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11장: 사람을 믿는다는 것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을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선포하라고 명하신다. 그 언약에 의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얻고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1-5절). 예레미야가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자, 주님은 유다 백성이 순종이 아니라 반역을 택했으니, 약속대로 그들의 악행을 심판할 것이라고 하신다(6-8절). 주님은 계속하여, 그들이 조상들의 죄악으로 돌아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겼다고 고발하신다. 주님이 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찾겠지만, 아무런 도움도 찾지 못할 것이다(9-13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다(14절). 그들은 성전에서 많은 제물을 바치면서도 악한 음모나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유다는 주님으로부터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많이 달린 올리브 나무”라고 칭찬을 받았으나, 이제는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15-17절).

이 즈음에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이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아나돗은 아비아달 제사장이 솔로몬에 의해 파면되고 쫓겨 갔던 곳이다. 그런 역사로 인해 아나돗의 제사장들은 유다 백성으로부터 미움과 차별을 받아 왔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에 대한 원한을 아나돗 사람들에게 퍼부었다. 그래서 아나돗의 제사장들은 예레미야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가 듣지 않자, 그들은 예레미야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 것이다. 다행히,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사실을 알게 하신다(18절).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19-20절). 그러자 주님은 아나돗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답하신다(21-23절).

묵상:

다윗이 죽은 후에 아도니야 왕자가 왕으로 자처했을 때, 대제사장격이었던 아비아달이 그의 편에 섰습니다(왕상 1장). 하지만 예언자 나단의 중재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고 아도니야는 반역자로 처형을 당합니다. 그 때 솔로몬은 아비아달 제사장이 다윗 왕에게 충성했던 것을 감안하여 목숨을 살려 줍니다. 그 대신, 대제사장직에서 파면하고 아나돗으로 귀양을 보냅니다. 

그 이후로 아나돗 사람들은 유다 백성으로부터 반역자의 후손으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런 차에 예레미야가 재앙과 심판의 예언을 전하고 다녔으니, 아나돗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입을 다물라고 종용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자 그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이 사실을 알고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에게 부름 받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 양”(19절)처럼 주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뿐인데, 고향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으니, 그 억울함이 심했을 것입니다. 이 때 예레미야가 드린 기도는 다윗의 시편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배신 당하여 고통 받는 중에 이렇게 토로 합니다.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우리는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집을 드나들곤 하였다”(시 55:12-14). 

예레미야가 자신에 대한 살해 음모를 알고 충격을 더 심하게 받은 이유는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옹호해 주어야 할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더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 후에 “나는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니, 주님께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시 55:16)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으면 언제든지 배신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을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고, 예레미야도 고향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단지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믿을 수 없도록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사랑하기를 힘씁니다. 

기도:

저희의 믿음은 오직 주님께 두고, 주님께서 붙여주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사랑으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할 때, 저희는 누군가에게 의지처가 되고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11장: 사람을 믿는다는 것”

  1. billkim9707 Avatar

    세상과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따르는 믿음을 원합니다, 온갖 모략 중상에 비겁하지 않고 악을 선으로 이기는 삶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과 순종과 내용이 없는 믿음의 공동체가 허다한 실정입니다. 비록 오해와 비난과 조롱을 감내 하면서도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세상을 변화 시키는 능력과 생명이 있고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사귐의 소리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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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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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본문 끝부분에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일 음모를 꾸미는 이야기가 짧게 나옵니다. 두가지 생각이 듭니다. 우선, 선지자는 자기 고향과 집안에서 존경을 못 받는다는 복음서 구절이 떠오릅니다. 예수님도 가까운 친지와 고향 동네 사람들에게서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익숙함의 맹점이랄까요, 너무 가까우면 사각지대가 되어 버리는 습관적인 방치랄까요, 선지자를 외롭게 만드는건 자기 식구와 형제인 것을 봅니다. 다음에는, 자기가 아프니까 남을 아프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urt people hurt people.’ 장난스런 반복이지 싶은 이 말은 보기보다 의미심장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남에게 상처를 낸다는 말입니다. 타인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재가 과도하게 작동하기 쉽습니다. 안 다치려고 신경을 곤두 세우기 때문입니다. 아프면 신경질이 늘고 예민해집니다. 너무나 자주 보는 일입니다.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없애 버리려고 한 것은 자기들의 불행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었기 때문일겁니다. 희생양의 개념과 잇대어진 행동입니다. 1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한대로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유다는 ‘쇠를 녹이는 용광로와 같았던’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내신 여호와와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않고 어겼습니다. 여호와는 약속을 지켰으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그 약속이 이루어졌다) 백성은 저마다 고집을 부리며 악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내릴 것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도와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겠다고 단언하십니다. 백성은 성과 길거리의 숫자만큼 많은 제단을 쌓아 놓고 우상들에게 빌지만 우상들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구할 수 있는 하나님은 구해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백성은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이켜야 하겠지요. 지금 서 있는 곳을 둘러보고 새로 길을 선택해야겠지요. 돌이키는 일, 회개하는 일은 과거를 공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떳떳하거나 자랑스러운 과거사는 누가 묻지 않아도 자기 입으로 말하지만, 회개는 옛일을 추억하기 수준이 아닙니다. 감추고 싶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을 들여다 보아야 지금 상태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과거의 어느 부분을 회개해야 할 지를 짚어서 말해줍니다. 우상숭배입니다. 헛된 것을 하나님이라고 여기고 기도한 일을 중단하고 거기서 떠나라고 합니다. 해는 짧고, 밖에도 내 안에도 찬바람이 부는 계절입니다. 시간은 점점 더 빨리 가고 그에 맞춰 조바심도 늘어납니다. 회개의 방향은 정했지만 -무엇을 회개해야 할 지는 알겠지만- 회개의 걸음은 너무 늦고 너무 조금씩입니다. 거북이요 달팽이입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세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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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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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날. 월요일 아침입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주말. 좀 느지막히 일어났습니다.

    예레미아 11장. 본문은 출애굽의 계약 (covenant)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어겼고 저주 (curses of the covenant)의 실현을 왜 피할 수 없는지에 대한 하나님과 예레미아의 대화체로 전개됩니다.

    하나님은 일이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다 알고계셨던 것은 아닐지요? 그렇다면 순종=축복, 불순종=저주라는 조건부 계약은 처음부터 예고된 저주의 계약이 아니었을지? 선택된 백성의 타락과 실패는 곧 하나님의 실패는 아니었는지. 오늘 따라 복잡한 교리 질문이 많아지네요.

    창밖에는 낙엽이 바람에 날아가고 있어요. 피곤한 몸을 추스리며 또 한 주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사귐의 소리 기도문처럼 인생의 동산 안에서 만나는 모두를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그런 삶이 되기를.

    율법의 저주 아래 죽을 수 밖에 없던 자. 그런 나를 보혈로 대속하여주신 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마음의 중심에 새기며 허락하신 생명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오늘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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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사기, 거짓 등 온갖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말씀에 의지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기도로 하나님께 묻고 지혜를 구하여 주시는 영혼의 분별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이웃에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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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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