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전하는 예언을 들은 바스훌은 그를 붙들어 매질을 하고 하룻 밤 동안 구금을 한다(1-2절). 다음 날, 바스훌이 그를 풀어주자, 예레미야는 바스훌이 “마골밋사빕”(‘사방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면서, 유다가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며, 그와 그의 친구들이 포로로 끌려가 바빌로니아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3-6절). 이 예언으로 인해 그는 바스훌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더욱 심한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바스훌에게 심한 고초를 겪고 쫓겨난 후, 예레미야는 또 다시 깊은 절망감에 빠져서 하나님 앞에 절규를 쏟아 놓는다. 주님에게 속아서 예언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탄한다(7-8절). 입을 다물고 침묵 하려 하지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속에서 불타올라 그럴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그를 넘어 뜨리려고 기회만 노린다(9-10절).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밖에 의지할 대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아뢰었으니, 주님께서 자신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한다(11-12절).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으로 믿고 찬양의 기도를 올린다(13절).
하지만 이미 절망의 바닥에 내던져진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의 고백은 빈껍데기처럼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신을 저주하는 독백을 한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생일이 축일이 아니라 저주받는 날이라고 말한다(14-15절). 자신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해 준 사람까지 소환하여 저주를 퍼붓는다(16절). 그는 차라리 모태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17-18절).
묵상:
참 예언자들이 모두 그랬지만, 예레미야는 특별히 혹독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했던 시기가 유다의 패망기였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예언 방식 때문에 그렇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유다 백성이 받아 들이기 힘든 예언을 전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매우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성전이 폐허가 될 것이라고 외쳤으니, 그를 곱게 본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심하고 침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말씀이 속에서 불처럼 끓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입을 열어 예언을 전하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혐오와 저주와 악담과 살해의 위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다 보니, 그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 감정은 점점 더 심해져 기도 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하고 찬양을 드려 보지만,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도 저도 안 되니,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대놓고 저주와 악담을 쏟아 놓습니다. 유다 백성 앞에서는 불을 쏟아 놓는 것처럼 예언을 선포 했던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가혹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섰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연약 해졌기에 사람들 앞에서는 강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절규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를 품고 함께 울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품에 모든 것을 쏟아 놓고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 사람들 앞에 서서 대언했을 것입니다.
기도:
주님을 따른다는 것, 주님 편에 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군요? 이렇게 고난 받으면서도 주님 품을 떠날 수 없는 거군요? 죽어도 주님 안에서 죽어야 하는 거군요? 그렇게 하기에는 저희가 너무 약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아십니다. 하오니 저희의 연약함을 받으시어 주님의 강함을 드러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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