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32장: 절망의 때에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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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시드기야 제 십년(1절)에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한다(주전 587년). 바빌로니아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시드기야는 예루살렘 성문을 모두 걸어잠그고 버텼고, 바빌로니아는 성을 에워싸 고립 작전을 펼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드기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다는 이유로 예레미야를 감금한다(2-5절).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한다. 사촌 지간인 하나멜이 와서 아나돗(예레미야의 고향)에 있는 토지를 사라고 하면, 그대로 하라고 하신다(6-8절).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멜이 와서 토지를 사라고 제안했고, 예레미야는 주님의 명령대로 그 밭을 산다. 그는 근위대의 뜰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매매계약서를 바룩에게 맡긴다(9-13절). 그는 바룩에게, 그 계약서를 옹기그릇에 담아 보관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14-15절). 

주님의 명령대로 행한 다음 예레미야는 기도 드린다(16절). 먼저 그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모든 이들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고, 은혜가 충만하신 분임을 고백한다(17-19절). 그런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일을 회고하며 찬양한다(20-22절). 그런 은혜를 입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리고 그분의 율법을 따라 살지 않은 결과로 바빌로니아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23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주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24절). 이렇게 말한 다음, 이런 상황에서 밭을 사라고 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주님께 여쭌다(25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바빌로니아를 통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것이 주님의 계획임을 분명히 하신다(26-29절).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상숭배로 갚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온갖 죄악에 빠져서 역겨운 일들이 나라에 가득해졌다(30-35절). 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하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그들을 다시 회복하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영원한 언약”을 맺고 그들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36-41절). 그 때가 올 것을 알리기 위해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땅을 사두라고 명령한 것이다. 황폐하게 된 그 땅은 반드시 다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42-44절).

묵상:

당시 예루살렘은 파선하여 침몰하고 있는 배와 같았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고립 작전으로 인해 식량이 떨어지자 여인들이 아기를 삶아 먹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사촌이 내 놓은 토지를 사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영토가 바빌로니아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서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 때는 땅을 살 때가 아니라 팔 때였습니다.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땅을 사서 문서를 옹기그릇에 담아 보관하라 하십니다. 주님은 이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하실 것이라는 당신의 약속을 확증해 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바울 사도의 이야기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끌려 갈 때, 지중해에서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납니다. 그 폭풍으로 인해 모두가 지쳐갈 때, 바울은 그 배에 탄 사람들 중에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습니다. 그 계시를 받고 바울 사도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고 기력을 차리라고 말합니다. 뱃멀미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던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 가운데 서서 음식을 먹습니다. 멀미로 인해 음식을 먹기 힘들었지만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행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음식을 먹었고, 배가 육지 가까운 곳에서 파선했을 때 모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행 27장).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눈으로 시대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믿음과 희망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선각자’라 부릅니다. 

기도: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기를 원합니다. 현실이 주는 희망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희망을 보기 원합니다. 현실이 절망스러울 때조차 주님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 원합니다. 그 희망으로 절망한 사람들을 일으켜 줄 수 있기 원합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2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32장: 절망의 때에 희망으로”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며칠 전 본문은 예레미야가 바빌로니아의 유배 백성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습니다. 끌려간 곳에 머물러 살면서 집과 과수원을 짓고, 아들 딸 혼인도 시켜 자식들을 낳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예레미야가 고향의 밭을 사는 계약을 하는 내용입니다. 두 본문은 서로를 비추어 주는데 같은 그림을 보여 줍니다. 한 거울은 바빌로니아의 밭을 사는 그림이고 다른 거울은 유다의 밭을 사는 그림입니다. 안심이 됩니다. 확신 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끝날 것을 생각하니 감사가 넘칩니다. 버림을 받은 것 같았는데, 내팽겨쳐 다 깨져버린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실 날을 꿈꾸게 됩니다. 무릎이 꺾여 주저앉아 있었는데 일어날 힘이 생기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가 사촌에게서 집안의 밭을 사는 일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희망의 힘이 이렇게 셉니다. 땅 문서를 주고 받는 일이, ‘부동산 계약’이 성사되는 일이 이렇게 큰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새 언약이 예레미야의 계약을 통해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됩니다. 희망과 회복의 계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만큼 만 알 뿐입니다. 그마저도 모르겠는 때가 많습니다. 선지자들이 오랫동안 말하고 가르쳤어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37절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나는 너무나 분하고 노여워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그 땅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보아라. 이제는 내가 쫓아낸 모든 땅에서 그들을 불러 모아 이곳으로 데려오겠다. 그들은 평화와 안정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악한 짓만 일삼던 백성에게 진노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이방의 왕에게 넘기고 전쟁과 굶주림과 질병 속으로 던지셨는데, ‘그러나 보아라. 이제는 이곳으로 데려 오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십니다. 진노에서 연민으로 바뀝니다. 왜, 어떻게, 무엇으로 인해…우리는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처럼 갈등과 고민을 하시는지요. 하나님도 우리처럼 기쁨과 우울의 사이클을 느끼시는지요. 그런 것 다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희망인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부터 이스라엘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까지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을 사랑하는 창조주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의 은혜와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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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ull9707 Avatar

    저의 생각과 환경에 합당하지 않더라도 말씀 순종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저희들의 소망을 살아계신 사랑과 구원의 주님께두고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사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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