바빌로니아는 그가 멸망시킨 나라들처럼 북쪽에서 밀려 오는 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그로 인해 바빌론 도성은 폐허가 될 것이며 야수떼의 소굴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은 두려워 떨 것이다(2-3절).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은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4절). 그 때, 주님은 그들과 “절대로 파기하지 않을 영원한 언약”(5절)을 맺으실 것이다. 주님은 유다의 패망이 목자들의 그릇된 지도력 때문이었다고 하신다(6-7절). 

그 때가 오면 포로들은 바빌로니아를 떠나 조국으로 돌아올 것이다(8절). 주님께서 “강대국들의 연합군”(9절)을 사용하여 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약탈 당할 것이다(10절). 바빌로니아는 주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교만해졌다(11절).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행한 그대로 갚음을 당할 것이다(12-16절). 그 때 주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17-20절). 계속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오만을 거듭 강조하신다(21-46절).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절대 패자로 군림했던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에 급속하게 약화된다. 반면, 바빌로니아와 상대도 되지 않던 페르시아 왕국은 고레스 왕에 의해 새로운 패자로 급격하게 부상한다. 고레스 왕은 메디아 왕국과 리디아 왕국을 차례로 점령한 후 바빌론 도성으로 향한다. 주전 539년,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바빌론 성은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 당한다. 고레스는 30년 동안 페르시아 제국을 확장시켰고, 그의 아들 캄피베스 2세는 페르시아를 역사 상 가장 광대한 제국으로 만들었다.  

묵상:

스탈린, 히틀러, 폴 포트, 모택동, 김일성,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절대자처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부정한 탐욕을 애국심으로 포장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권력을 잡은 후에는 공포 정치를 통해 전국민을 보이지 않는 사슬로 결박해 놓았었습니다. 그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죄악에 치를 떨게 됩니다. 그들이 범한 죄의 분량에 비하면, 역사의 심판은 너무나도 가볍다 싶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계셔야만 하고, 마지막 심판은 있어야만 합니다. “결국 모두가 죽는다”는 정의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전능자처럼 세상을 휘젖고 다니며 모두를 두려워 떨게 할 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머지 않아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느부갓네살의 권력이 정점에 있을 때 이 예언이 주어졌으니,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빌로니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이렇게 길게,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바빌로니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전해줍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역사를 다스리시고 바로 잡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해줍니다.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다면 그 권력의 궁극적인 소유자를 생각해야 하고, 권세 아래에 있다면 그 권세를 주신 영원하신 권세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는 결국 영원한 통치자 앞에 서야 하고,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은 영원한 주권자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부를 정도로 죄의 양을 쌓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지금도 절대 권력을 얻기 위해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영구화 하기 위해 부정과 불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암세포처럼 온 세상에 퍼져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저희들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 이 암세포가 세상을 압도하지 않도록 막는 면역의 벽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50장: 영원한 권력은 없다”

  1.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권력을 손에 넣는 다면 권력과 재물의 욕망만 보이고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자들, 병든 자들 등 약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가진 자들 또는 사이비 종교 집단과 결탁하여 힘을 축적하는 권력자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주님. 주님의 백성들이 먼저 이타적 사랑을 품고 거룩한 소비로 약자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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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전지전능 창조주 하나님, 공평과 정의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하늘의 지혜를 원합니다, 부조리와 죄가 가득한 세상에 낙심하지 말고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시력을 기도합니다, 잠시의 시련과 박해에 탈진하지 않고 온세상의 구원자 살아계신 주님께 온전히 소망을 두며 끝까지 인내하며 인생을 마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래동안 교회를 떠난 자녀들이 십자가의 은혜와 주님 부활을 감사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횡포로 애매한 민초들의 고난과 박해와 굶주림의 원인인 모든 세상의 권세자들을 제거 하시겠다는 기쁨의 소식으로 읽습니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님, 주님의 뜻과 계획이 하루 속히 이루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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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바람이 차갑게 일렁거리지만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왠지 서글프게 섞여 있는 아침, 목요일입니다.

    50장. 마침내 예레미야서의 최종 엔딩이네요. 바벨론의 몰락, 유다 백성의 귀환, 그들과의 영원한 언약의 시작과 속량. 미래에 일어날 사실들에 대한 예고와 문학적 상징적 언어들이 섞여 있어요.

    미래 예언의 적중률을 점수화한다면 한 70점? 바벨론의 패망과 유대인의 귀환은 이뤄졌지만 페르시아는 바벨론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포용했다고 하지요. 또 극심한 민심 이반으로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은 사실상 무혈입성이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50장이 묘사하는 모든 문학적 상징들은 마치 새로운 출애굽의 이상을 노래하는 듯 마음에 울림을 줍니다. 압제의 사슬은 풀리고 백성들은 자유를 얻습니다. 양들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본향, 가나안으로 되돌아가게 되지요. 죄는 씼기어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영원히 깨지지 않을 언약, 곧 everlasting covenant가 모 마음 속 돌판에 새겨져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모두가 그 나라의 백성, 그 나라의 시민권을 누립니다.

    여러가지 일들로 마음이 분주한 아침.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생명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이라는 기회의 때를 주심에 감사. 주홍같이 붉은 죄를 흰눈같이 씻으신 어린양의 보배 피. 그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내 영을 소생시키는 오늘이 되길. 확신이 의심과 불안을 누르고 소망이 낙심과 좌절을 이기는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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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한국에서는 법과 국민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높은 사람들’의 법정 심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년 전에 계엄이라는 총부리를 국민에게 들이밀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미국이지만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듣던 순간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9.11의 아침이 영원히 박제되어 있는 것처럼.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으로 시작해 이스라엘이 왜 심판을 받을 것인지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고집과 우둔함, 계속되는 잘못, 예언을 무시하는 행동과 선지자의 고난이 이어집니다. 선지자는 바빌로니아에 의해 이스라엘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빌로니아가 등장하는 지점은 29장입니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지자의 편지입니다. 왕들의 실책과 거짓 선지자들의 헛된 몸부림이 나옵니다. 갈팡질팡 어쩔 줄 모르는 백성의 모습이 이어지고,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다 땅의 모든 나라가 심판을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바빌로니아마저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예언이 계속됩니다. 세대교체처럼 열강의 교체가 일어납니다. 힘으로 일어난 나라는 힘으로 쓰러지는 단계를 밟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사도, 중국의 왕조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평세대는 오래 가지 않고 전쟁의 반복으로 세월이 채워집니다. 전쟁은 스스로 신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을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유다 주변국가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 중에는 교만과 우상숭배가 공통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예언서의 주요 테마입니다. 나는 유일신앙자로서 성서를 읽고 묵상을 합니다. 우상숭배가 왜 죄인지 압니다. 다신론이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는 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따로 공부해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현대 크리스찬의 시각으로 고대 근동지방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 –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욕구- 면에서는 그들이나 우리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천둥이 치면 신이 화가 난 것이라고, 어린 아기가 죽으면 천사로 만들려고 데려간거라고… 고대인도 우리도 이해해보려고 애씁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각 시대의 모든 이에게 적합한 기준으로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심일지, 본성일지, 상식일지…무엇인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흔히 예수를 모르고 죽은 조상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한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빌던 할머니도 지옥에 갔을까…묻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복음을 들어 믿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 더 감사한 일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크리스찬의 교만과 우월의식이 싹을 티우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예언자가 말하는 열국의 종말에는 그들이 믿던 신들의 종말도 담겨 있습니다.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어떤 신도 그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우상숭배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 만의 죄가 아닙니다. 전쟁에 의지하는 권력자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애쓰는 기업가들, 지식의 탑을 쌓는 학자들…무엇으로 심판을 받을 지 분명합니다. 내가 탐하는 그것이 나를 쓰러뜨릴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겸손을 가르쳐 주소서. 새싹 같이 순하고 어린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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