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35장: 구별됨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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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여호야김 왕(1절)은 유다의 마지막 세 번째 임금이다. 그러니까 35장에 서술된 이야기는 34장의 시드기야(마지막 임금) 시대의 사건보다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레갑 사람들을 찾아 성전의 한 방으로 데리고 와서 포도주를 마시게 해 보라고 하신다(2절). “레갑 사람”은 모세의 장인의 후손으로서(대상 2:55), 가나안 정착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으로 편입된 사람들이다. 그들 중 요나답의 후손들은 조상의 명령에 따라 유목 생활을 했고, 포도주를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사는 레갑 사람들을 모두 불러 성전의 한 방으로 안내하고 포도주를 권한다(3-5절). 그러자 그들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정한 가문의 전통에 따라 포도주를 마실 수 없다고 사양한다. 그들은 요나답의 명령대로 2백 년이 넘도록 포도주를 금하고 유목 생활을 해 왔다(6-10절). 그들이 지금 예루살렘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은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인해 더 이상 유목 생활이 불가능 해졌기 때문이다(11절).

그 때,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다(12절). 주님은, 레갑의 후손들은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2백 년이 넘도록 철저히 지키며 살고 있는데,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은 주님이 주신 명령을 듣지 않았다고 책망하신다(13-14절). 예언자들을 보내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을 누리는 길이라고 거듭 알려 주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15절). 유다 백성은 레갑의 자손들이 조상 요나답을 존중하는 것 만큼도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님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예고한 재앙을 모두 그대로 내리겠다고 하신다(16-17절). 또한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레갑 사람들에게,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들의 후손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다(18-19절).

묵상:

모세의 장인은 겐족으로서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모세의 장인을 통해 겐족의 일부가 이스라엘 백성과 섞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그들과 함께 노예 생활을 하던 다른 소수 인종들이 따라 나와 이스라엘 백성에 편입되었습니다. 

겐족의 후손 중 한 사람이 레갑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레갑의 자손들 중 요나답은 겐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후손들에게 겐족의 전통을 따라 유목 생활을 하도록 명령 했고, 포도주 마시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놀랍게도, 요나답의 후손들은 2백 년이 넘도록 그 전통을 따라 살았습니다. 땅을 사서 정착하여 편안하게 살고 싶은 유혹과 끌리는 대로 먹고 마시고 깊은 유혹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제사장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라는 뜻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여러가지 음식 규정은 위생을 위한 것도, 건강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라는 뜻이었습니다. ‘거룩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여라”(레 11:44)라는 말씀은 이 땅에서 구별되게 살라는 뜻입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구별됨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의 나라로서 구별되게 살기보다는 이방 민족처럼 살기를 택했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조상의 유언을 따라 2백 년이 넘도록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겐족의 정체성을 지켜 왔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의 유언보다 더 무거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상의 유언만도 못하게 취급한 셈입니다. 

기도:

저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불러내신 주님,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빌 2:15)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35장: 구별됨의 명령”

  1. bull9707 Avatar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의 자녀가 됐으니 마땅히 구별되는 천국 시민으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것을 알면서도 자주 너머집니다.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정죄하는 위선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어린 양을 항상 기억하며 나의 생각과 세계관이 다를 지라도 품어주고 용납 하며 승리의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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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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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바람이 차갑게 일렁거리지만 햇살은 따스합니다. 늘 피로을 느끼는 월요일 아침.

    예레미야 35장. 갑자기 이야기가 뒤로 돌아가며 다뤄지는 바벨론 1차 침공기의 작은 에피소드. 농경민으로의 정착을 거부하고 유목민의 삶을 200년 동안 고집한 레갑 가문.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집을 짓지 않으며 과수원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저 조상의 유훈을 지키려고 젓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주는 모든 번영의 혜택을 통째로 거부한 고집이 놀랍고 좀 생경할 뿐.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칭찬하며 이 가문에서 하나님을 섬길 이가 끊이지 않을 것을 약속하세요. 왜? 그저 조상의 유훈을 외골수로 따른 것이 왜 칭찬받을 일인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 것 같아요. 순종과 구별이 축복을 가져온다는 일반적인 교훈을 담은 일화?

    이제 또 한 주를 시작합니다. 감사의 계절. 오늘 아침도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하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임을 기억하기를. 풍요와 번영에서 스스로를 배제함으로 타락에서도 자기를 지킬 수 있었을 레겝 사람들. 번영의 땅 미국에서 남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구별되는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 노래가 나의 간증이 되고, 나의 찬송이 되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같은 축복을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주시고 레갭 가문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 가족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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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세상에 인종과 종교, 국가와 풍습, 언어와 문화가 다양하게 있습니다. 다양성은 창조주의 뜻이고 창조의 법칙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종으로 묶어서 보든, 개체 단위의 개인으로 보든 타자와 구별되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의 유사성도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어렸을 때는 세상이 왜 단일 인종과 한가지 종교, 한가지 언어, 똑같은 풍습, 동일한 문화와 하나의 거대 국가로 되어 있지 않은지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답을 할 수 없지만 생명체란 변화와 성장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과, 인간의 역사는 변화와 성장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까지는 답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 가운데 인간이 가장 힘이 세거나 오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처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인간은 지구를 정복하고 다스리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물진화론은 생물의 다양한 형태는 유전적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해 온 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한정된 자원 환경에서 살아남는 개체가 유전적으로 번식하며 적응력이 높은 개체가 자손에게 유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은 진화의 주체가 생물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 즉 살아 남으려는 생존의지는 유전자의 유전물질이라는 주장을 담은 말이며, 리차드 도킨스의 책 ‘The Selfish Gene – 이기적 유전자’ 제목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뜻은 도덕적으로 이기적이다, 이타적이다가 아니라 생존과 번식의 의지/명령/목적 하나 만 갖고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오늘 본문을 묵상하니 사람은 누구나 일평생 살면서 씨름하는 한가지가 있다는걸 보게 됩니다. 사는 목적, 삶의 보람, 인생의 뜻, ‘나’의 발견…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사람은 평생 한가지 그 일을 하느라 수고하다 갑니다. 그 일은 우리의 얼굴이 다르듯 다 다르면서, 또 사람이란 다 같듯이 다 같기도 합니다. 다른 점을 열거하면 각자의 성격과 재능과 환경을 따라 다 다른 것이 되고, 같은 점을 중심으로 찾아보면 살아남기-자손에게 전달하기 그것 하나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수고입니다. 전도서에서 ‘헛되다’는건 그것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애쓰다 죽는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서 16:33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진화와 진보를 넘어 선재하는 은혜, 선행적인 은총 prevenient grac 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레갑인의 전통 수호를 칭찬하십니다. 조상의 명령을 철저히 준수하는 레갑인이 있는가 하면, 예언자들을 거듭해서 보내어 악한 짓을 멈추라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나의 ‘이기심’이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하는 이기심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수고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기 때문에 하는 수고였으면 좋겠습니다. 한평생 신앙인으로 살았는데 가고 난 자리에 무엇이 남을 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주님을 사랑했다고, 평생 주를 기쁘게 하려고 수고했다고 기억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자생존은 영어로 survival of the fittest 입니다. 적자 (fittest) 라는 말은 최고 강자나 능력자라는 뜻이 아니라 환경에 잘 맞추는 (fit)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환경이신 하나님, 당신의 뜻으로 정하신 내 삶의 경계에 맞추어 가는 수고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라. 최선을 다해 너의 삶을 가꾸라.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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