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37장: 주저주저 하면서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 아들 고니야(여호야긴)가 왕위에 올랐으나, 석달 만에 느부갓네살 왕은 그를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고, 요시야의 아들이며 여호야김의 형제인 시드기야를 왕위에 세운다(1절). 36장 30절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시드기야는 꼭두각시 왕으로서 바빌로니아에 충성해야 했는데,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로니아로부터 벗어나려 했다(2절). 

그는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유다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3절).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던 바빌로니아 군대가 후방에서 공격해 오는 이집트 군대를 막기 위해 잠시 퇴각했을 때였다(4-5절). 왕이 보낸 사신들 앞에서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를 도우려고 출동한 이집트 군대는 바빌로니아 군에게 패하여 돌아갈 것이고, 바빌로니아 군대는 다시 예루살렘을 공략하여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6-10절).

그 즈음에 예레미야는 하나멜에게 사들인 땅(32:1-15)의 등기 이전을 위해 고향 아나돗으로 향한다(11-12절). 그가 베냐민 지파의 영토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경비경 하나가 바빌로니아로 투항하러 가는 줄 알고 예레미야를 체포한다(13절). 예레미야가 항변했지만 그는 곧이듣지 않았다. 결국 예레미야는 서기관 요나단의 지하 감옥에 갇힌다(14-16절).

얼마가 지난 후,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불러 주님께로부터 받은 예언이 없는지 묻는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을 받았다고 답한 후(17절), 자신을 요나단의 지하 감옥으로 돌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18-20절). 시드기야 왕은 그를 근위대 뜰에 옮겨 구금 상태에서 지내게 한다. 왕은 고립된 예루살렘 성 안에 양식이 고갈될 때까지 예레미야에게 매일 빵 한 덩이씩을 주도록 명령한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양식을 공급해준 것이다(21절). 

묵상:

예레미야를 대하는 시드기야의 태도는 그의 형 여호아김 보다 호의적으로 보입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지만,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지하 감옥에서 꺼내어 자신의 근위대 뜰에 구금 시킵니다. 자유인으로 풀어 줄 용기는 없었고, 지하 감옥에서 죽도록 내버려 둘 만큼 완악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위기를 당했을 때 예레미야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또한 예레미야를 따로 불러서 혹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전하자 그를 다시 물리칩니다. 인간적으로 비교해 보자면 시드기야가 여호야김 보다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한 사람은 대놓고 거부했고, 한 사람은 주저주저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예레미야를 대하는 시드기야의 태도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드기야처럼 위기를 당하여 도와 달라고 기도 하기도 하고, 혹시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 까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 말씀에 순종 하기는 원치 않습니다. 나는 나대로 살고, 하나님은 멀리서 지켜 보고 있다가 내가 필요할 때마다 도와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그분의 말씀이 거북하고 불편하고 손해 되는 것이라 해도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시드기야입니다. 주님을 대놓고 외면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우직하게 순종하기는 싫어하는, 하나님을 저희의 시종처럼 부리고 싶어하는 교활함이 저희에게 있습니다. 저희는 목이 곧고 무릎이 굳어버린 족속입니다. 주님, 저희의 목을 꺾어 주시고 무릎을 부러뜨려 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37장: 주저주저 하면서”

  1. gachi049 Avatar
    gachi049

    시드기야 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듣기좋은 말만을 원하는 교만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인간의 속성이 아직도 마음속에 가득하고 교만하고 이타적이지 사랑이 부족합니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족하고 교만함을 날마다 말씀으로 채워 주시고 꺾어 주심으로 신실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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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ull9707 Avatar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것을 알지만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것 같을때가 대부분이어서 고민할때가 자주있는 형편입니다.

    하늘의 지혜와 용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확실히 분별하고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손해와 위험을 각오 하면서도 순종 하는것이 축복인것을 깨닫고 사는 삶으로 인생을 마감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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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운 수요일 아침입니다.

    예레미야 37장. 기회의 편지를 난로불에 태운 여호야김. 곧바로 바벨론의 침공을 맞은 그의 최후는 어떠했는지, 예레미야의 저주 예언이 과연 적중했는지는 모호하다고 하지요? 어쨌든 스스로 너무 높았고 또 강퍅했던 그가 왕좌에서 비참하게 끌려내려진 것은 팩트인 듯 합니다. 왕좌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에게 3개월 동안 머문 후 동생인 시드기야에게 가지요. 37장은 이 내용들을 건너뛰고 시드기야 시대, 즉 바벨론 3차 침공기의 이야기로 넘어가네요. 예레미야가 왜 시드기야의 궁에 감금되게 되었는가에 대한 배경 설명이 이 장의 주제.

    처음부터 꼭두각시 왕으로 앉혀진 시드기야. 그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에굽을 믿고 바벨론에 반기를 들어보려는 시드기야에게 선지자는 아무 것도 하지말라고 강권합니다. 시드기야와 유다는 결국 무모한 항전을 택했고 그 결과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완전 파괴. 결국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기 마련인지요?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생명을 허락하시고 일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 삶의 보금자리와 사랑할 사람들로 인해.

    괴로움과 슬픔이 많은 광야같은 인생. 늘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주의 사랑과 나를 위한 완전한 계획이 있음을 믿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헤메어도 다시 길을 찾는 인생, 삶 자체가 주께 드리는 예배와 노래가 되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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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갈팡질팡, 오락가락, 우왕좌왕, 머뭇머뭇, 우유부단, 어정쩡, 어물쩍…오늘 묵상 제목이 ‘주저주저 하면서’ 입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나, 하기 싫은 일을 앞에 두었을 때 보이는 모습이 주저주저하는 모습입니다. 시드기야 왕의 행동이 이랬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받아 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바빌로니아에 항복해야 하나 맞서서 저항해야 하나. 주저하는 왕의 모습을 상상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수많은 밤을 주저주저 하면서, 오락가락 하면서 지새워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뭔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칼 같이 원하는 바를 결정할 수 있는 성격이 있는 것처럼 뭔가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라 주저하는 성격도 있습니다. 결정이란 선택과 포기를 동시에 한다는 뜻입니다. 가게에서 종업원 한 명을 새로 뽑을 때 서 너 명 이상을 만나 대화를 해봅니다. 한 사람 채용과 세 명 포기가 동시에 일어난 셈입니다. 식당의 음식 주문 같이 ‘쉬운’ 결정도 그렇습니다. 한 가지 음식을 주문하면 메뉴에 있는 다른 20개, 30개 음식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왕좌왕하고 주저주저 하는 상태에서 나와 보려고 생각해 내는 해결 방법이 양다리 걸치기나 두 집 살림입니다. 부정적인 느낌부터 듭니다. 떳떳하지 않고 자기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로 보이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하기 보다 그 때 그 때 좋아보이는 쪽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레갑인들은 오직 한 길 즉 조상 요나답이 명령한 것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이스라엘은 여기저기에 신당을 짓고 여러 우상을 만들어 절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두 가지 죄를 지었으니, 생명의 샘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일과 스스로를 위해 우물을 판 일 (2:13) 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드기야는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 무서웠을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도 고민했습니다. 자기 판단으론 예수를 풀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혹시라도 자기가 다칠까 망설였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은 사도신경에 영구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우유부단이 타인의 고통을 야기하는 길로 가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인지 모릅니다. 우왕좌왕하고 마음이 오락가락 할 때는 그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나의 마음을 흩어지게 하는 것들로 부터 지켜 주세요. 붙잡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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