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3장: 하나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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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레미야가 주님에게서 받은 말씀을 전하자, 요하난과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거부한다(1-2절).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을 위해 예언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좋든 싫든 주님의 말씀대로 하겠다던 말(42:1-3)은 빈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비서인 바룩이 그들을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넘겨 주려고 술수를 부린 것이라고 의심한다(3절). 요하난과 군지휘관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유다 백성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간다(4-7절). 이 때 예레미야도 그들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간다.

이집트 국경을 넘어 다바네스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린다(8절). 그곳에는 이집트 왕을 위해 마련해 놓은 임시 궁전이 있었는데, 큰 돌들을 가져다가 궁전 앞 광장 포장을 뜯어내고 파묻으라고 하신다(9절). 그렇게 한 다음, 머지 않아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이집트를 침략할 것이며, 자신이 묻어 놓은 들들 위에 보좌를 차리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신다(10절). 그 때, 이집트는 과거에 겪어 보지 못한 화를 입을 것이며, 모두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하신다(11-13절). 

묵상:

예레미야는 이집트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유다 백성과 동행합니다. 예레미야가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극구 말렸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억지로 끌려 갔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예레미야가 자의로 그들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면 화를 당하게 될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더 더욱 유다 땅에 홀로 남기를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동족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들과 함께 내려가 고난을 함께 겪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그가 믿고 섬긴 하나님의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기를 선택할 경우에 강압적으로 그를 되돌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뜻대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그분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불행한 선택을 하여 재앙의 길을 가는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함께 아파하시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았기에 죽음의 길로 향하는 동족을 따라 이집트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한국 전쟁 때 순교 당하신 도복일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전쟁 당시에 그분은 충남 아산 삽교읍에서 목회하고 계셨는데, 공산군이 내려오자 교인들이 목사님에게, 피난 행렬을 따라 내려가라고 권고했습니다. 공산군에게 목사는 최우선의 처형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주저하면서 따라 나섭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분은 삽교읍으로 돌아옵니다. 교인들과 함께 고난을 같이 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동네는 이미 공산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습니다. 그분은 어느 교인 집 광에 숨어서 며칠 동안 교인들을 돌봅니다. 하지만 그분이 동네로 돌아온 것을 공산군이 알아챘고, 방송으로, 자수하지 않으면 하루에 교인 한 명씩 처형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은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신 후에 자수하셨고, 아산 뚝방에서 총살을 당하셨습니다. 

제 아내의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기도:

저희는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그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저희는 애써 모른 척하고 삽니다. 그러면서도 믿는다고 말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십자가에 드러난 주님의 마음을 보게 하시고, 그 마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뜻을 따라 겪는 고난이 저희에게도 있게 해주십시오. 저희 삶의 이력에도 십자가의 모습이 보이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43장: 하나님의 마음”

  1. gachi049 Avatar
    gachi049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주님은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조국 유다 땅에 남아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국 땅에서 격을 고난을 피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즉 백성들에게 큰돌들을 날라다 바로의 궁전 앞에 묻으라고 하시고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왕좌를 만들도록하여 이집트의 신전들을 무너트리고 불살라 버리셨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 입니다. 영안을 부릅뜨게 하셔서 분별력을 주심으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남은 순례자의 길을 걷게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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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십자가의 길을 분명히 보여주신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고 망설이지 않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는것이 사는것 인것을 밝히 보여주신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에도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얄팍한 믿음으로 보니 너무나 험악하고 높고 좁아 보입니다, 자신이 없습니다,확실한 임마누엘 주님의 믿음과 체험이 필요합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높고 험한길을 걷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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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날씨는 좀 풀린 듯 하지만 구름이 가득해 어둑어둑한 날. 간밤엔 이유를 알 수 없이 정말 자주 깨었지요. 그래서인지 유독 피곤한 수요일 아침입니다.

    예레미야 43장. 남아 있어야 한다는 선지자의 권고를 거짓 예언으로 치부하고 끝내 에집트로 가고야 마는 유다의 유민들. 자의든 타의든 예레미야와 그 서기관 바룩도 결국 같이 가게되지요. 그곳에서 예레미야는 에집트가 바벨론에 의해 정복될 것을 예언하지요 (이 예언은 실제 역사에서 실현되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가나안에서 에집트로 돌아가는 행동은 출애굽을 통해 역사하였던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을 아예 원점으로 돌리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지요? 말하자면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백지화한 것? 그리고 옛언약의 최종적 파기? 이제 더이상 긍휼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들 가운데 끝까지 있게 하세요.

    이제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고 해요. 간밤에 잠을 잤고 눈 뜨고 일어났고 또 오늘이라는 생명의 시간을 생명의 기회로 주심을 감사.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 아니고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오늘이 되기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를 보배피로 씻기시고 눈보다 더 희게 하신 이를 찬양.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마음 속의 큰 고통이 그 십자가로 인해 다 사라지고 처음 믿을 때처럼 내 눈이 밝아지는 기적을 맛보는 하루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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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쯤되면 주님 말씀대로 할 법도 한데 유다 백성은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아사랴와 요하난과 ‘다른 교만한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맹비난을 퍼붓습니다. 이제는 그의 비서 바룩을 지목해 바룩이 ‘꾀어서’ 자기들을 바빌로니아에 넘겨 주려고 계획을 세웠다고 몰아칩니다. 여호와에 명에 따르지 않겠다는 결심이 굳어도 보통 굳은게 아니지요.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 달라고 청하던게 다 빈말 빈몸짓이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이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는지, 하나님을 나의 장식물, 악세사리로 생각하는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영어로 악세사리 accessory 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편의성, 효용성을 한층 더하여 주는 부차적인 물건이라는 뜻이 있고, 범죄에 함께 가담한 공범이라는 법적인 뜻이 있습니다. 옷이나 집을 장식하는 악세사리는 뚜렷한 기능이 없어도 시각적인 돋보임을 위해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범죄행위의 공범이라는 뜻의 악세사리 (영어발음은 억세쏘리)는 현장에 없었어도 범죄가 일어나는 데 한 몫을 했으면 공범이라는 뜻입니다. 복면을 하고 은행에서 돈을 훔친 사람 뿐 아니라 은행에 들어가지 않았어도 차를 운전한 사람도 은행강도 죄로 법정에 같이 섭니다. 공범죄 accessory to a crime 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이런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이런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무엇인지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정작 예레미야가 전하면 싸그리 부인합니다. ‘너희는 이집트로 가서 살면 안 된다고’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43:2) 요하난의 성난 대꾸입니다. 이집트로 가겠다고 마음을 정했으면서 기도는 형식적으로 해 본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이렇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 없는 일, 더 나아가 좋아하시지 않을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 이름을 붙여 장식품 악세사리를 넘어 ‘공범’으로까지 만드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묵상은 고집센 백성이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에 예레미야와 바룩이 함께 가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패망의 길인줄 알면서도 예레미야는 함께 합니다. 현대 범죄학 용어로는 ‘스톡홀름 신드롬’인 것 같습니다. 납치 당해 구금된 피해자가 자기 가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협조도 하게 되는 심리현상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답니다. 예레미야는 평생 자기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한 백성인데도 거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 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당하려고 합니다.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느냐고 울부짖던 소리를 다시 듣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당신에게 속았다고 기도하던 선지자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청년 때 -나는 너무 어려서 말할 줄을 모릅니다- 에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께 그저 순종하며 살아온 예레미야인데 이집트로 가지 말라는 명령을 자기도 어깁니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쉬운 신앙, 편안한 세상, 만족스러운 삶…이런 것에 흠뻑 취해 있는 내 마음을 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을 내 마음대로 여기에도 달고, 저기에도 붙이면서 살았습니다. 내 뜻대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불평하고 투정했습니다. 내 세계 밖의 일엔 관심도 책임도 없이 살았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의 마음으로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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