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2장: 하나님은 과연 의로우신가?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레미야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질문한다. 그는 주님이 항상 옳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가 당하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게 된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악행을 일삼는데, 주님은 그들의 번영을 그대로 보고 계시고, 그분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려는 자신은 고난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짐승과 새와 식물까지 고통을 당한다(1-4절). 

이 질문에 대해 주님은 즉답을 하지 않으시고,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것과 같이 그가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냉대를 당할 것이라는 사실만을 확인하신다(5-6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예레미야에게는 불의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다.

이어서 주님은 독백을 하듯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분은 “내 집”, “내 소유”, “내 백성”이라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신다(7-9절). 주님은 그토록 사랑하던 당신의 백성을 버리실 것이다. 이방 민족들에게 유다 백성을 내어 주어 노략 당하게 하실 것이다(10-13절).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때가 되면,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방 땅에서 구해 내실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이방 민족이라도 주님의 도를 제대로 배우면 주님의 백성 가운데 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방 민족들은 유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후에 버림을 받을 것이다(14-17절).

묵상:

예레미야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후에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신앙적인 회의에 빠지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역사하신다고 보기에 현실이 너무도 부조리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위선과 거짓과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은 승승장구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런 현실을 보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일 존재한다면 현실 세계에서 손을 떼신 것처럼 보입니다. 만일 전능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현실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면, 현실이 그토록 부조리 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번민 가운데서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말로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당장의 현실에 얼굴을 파묻고 질문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거대한 계획을 마음에 품고 일을 만들고 계십니다. 바둑 초보자가 고수들의 대국을 보면서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물을 때, 고수는 하수에게 “두고 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수는 한수 밖에 못 보지만, 고수는 여러 수를 염두에 두고 돌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선의를 믿고 신실하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고전 13:12) 보는 것처럼 환히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기도:

저희도 예레미야와 같은 질문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저희는 세상이 저희 기준대로 움직여지기를 바랍니다. 저희의 기준이 얼마나 편협하고 모순 투성이인지를 모른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저희의 이 교만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의 진실과 정의를 믿고 저희만이라도 진실하고 의롭게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12장: 하나님은 과연 의로우신가?”

  1.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더불어 함께 살라고 하셨는데 세상은 마치 동물의 세계 처럼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눈을 감으시고 계시는지, 묵인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 먼지 같은 인간,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고집과 교만으로 뭉쳐있는 저희들이 먼저 주님의 성품을 닮아 전하고 신실한 백성으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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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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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불공평하고 부조리 투성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신것을 항상 기억하고 끊이지않는 누명과 조롱과 박해를 견디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의 백성이된 저희들을 언젠가는 꼭 회복을 시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감사하며 사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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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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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공기는 차지만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화요일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 형편을 보시는 분. 엘 로이 (El Roi) 여호와를 생각하는 아침이에요.

    오늘 본문 (12장)에는 예레미아의 유명한 질문이 담겨있지요. 하나님이 정말 계시고 선한 분이시며 만유를 다스리신다면 왜 악인이 형통하고 패역한 자들은 편안하게 사는지?

    하나님은 즉답을 주시지 않으세요. 질문을 바꾸어 의인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만 말씀하시지요. 고난이 자녀를 위한 훈련이라는.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말과도 경주하고 요단의 창일한 물을 견디는 강함을 갖기 원하신다는 것.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시작은 그분이 이해와 지식의 대상이 아니시라는 것을 아는 데서 부터라는 것을 기억해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그가 보여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해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 속에서는 우리 각자가 무대의 주인공이고 지나가는 병정 1이나 무수리 2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마치 온 우주에 나하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내게 온전한 사랑 (undivided love)을 주시고 그분의 시간에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 시간과 공간 밖에서 시간과 공간을 통치하시기에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그분에게는 가능하다는 것.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오늘도 일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 생명과 건강, 가족을 주셔서 감사. 내 이해와 지식의 범위 밖에 계신 창조자. 십자가를 통해 증명하신 그 분의 사랑을 믿으며, 그 뜻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오늘, 사랑의 열매를 맺는 그런 인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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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레미야서를 여기까지 읽어 오면서 발견하는 한가지는 우상숭배의 죄가 심판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면서 (1장) 하나님은 ‘유다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지은 우상을 섬기는 악한 짓을 했으므로 내가 그들을 심판하겠다 (1:16)’고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이 때 나이가 20대 중반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자기를 너무 어려서 말할 줄 모른다고 표현하며 부르심을 ‘사양’하는 모습은 예레미야보다 백년 쯤에 앞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서 6장) Here I am, Lord! Send me Lord! 하며 나서는 모습과 완전히 비교됩니다. 농부며 양치기로 살던 아모스는 선지자 집안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북이스라엘 상류층의 부정부패를 고발했습니다. 예배는 열심히 드리면서 사회의 정의가 무너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던 종교권력층의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아모스는 이사야보다 또 한 세기전쯤의 인물이며, 예레미야는 아모스와도 조금 다릅니다. 각각 조금씩 다른 선지자들이지만 공통점은 다가올 심판입니다. 백성을 멸하겠다는 말씀은 어느날 갑자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죄악에 대한 주님의 심판입니다. 예레미야는 우상숭배를 그치고 돌아서라고 외칩니다. 우상숭배의 죄는 유다 땅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50년 전에 므낫세 왕은 친앗시리아 정책을 채택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제국에 멸망 당하는 것을 본 남유다는 므낫세 때에 공식적으로 앗시리아의 속국이 됩니다. 므낫세의 할아버지 아하즈는 앗시리아의 왕을 만나러 다마스쿠스로 갔다가 바알신전을 보게 됩니다. 그림으로 신전의 모양을 스케치한 뒤에 예루살렘 성전에 그대로 지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 때부터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바알의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는겁니다. 바알은 만신의 신입니다. 바알이 들어오면서 그 밑의 잡신들이 다 들어옵니다. 온갖 이방신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여호와와 함께, 나란히 경배를 받는 기절초풍할 일이 오래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방신 경배와 제의가 일으켰을 문란함과 혼란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구원을 맛보자마자 곁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약소국의 입장에서 마지못해 취한 수용의 수준이라고 보기엔 너무 적극적이고 너무 강력한 숭배입니다. 한 집에 여러 명의 아내나 여러 명의 남편이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드는 역겨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실로 오래 참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이방신들을 열심히 모시면서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백성 앞에서 너희는 이제 끝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괴로운 마음으로 아뢰는 자기 질문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악을 그냥 두고 보시는가. 왜 잘못하는 인간들을 제 때 치우시지 않는가, 아니 치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 땅에서 잘 살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 갖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기대했던 답이 아닙니다. 악인이 잘되는거, 악이 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말라는 답을 하십니다. 마음에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과 달리기 경주하면서 피곤하다고 하면, 말들과는 어떻게 달리겠느냐고 하십니다. 안전한 땅에서 넘어지면 덤불이 무성한 데는 어찌 걷겠느냐고 답하십니다. 혹 떼러 갔다 혹 붙여 온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더 어려운 일들, 더 힘든 경기와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어떤 면에선 악인이 이 땅에서 이루는 성공과 행복이 하나님의 품에서 누릴 평안과 기쁨에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뜻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우직하게 너의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론 우리를 어린아이처럼 여기지 않아서 달콤한 사탕 같은 답 대신 높고 깊은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이를 감당할만한 성인이라고 ( ‘아이같다’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구해주겠다’ 1:7) 다시 또 말씀하시는 것 같은 인상도 받습니다. 백성의 죄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배반으로 시작했다면, 용서를 구하는 방법은 배반을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일겁니다. 약속은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한다는 약속입니다. 우상숭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아닌 것을 여호와라고 여기며 공을 들이는 짓, 내 손으로 터진 우물을 열심히 파는 미련한 짓은 다 우상숭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리도 우매하고 고집센 백성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주님 죄송합니다. 마음이 돌처럼 굳고, 목은 뻣뻣하게 곧았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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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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