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40장: 지는 싸움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39장 11-14절에 예레미야가 느부갓네살의 명령으로 석방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40장은 그 때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자유민이 된 예레미야는 혼란 중에 바빌로니아로 끌려가는 포로들 가운데 섞이게 된다. 느부사라단은 그 사실을 알고 포로들의 집결지였던 라마로 가서 그를 찾아낸다(1절). 느부사라단은 그에게, 바빌로니아로 같이 가든지, 유다 땅에 남든지, 좋을 대로 택하라고 한다(2-4절). 이 말을 듣고 예레미야는 잠시 주저한다. 그러자 느부사라단은, 만일 유다 땅에 남게 되면 총독으로 임명된 그달리야가 그를 돌보아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5절). 그 말을 듣고 예레미야는 유다 땅으로 돌아가 그달리야를 찾아갔고, 남겨진 동족과 더불어 살았다(6절). 

한편, 들판으로 피신한 유다의 군지휘관들은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임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스바로 찾아온다(7-8절). 그달리야는 그들에게, 바빌로니아의 속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면서 유다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라고 권한다(9-10절). 전쟁을 피하여 주변 나라들로 피신했던 유대인들도 그달리야가 총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땅으로 돌아온다(11-12절). 

얼마가 지난 후, 군지휘관들이 그달리야에게 찾아와 암몬 왕이 이스마엘을 통해 그를 암살하려 한다는 정보를 전해 준다. 그달리야가 그 정보를 믿지 않았다. 나중에 군지휘관 중 하나인 요하난이 총독을 따로 찾아 와 이스마엘을 처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13-15절).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면 요하난을 말린다(16절).

묵상:

예레미야서를 편집한 저자는 그달리야를 소개할 때마다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라고 씁니다. 그의 할아버지 사반은 서기관으로서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을 주도한 사람입니다(왕하 22장). 그의 아버지 아히감은 여호야김 왕 시대에 예레미야가 백성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을 때 보호해 주었습니다(26:24). 그달리야의 가문은 3대에 걸쳐 고위 관직에서 왕을 보좌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고관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했던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에 속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느부갓네살 왕은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그가 예레미야의 예언을 신뢰하고 바빌로니아에 대해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달리야는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를 심판하고 유다 백성을 돌아오게 할 때까지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정치적인 지도자가 되기에는 너무 착하고 진실했습니다. 군지휘관들이 이스마엘에 대해 거듭 경고했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 같은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총독이 된지 2개월 만에 암살 당했고(41장), 그를 신뢰하여 모여 들었던 백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현실 사회에서 그달리야와 같이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고 고난 당하는 것을 봅니다. 양심에 따라 바르게, 정직하게,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순진하다고 무시 당하고, 불의와 거짓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삼천 년 전에 아삽이 고백했던 그 모순된 현실(시 73편)이 지금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기를 힘쓰는 것은 그것 자체로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기도: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저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주님도 그러셨던 것처럼, 저희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자주 힘에 겹습니다. 다들 제 멋대로 춤추며 사는 세상에서 저희만 십자가에 눌려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일에 부름 받았다는 사실로 저희의 마음을 뜨겁게 하셔서, “지는 싸움”을 잘 싸우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40장: 지는 싸움”

  1. billkim9707 Avatar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에게 핍박이 따른다는 말씀이 기억 나고,누명을 쓰시고 죽으신 주님이 부활 하심으로 승리하신 십자가의 사건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은 세상이 추구하는 부귀영화와 승승장구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앞에가시는 주님을 따르는것이 진정한 승리인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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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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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많이 낀 아침입니다. 비소식도 있네요. 늦은 시간까지 좀 애매하게 일을 계속했다니 잠을 잘 자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토요일.

    예레미야 40장. 다윗 왕조의 비극적 엔딩과 예루살렘 파괴. 이를 달성한 바빌론군은 현지인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운 뒤 집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왕궁과 성전의 기물 등은 전리품으로 챙기고 엘리트, 지식인, 기술자는 묶어서 데려가지요.

    바빌론 왕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의 땅을 뺏앗거나 직접 지배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AI에게 물어보니 바벨론은 모압, 암몬, 두로 시돈 등 인근 국가에는 왕조를 존속시키면서 조공으로 통제하는 간접 지배 정책을 썼다고 하네요.

    예레미야의 간언대로 항복하는 것만이 자기를 보존하는 유일한 방책이 아니었을지. 무엇을 위해 그리 싸우고 그리도 처절히 멸망했는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 심판은 어리석음과 고집으로 인해 단죄받을 족속이 스스로 멸망 버튼을 누르는 형태로 집행된 것일까요? 그 단추를 누르지 말라는 대언의 말씀을 끝까지 믿지 않은 이들.

    구름 뒤로 점점 하늘이 밝아옵니다. 삶의 쉼표를 잘 찍는 주말이 되기를. 생명을 주신 주.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또 한번 기회의 문으로 열어두신 분을 찬양. 본질상 진노의 자녀, 불순종의 자녀인 나. 황무한 땅에서 유리하던 자에게 선한 목자로 오신 이를 찬양. 그 분의 사랑 안에서 거친 땅을 일궈 밭을 만들고 포도원으로 가꾸어 가는 하루,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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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은 원죄로 삼천년 전이나 현세나 변함없는 악한 권력자들 속에서 그 달리아처럼 착하고 백성들을 귀하게 여기는 정치인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야욕을 채우는 인간들에게 당하는 사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 예수님처럼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당하셨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어떤 고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품격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여정이 되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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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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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묵상이 늦어졌습니다. 큰 손녀가 학군내 중학교 (3개)와 고등학교 (1개)가 함께 참가하는 동네 마칭밴드 퍼레이드에 처음으로 나간다길래 가게문을 여는 시간까지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아침 일찍 길을 떠났습니다. 중학교에 가서 과외활동으로 선택한 것이 컬러가드 (color guard-깃발 응원팀, 기수병) 라서 손녀와 파트너는 학교기 (school flag) 를 들고 맨 앞에서 행진을 했습니다. 몇 분 밖에 되지 않는 마칭을 보겠다고 45분 운전해 달려가는건 현명하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지만,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겁니다. 손녀들 행사에는 우리가 가도 되겠는지 혹은 아닌지를 잘 파악해서, 갈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면 함께 하자는게 우리 부부의 생각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은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합니다. 체면이 서는 일인지 우습게 보일 일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가 아니라 ‘너가 좋다면 나도 좋아’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픔과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사랑으로 하는게 아니라 계산에 맞춰 하는 일이라 그럴겁니다. 그러나 살면서 해야 하는 일들을 전부 사랑으로 하기란 어렵습니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의 good will 를 가지고 하는 것은 가능할겁니다. 계산이나 자기보호, 욕심 같은 것 보다 선의를 먼저 앞세우면 세상은 좀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선의는 God’s will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빛이고 선이기에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실까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선의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에 남은 백성을 통치하라고 세운 그다랴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다랴의 선의는 실패합니다. 악을 도모하는 이스마엘을 경계하라고 말해주지만 그다랴는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나라-는 사랑과 선의가 늘 이기고 공의와 평등이 늘 이루어지는 곳이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부터 인류애-사랑-연민 이런 것을 묵상합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 그의 입장에 서 보는 것, 욕심을 내지 않을 때 생기는 룸 room, 여유 이런 것들을 묵상합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이 좋습니다. 지는 싸움. 예수께서 이미 다 이기셨기에 우리는 지는 싸움 좀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지는게 이기는거다’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기라도 할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악착 같지 못하고 늘 지기만 하는 자기 처지를 그렇게라도 위로하려고 한 말인지 모르지만, 지는게 이기는거니 져주고 살라는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지는 싸움의 신비를 깨우쳐 평화 속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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