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20장: 자신을 저주하는 기도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전하는 예언을 들은 바스훌은 그를 붙들어 매질을 하고 하룻 밤 동안 구금을 한다(1-2절). 다음 날, 바스훌이 그를 풀어주자, 예레미야는 바스훌이 “마골밋사빕”(‘사방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면서, 유다가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며, 그와 그의 친구들이 포로로 끌려가 바빌로니아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3-6절). 이 예언으로 인해 그는 바스훌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더욱 심한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바스훌에게 심한 고초를 겪고 쫓겨난 후, 예레미야는 또 다시 깊은 절망감에 빠져서 하나님 앞에 절규를 쏟아 놓는다. 주님에게 속아서 예언자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로 인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탄한다(7-8절). 입을 다물고 침묵 하려 하지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속에서 불타올라 그럴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그를 넘어 뜨리려고 기회만 노린다(9-10절).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밖에 의지할 대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아뢰었으니, 주님께서 자신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한다(11-12절).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으로 믿고 찬양의 기도를 올린다(13절). 

하지만 이미 절망의 바닥에 내던져진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의 고백은 빈껍데기처럼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신을 저주하는 독백을 한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생일이 축일이 아니라 저주받는 날이라고 말한다(14-15절). 자신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해 준 사람까지 소환하여 저주를 퍼붓는다(16절). 그는 차라리 모태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17-18절).

묵상:

참 예언자들이 모두 그랬지만, 예레미야는 특별히 혹독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했던 시기가 유다의 패망기였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예언 방식 때문에 그렇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유다 백성이 받아 들이기 힘든 예언을 전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매우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성전이 폐허가 될 것이라고 외쳤으니, 그를 곱게 본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심하고 침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말씀이 속에서 불처럼 끓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입을 열어 예언을 전하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혐오와 저주와 악담과 살해의 위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다 보니, 그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 감정은 점점 더 심해져 기도 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믿음을 고백하고 찬양을 드려 보지만,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도 저도 안 되니,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대놓고 저주와 악담을 쏟아 놓습니다. 유다 백성 앞에서는 불을 쏟아 놓는 것처럼 예언을 선포 했던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가혹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섰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연약 해졌기에 사람들 앞에서는 강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절규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를 품고 함께 울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품에 모든 것을 쏟아 놓고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 사람들 앞에 서서 대언했을 것입니다. 

기도:

주님을 따른다는 것, 주님 편에 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군요? 이렇게 고난 받으면서도 주님 품을 떠날 수 없는 거군요? 죽어도 주님 안에서 죽어야 하는 거군요? 그렇게 하기에는 저희가 너무 약하다는 사실을, 주님은 아십니다. 하오니 저희의 연약함을 받으시어 주님의 강함을 드러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20장: 자신을 저주하는 기도”

  1. billkim9707 Avatar

    우선 주님의 뜻과 계획을 제대로 바르게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죄악과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 주님의 경고를 전할수있는 결단과 용기를 사귐의 소리 식구에게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세상으로 부터 억압받고 조롱을 받을지라도 사회와 자신을 저주 하지않고 원수도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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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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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비가 오락가락하고 어두운 목요일 아침입니다. 그래도 온도가 그리 낮지는 않아요.

    예레미야 20장. 하나님에 대한 거친 원망의 글로 유명하다는. 기쁨의 노래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13절 (Sing to the Lord. Give praise to the Lord)을 제외한 모든 문장이 누군가에 대한 저주 (성전 총감독 바스홀-> 자신의 출산 소식을 알렸던 사람-> 자기자신), 극도의 비관 (why did I ever come out of the womb),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날 것 그래로의 원망 (you deceived me)인 것 같아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을 선포하는 것. 아무도 회개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 천국이 아닌 지옥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 과연 무슨 소용이 있고 유익이 있을까요? 알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그 일을 사명으로 믿고 끝까지 행합니다. 주가 명령하시기에.

    메트로 창으로 스쳐가는 늦가을 풍광이 가슴에 아립니다. 삶을 주심에 감사. 아직 일할 수 있도록 하심도. 로마의 길과 하늘의 길이 합쳐지기를, 소명의 길이 행복과 안정을 함께 지켜주길
    바라고 기도하죠.

    그렇지만 두 길이 갈라질 때 좁고 험한 길, 사명의 길을 택할 믿음과 용기를 주시길. 누구든지 나를 좇으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신 주. 순종으로 무릎 꿇고 주 앞에서 매일 내가 죽은 하루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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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인생은 별 것일까요, 별 것이 아닐까요. 둘 다지요. 작은 우주가 생겨나는 듯 엄청나고 멋진 일이지만 그 우주는 밤하늘을 수놓는 셀 수 없이 많은 별 중의 하나입니다. ‘별’과 같이 특별한 것이면서 또 별 것 아니게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누구는 크게 애쓰지 않고, 대단한 고생 하지 않고 노년까지 오고, 누구는 참 많이 고생하면서 나이를 먹습니다. 당사자 만이 자기 고통의 무게를 판단할 수 있는거지만, 누가 들어도 너무 괴로왔겠다 싶은 일들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봐도 괴로운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자업자득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요. 가만히 있었으면, 나서지 않았으면 그 정도로 심한 핍박을 받지는 않았으려나요. 그의 예언을 들은 최고 제사장이 그를 문초합니다. 사극에서 보는 극심한 고문을 떠오릅니다. 목이나 발을 고정시키는 틀 (차꼬)에 묶인채 갇혀 있습니다. 옥에서 풀려난 그는 또 외칩니다. 이번에는 더 심한 저주를 합니다. 바스홀 제사장이 어떤 반응을 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전보다 더 가혹한 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20장은 예레미야의 슬픈 고백을 두 개 연이어 기록합니다. ‘주께 속았다’는 꽤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독백으로 시작하는 다섯번째 고백이 나오고, 뒤이어 자기가 태어난 것을 또 한탄하고 저주하는 여섯번째 고백이 있습니다. 글로 정리했으니 이 정도이지, 그의 곁에서 들었다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의 처절한 신세한탄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예루살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인간의 의지가 팽팽하게 맞선 땅입니다. 회개하라-안합니다-인정하라-안합니다-돌이켜라-안합니다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습니다. 돌처럼 굳은 백성의 마음을 선지자가 뚫고 들어가지 못할 것을 모르실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갈등 (순종/불순종)은 곧 백성의 갈등이기도 합니다. 유다가 공동체로 겪게될 심판과 회복의 여정은 선지자로 부름받은 예레미야의 고뇌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을 저주하는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절규를 떠오르게 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버림 받고, 하나님께서도 잊으신 것 같을 때 우리는 무슨 기도를 올릴 수 있겠나요.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사람들은 끝도 없이 비난합니다. 예레미야는 다시 일어나 자기 길을 갑니다. 끝까지 그가 갈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응답일 것입니다. 비록 눈물은 마르지 않고 가슴 가득 슬픔과 애통이 차오르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신다고 예언합니다. 그 뒤에 하나님이 새 일을 하시리라고 예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선포한 것처럼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새 일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 일과 새 역사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새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새 일을 알아보고, 경험하고, 참여하는-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왜 태어났을까 한탄하는 캄캄한 마음 안에 새 소망의 촛불이 켜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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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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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원죄를 터치만하면 터져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김은 물론이고 이에 세뇌된 인간은 걷잡을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하는 세상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갑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잔을 준비하신다고 외치면 세뇌된 권력자들, 강자들, 사이비종교 인들 등이 눈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외치는 자들을 거짓말쟁이라고 외치고 다닐 것입니다. 결국 생명까지 빼앗길 것입니다. 주님. 악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마지막 세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는 마지막 세대의 제사장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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