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8장: 저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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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가라 하신다. 그곳에서 주님은,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내듯, 이스라엘과 여러 민족을 당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토기장이가 어떤 그릇을 만들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꾸어 다른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주님도 심판을 정해 두셨다가 구원하실 수도 있고, 구원을 정해 두셨다가 심판하실 수도 있다(1-10절). 

주님은 유다 백성에게 이 말씀을 전하라고, 예레미야에게 명하신다(11절).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의 예언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려 주신다(12절). 주님은 유다 백성의 죄악이 얼마나 심한지를 말씀하시면서, 결국 심판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신다(13-17절).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그를 죽이려 한다(18절). 예레미야는 깊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께 저주의 기도를 쏟아 놓는다. 그는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유다 백성을 위해 중보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면서, 배은망덕한 그 백성을 심판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는 기도 중에 온갖 악담을 쏟아 놓는다(19-23절).

묵상:

예레미야가 드린 저주의 기도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런 악담을 쏟아놓을 수 있나?’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제사장 출신의 예언자의 입에는 어울리지 않는 저주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보면, 이와 유사한 저주 기도가 여러 편 나옵니다. 시편 109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기도를 대할 때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왜 이런 시편을 성경 안에 포함시켰을까?’라는 질문도 하게 됩니다.

저주 기도가 모범적인 기도라 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자는 ‘착한 아이’로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므로 그분 앞에서 있는 그대로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처럼 누군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다면,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분노가 있을 경우에도, 숨기지 말고 그 감정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상한 마음으로 쏟아놓는 우리의 저주와 악담을 들어 주십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의 아픔은 치유되고 분노는 진정됩니다. 그런 기도를 드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 앞에 원수를 위해 복빌어 주는 기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수록된 기도들은 모범 기도문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터져나온 기도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진실한 기도입니다. 

기도:

주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마다 두 손 들어 항복합니다. 저희의 부족함을 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부족함을 벗고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18장: 저주의 기도”

  1. gachi049 Avatar
    gachi049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들의 마음과 육신을 속속들이 아시니 그분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심을 생각할때 두렵고, 때로는 모든 것을 맡기니 아무 걱정 근심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 아직도 맡기지 못하는 나약하고 부족한 이죄인을 성령께서 늘 동행하심으로 일상이 안식일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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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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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아직도 모든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솔직하지 못하고 저주의 기도를 못하는 위선자 입니다, 토기장이이신 주님,티끌 만도 못한 존재를 마음껏 빚으셔서 기쁘게 쓰임 받는 질그릇이 되기를 원 합니다. 십자가에서 저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기도, 돌 몰매를 맞고 죽어가는 스테반의 기도를 하는 질그릇을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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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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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온도가 30도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바람은 별로 불지 않는 것 같아요. 화요일 아침입니다.

    예레미아 18장. 전반부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의 불가피성에 대한 얘기. 그리고 후반부는 예레미야가 자기를 핍박하는 동족들에게 돌리는 저주 기도에요.

    감정의 배설? 조울증의 증거일까요? 애증의 롤러코스터가 마침내 궤도를 이탈한 것일까요? 마치 흑무당이 살주문을 날리는 듯 날 것 그대로인 끔찍한 저주의 글들.

    메트로를 타고 일하러 갑니다. 오늘도 생명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 가족을 주셔서, 일할 수 있게 하시고 삶의 목적과 사명을 주셔서.

    율법의 끔찍한 저주 아래 있던 자.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던 자를 대속하신 십자가. 그 보혈의 능력으로 매일 씻기우는 하루 하루가 되기를. 허락해 주신 인생의 작은 동산을 에덴으로 가꾸어가길. 열매를 거두는 인생, 후회 없는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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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18장은 두 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앞부분은 그 유명한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이고, 마지막 다섯절은 예레미야의 네번째 불평 -선지자가 계속 ‘불평’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제목-입니다. 예레미야서 1장 1절은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지만, 구절 자체는 ‘예레미야의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같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악인은 왜 망하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느냐 (12장), 어머니는 왜 나를 낳으셔서 온 세계와 더불어 다투고 싸워야 할 사람으로 살게 하느냐 (15장), 주여 나를 고쳐 주시고 구해 주십시오, 나의 원수들에게 재앙의 날이 닥치게 해 주소서 (17장) 등 여러번 탄식과 질문을, 저주의 고백을 아뢰었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여는 하나님의 말씀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입니다. 토기장이의 집에서 선지자는 토기를 빚는 토기장이가 그릇이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진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는 것을 봅니다. 토기장이 는 진흙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그릇을 빚습니다. 선지가가 보는 것이 고스란히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토기장이에 빗대어 가르치시는 이야기는 다음 19장으로 계속 됩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의 목적에 맞게 그릇을 빚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은 그릇은 손으로 허물어 원점으로 가 다시 빚어집니다. 토기장이의 집에서 예레미야는 이것을 목격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달린 것처럼 너희는 내 손에 달려 있다 (6절)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가 못 알아 듣거나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유다 백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린 목숨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을 멈추어 서게 만듭니다. 때가 되면 어떤 나라나 민족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주께서 ‘그러나’ 그 나라 백성이 내 말을 듣고 죄를 뉘우치면 내 마음을 ‘바꾸어’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어떤 나라나 민족을 세우고 심겠다 생각했어도 그 나라가 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악한 짓을 하면 내 마음을 바꾸어 좋은 일을 하려던 계획을 거둬들일 것 (7-10절)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가서 유다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 길과 행실을 바르게 고치라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이 말을 듣고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겠다’고 대답할 것이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도대체 어쩌라는 말씀입니까. 유다의 배반과 불순종도, 뉘우침과 돌아섬도 다 하나님께 달렸다는 뜻입니까.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충돌한다는 뜻입니까. 충돌한다 해도 백전백승 하나님이 이기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후회하셨습니다. 노아 때 홍수를 보내 온 땅이 물에 잠기게 하셨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전부 바다로 집어 던진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멸망하는 인간에게서 ‘등을 돌리고 (17절)’ 돕지 않으십니다. 이어서 나오는 예레미야의 기도는 ‘주여 그러지 마십시요’가 아니라, 그들의 악한 짓을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지워버리지도 마시라 청합니다. 그들이 넘어지게 하시고, 주께서 분노하셨을 때 (화가 머리 끝까지 찼을 때) 그들을 벌하시라고 부탁합니다. 토기장이의 집에서 본 렛슨은 오해할 여지가 없이 명확하지만, 하나님의 논리와 예레미야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지요. 용서가 아니라 심판을,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 무섭고 낯설지요. 예레미야의 기도에는 자기를 해치려는 원수를 없애달라는 개인의 소망과, 하나님을 경멸하는 백성을 심판해 달라는 공인으로서의 염원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선지자가 한 마음으로 저주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무섭게 느껴집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오늘 고민해야 할 질문은, 마음을 바꾸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을 수 있는가입니다. 혹은, 우리에게 맞추어 계획을 바꾸겠다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겠나요.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길을 선택하는 회개자가 될 것인가, 멸망은 없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신의 조롱자가 될 것인가…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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