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7장: 반복되는 역사, 이끄는 섭리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블레셋 민족은 크레타 섬에서 이주한 해양 민족이 가나안 남서부의 지중해 연안(지금의 ‘가자’ 지구)에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에 그곳에 살던 다섯 개의 주요 부족 중 하나였다. 블레셋은 아래로 이집트와 위로 열강들 사이의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자주 전쟁에 휘말렸고, 그 과정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출애굽 당시에 광야길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름길에 블레셋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두 민족 사이에 자주 전쟁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두 나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이집트 왕 바로 느고는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시기 전후로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하나인 가사를 여러 차례 공격했다. 그 시기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1절). 주님께서는, 블레셋이 멸망하기는 하겠지만 이집트가 아니라 바빌로니아(2절: “북녘에서 범람하는 강물‘)에 의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로와 시돈에서 불러온 군사들도 바빌로니아 군에 의해 멸절 당할 것이다(3-4절). 블레셋은 거인 자손 아낙 족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도 바빌로니아 군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5절). 주님께서 바빌로니아를 통해 블레셋을 심판하기로 정하셨기 때문이다(6-7절). 주전 604년, 결국 블레셋 족속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지구 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묵상:

블레셋이 멸망한 후 약 6백 년이 지나,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로 인해 그 이름이 다시 역사에 등장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나서 유다 백성을 로마 제국의 여러나라로 흩어 버린 후, 그 땅의 이름을 ‘팔레스티나’로 바꿉니다(주후 136년). 블레셋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던 민족의 이름으로 그 땅을 이름 지음으로써 유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던 이스라엘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블레셋 민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스스로를 블레셋 민족의 후손인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2천 년이 흐른 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재건되었습니다. 세계 여러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때처럼 가사 지구를 정복하지 못했고, 그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점이 되었으며, 지금도 하마스가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역사만큼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례가 없을 것입니다. 역사에서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다만, 위로를 줄 뿐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과거에도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면, 약간의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무심히 혹은 우연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면서 진행합니다. 그 진행을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이끄십니다. 

따라서 희망은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지평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기를 원하지만 이룰 수 없는 것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고 기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 저희로 하여금 저희가 속한 이 시대의 역사에 책임있게 행하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현실 역사에 매몰되어 주님의 손길을 망각하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섭리를 믿고 지금 이곳에서 저희가 할 일에 신실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47장: 반복되는 역사, 이끄는 섭리”

  1. billkim9707 Avatar

    유대인과 자칭 불레셋 이라고 부르는 민족은 수천년 철천지 원수입니다, 서로 복수하며 되로주고 말로받는 싸움을 이어가는 vicious cycle 입니다, 한번만 한쪽에서 사랑하고 용서하면 평화가 올것인데 서로 복수할려는 미련한 권세자들의 욕심 때문에 두민족의 애매한 민초들만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 없이는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모두가 멸망 한다는것을 절감하고 하루 속히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원수도 사랑 하라는 주님의 귀한 말씀에 굴복하고 순종하여 화평을 누리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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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끊임 없이 반복되면서 인류는 더 편하게, 더 많이, 더 강한 힘을 구하기 위해 창조 질서를 훼손시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물로 땅을 파멸시키지 않겠다(창 9:11)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날이 도둑 같이 오실 때 원소들이 불에 녹아내리고 모든 것이 드러난다(베드로 후 3:10)고 하셨습니다. 결국 심판의 그날이 올것입니다. 주님. 그날이 언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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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하늘은 파랗지만 추운 바람이 부는 월요일. 감사절 연휴가 지나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예레미야 47장. 쿠키 영상처럼 열방의 운명에 대한 원포인트 예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오늘은 블레셋 편. 선지자가 내다보는 이스라엘의 최대 적수 (arch enemy) 블레셋의 미래는 유다 족속의 그것보다도 더 참담합니다.

    바벨론은 모압, 암몬 등과는 조공관계를 맺으며 그 왕조를 보존시켰지만 가자, 아스글론 등 블레셋의 도시 국가들은 완전히 멸망시켰다고 하죠. 이후 블레셋 잔존 세력은 유민화되며 다른 민족에 동화되는 일종의 점진적 소멸 과정을 걷게되었다고 하네요.

    왜? 모두가 죄를 지었고 모두가 심판대에 오르지만 왜 누구는 긍휼의 그릇이 되고, 다른 누구는 진노의 그릇이 되는 걸지요?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하나님. 그래서 신비이신 하나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그 비밀의 뜰 안으로 불러, 때로 머물도록 하시는 이를 찬양.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그분의 식탁에 참여하며 그분의 양떼들을 섬기고 돌보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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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새 달 12월이 되었습니다. 올해의 끝에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으며 또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이미’ 오셨고 ‘아직’ 도착하지 않으신 예수님. 이미 주셨고 아직 받지 않은 빛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이런 상태를 현실감 있게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던 때입니다. 대다수 인구가 백신 접종을 마쳤고 사망률도 현저히 떨어지던 팬데믹 말기가 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하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가지면서도 자신감이나 안정감이 일어나지 않던 시간이 꽤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캄캄한 방 한 구석에서 환한 바깥까지 조금씩 걸어오다 문턱 앞에 온 것 같은 순간이랄까요. 문턱을 넘으면 마침내 환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두운 방에 있습니다. 삶의 무수한 순간들은 이미 일어났던 -내게 일어나지 않았어도 누군가의 삶에는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나고 이번엔 내게 일어나 내가 감당해야 하는 그런 순간들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것을 경험하지만 다르게 경험하기도 하고, 다른 경험을 하면서도 같은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의 반복은 시간의 반복이 빚어내는 사건들입니다. 블레셋의 멸망을 예언하는 성경을 읽지만 지금 나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아픔의 책임이 이스라엘 정부와 그를 지지하는 국제사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듭을 풀 수 있는 쪽은 이스라엘이라고 봅니다. 역사적인 눈으로 보면 성경의 블레셋과 현재의 팔레스타인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하신 말씀이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순수하게,’ 분석이나 해석하지 말고 읽는 것이 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한밤 중에 깨서 다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페북을 켜니 책 소개 글이 올라왔는데 저자는 생물학 교사로서 보수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젊은 지구 창조론 young earth creationism (지구가 6일 간에 창조되었으며 만 년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 을 확신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신앙을 잃지 않으면서도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믿음의 길을 탐색하며 성경과 자연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고 출판사는 소개합니다. 소개글 중에서 DNA에 관한 챕터 요약이 인상적입니다. 한 유기체에 존재하는 DNA의 양은 유기체의 복잡성과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DNA는 단순 동물이나 파리의 DNA 수와 거의 같답니다. 쌀과 옥수수의 유전자 수는 인간의 유전자 수보다 오히려 두 배 이상 많답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단백질 코딩 DNA’는 전체 유전자의 1-2퍼센트 뿐이며 절대 다수는 다른 유전자의 작동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역할 (regulatory role)과 기능성 functional RNA 생산, 또 염색체의 구조를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이들 비코딩 DNA는 학문 초기에 ‘정크 DNA’ 즉 쓰레기라는 오명을 얻었는데 이는 연구 초기 단계에 ‘무식하게’ 붙인 이름이며 연구가 진행되면서 가장 중요한 조절자로 밝혀진 유전물질입니다. 신체가 어떻게 종합되는지를 제어하는 기능 즉 머리는 어디로 가고, 꼬리는 어디로 가는지를 조정하고, 또 다른 그룹은 다리의 갯수와 배치를, 또 다른 DNA 그룹은 어느 때에 다리가 발달될 지를 정하는 기능을 맡는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명령이 유전물질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과학과 믿음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약인지 모르지만, 블레셋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와 부족, 가문이 일어났다 사라졌지만 실제로 낭비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은 낭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도, 방법도 의미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온전하고 완전하게 완성됩니다. 역사가 문명이라고, 보물이라고 여긴 것도, 정크라고 판단한 것도 하나님의 뜻의 일부인 것을 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공의 앞에 티끌이요 하루살이로서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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