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서 6장: 옛길을 떠난 불행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베냐민 자손은 남유다 왕국을 구성했던 두 지파 중 하나다. 주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터이므로 가까운 다른 동네로 피신하라 하신다(1절). 멸망의 주된 책임은 왕실을 이어 온 유다 지파에게 있다는 뜻이다. 주님은 이미 이방 왕들에게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도록 명령하셨다(2-6절). 예루살렘은 물을 뿜어내는 샘처럼 죄악을 내뿜고 있다. 주님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 뿐이다(7절). 주님께서는 이 고난을 경고로 받아 들이고 회개하라 하신다(8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적군이 이르면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고 주민들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이니 재앙이 닥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구하라고 이르신다(9절). 예레미야는, 자신이 말한다 해도 듣는 사람이 없다고 답한다. 그의 마음에는 주님의 분노가 들끓고 있어서 품고 있기에도 힘겨울 정도라고 호소한다(10-11절). 주님은 그 분노를 길거리에 쏟아 놓으라고 하신다. 이미 예언한대로,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잡혀갈 것이기 때문이다(12절). 

예루살렘은 총체적으로 타락했다. 그로 인해 백성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토록 역겨운 일을 하고도 그들은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 뿐이다(13-15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 길을 따르면 편안히 쉴 곳에 이를 것인데, 그들은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주님은 파수꾼을 세워 두셨는데, 백성은 그들의 말도 듣지 않았다(16-17절). 

그래서 주님은 온 세상을 향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알리신다(18-19절). 유다 백성은 여전히 값비싼 제물과 선물을 주님께 바치지만, 주님은 그것을 기뻐할 수가 없다(20절). 주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21절). 그 심판은 북쪽에 있는 큰 나라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에는 도피할 곳이 없을 것이다. 통곡하며 그 재앙을 겪는 길 외에는 없다(22-26절).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을 시험해 보라고 하신다. 그들의 죄악은 너무 깊어서 뜨거운 불에 녹여도 불순물이 지워지지 않는 금속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주님은 불순물이 제거되지 않는 은을 내버리듯 유다 백성을 버릴 것이다(28-30절).

묵상: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진정한 평안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옛길”(16절)입니다. 오래 전에 주님께서 알려 주신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 길은 “영혼이 평안히 쉴 곳”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이 우리의 죄 된 본성에는 좁고 험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넓고 평평해 보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 길에서 잠시 만족을 얻지만, 그 마지막에는 “사방에 공포가 있을 뿐”(25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에게 복된 것입니다. 반면, 그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에게 재앙을 끌어 들이는 일입니다.

유다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의 참담한 운명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영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꾸짖고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자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사로 모일 때에는 값비싼 제물을 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구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를 요구하는 예언자들의 입은 틀어막고, 불편한 양심을 위로해 주며 축복을 기도해 주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백성을 복된 길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이 망할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들은 파멸의 운명을 스스로 자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예레미야와 같은 파수꾼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레트로’가 유행입니다. 옛것의 가치와 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다시 과거의 것들을 되찾는 노력입니다. 철 지났다고, 시대에 뒤쳐진다고,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되찾아야 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옛길”입니다. 그 길은 수천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걸어온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기도:

옛길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좁고 험한 길을 걷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 마음에는 아직도 새길, 넓고 편한 길을 가고 싶어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의 뒤를 따라 이 길에서 올곧게 걷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예레미야서 6장: 옛길을 떠난 불행”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창문에 닿는 빗방울 소리에 일찍 깼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이른 비가 내립니다. ‘가을비 우산 속에’라는 옛노래가 생각 나는 새벽입니다. 묵상 제목도 옛길이군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후회와 미련을 갖게 만듭니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의 시간 여행이 영화 밖에서도 가능하다면 예레미야의 예언이나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다른 차원의 메시지가 되겠지요. 옛길이 어디인지 물어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뭇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갈림길에 서서 살펴보아라. 너희 조상들이 걷던 선한 옛길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그 길로 가거라. 너희가 쉴 곳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는 그 길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16절).” 갈림길에 서서 생각한다는 것이 선택을 암시합니다. 길이 한 길 뿐이 아니라는거지요. 조상들이 걷던 선한 옛길이 과연 선한 길이었나 하는 질문도 하게 됩니다. 유다 백성의 죄는 이 당대, 이 집단 사람들의 죄 때문 만은 아닐 것입니다. 선한 길을 걷지 않은 옛사람들의 죄가 이어져 내려온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길의 의미가 갈림길 (갈등)을 만나면 무조건 예전 방식이나 옛사람 (어른)의 추천을 따르라는 뜻일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그런 의문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길’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 기억납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길을 인도하실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여정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모세를 불러 백성과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이 선한 옛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 그들은 주의 백성이라는 약속이 옛길입니다. 옛길은 백성이 해야 할 바른 선택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옛길을 물어 그 길로 간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한다든가, 기뻐하실 일을 고민한다든가, 바르게 사는지 점검한다든가 하지 않고, ‘배반하고, 고집불통이며 거짓말을 일삼는 (28절)’ 자들로 계속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엔 ‘버림받은 은’이 되고 맙니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개인의 죄와 허물을 두고 이토록 무서운 벌을 예고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회적 와해와 국가적인 위기에 대한 경고로 읽힙니다. 개인의 도덕적인 해이도 문제지만 시대적인 이탈과 거역은 더 중대한 문제입니다. 개인의 차원에서 집단적 시대적 불의와 탐욕으로 확장되는 악의 심각성을 어찌 묵상하지 않을 수 있겠나요. 어떻게 우리 시대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옛길이냐 새길이냐, 보수인가 진보인가, 혹은 대치되는 사회 이슈 (낙태, 사형제도, 인권, 세금, 환경, 복지…) 를 놓고 ‘조상들이 걷던 선한 옛길’을 선택하라는 명령으로 읽고 묵상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인지 하나님으로 섬기는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인지 물어보는 아침입니다. 교회에 예배하러 가는 것으로 나의 예배는 충분한 것인지 물어보는 아침입니다. 소셜 져스티스 social justice 에 관심 없다 (=나는 정치 모른다)는 것이 옛길을 잘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라는 아침입니다. 주님, 지혜를 주십시요. 주님의 길을 알게 하시고 그 길을 걷게 도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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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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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심지어 듣기좋은 설교(?)를 하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만 말씀이 살아있고 생명이 있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무릎을 꿇는 교회를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때 높고 힘들고 좁은길 같은 십자가의 길이 진실로 사랑과 기쁨 평화의 길인것을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 소리 믿음의 열사 모두가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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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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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쌀쌀하고 어두운 화요일 아침입니다. 그래도 비가 그쳐 출근하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예레미아 6장에서도 선지자는 죄 (압제와 불의)와 벌(북쪽에서 오는 침략과 바빌론 포로 사건)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미 재앙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듯한 마치 확정된 심판의 집행 통지문 같이 읽혀집니다.

    베냐민 지파에게는 피난을 촉구하고 있지만 압제와 불의의 대상이 된 백성들에게 전쟁과 도성 함락은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니었을지요? 불의한 유다왕국이 망하고 엘리트 계층 모두가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오히려 압제당하던 백성들에게는 해방의 소식이었을까요?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오늘도 생명을 주신 주를 찬양. 오늘 하루라는 시간을,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선물로 받습니다. 로마의 길과 하늘의 길이 함께 가길 늘 기도하지요. 하지만 그 두 길이 갈라질 때 공의와 생명의 길, 좁은 길을 선택할 용기 주시길.

    마음 속의 염려와 불안을 주님 발 아래 내려 놓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안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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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예루살렘에는 인간의 온갖 죄악이 총망라된 것 같습니다. 또한 그죄가 너무 간악하고 부패하여 불순물이 많은 무쇠와 금속 같아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이 헛수고라, 주님께서 버리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여 버림받아 사탄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주신 것에 만족하고 핍박과 고난이 오더라도 주님을 향한 시선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숨이 멋는 그날까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사귐의 시간이 되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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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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